Byungso Choi

Byungso Choi

Oct 07, 2008 – Nov 08, 2008

섬약하고도 강건한 검은 화면, 그 ‘애매성의 예술’
글. 신혜영 I 가인갤러리 큐레이터

"훌륭한 소설이나 시, 그림 혹은 영화에 접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무엇인가와 접촉이 이루어졌다는 느낌, 인간이 무엇인가를 획득하게 되었다는 것, 즉 예술 작품이 하나의 끊임없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감지하게 된다. 그러나 예술작품의 의미는 작가에게 있어서나 감상자에게 있어서나, 작품 그 자체에 의해서가 아니고서는 설명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을 창조한 사고도, 또한 그것을 수용한 사고도 결코 완전한 지배자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 예술작품이나 하나의 이론에 있어서의 의미는 감각적인 것에서와 마찬가지로 기호와 분리될 수 없으며, 바로 이러한 연유로 의미는 결코 완전하게 표현되지 않는 것이다. 즉 최상의 형태의 이성은 비이성과 근접해 있다." - 메를로퐁티, <의미와 무의미> 서문 중에서.

정신과 신체, 주관과 객관, 사유와 지각, 자아와 타자, 이성과 비이성,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의미와 무의미 등 철학의 역사에서 대립항으로 여겨져 온 모든 것의 양면을 동시에 보고자 한 프랑스 철학자 메를로퐁티의 사상은 “애매성의 철학”[1]이라 불리며 후대의 여러 철학자와 예술가에게 영감을 제시해 왔다. 1970년대 이후 한국 현대미술 역사의 한 편에서 “침묵의 목소리”[2]로 자신만의 길을 걸어온 작가 최병소의 예술은 메를로퐁티의 철학과 닮았다. 예술의 역사에서 결코 섞일 수 없었던 독립항의 경계선 상에서 각각의 특징을 가지면서도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자신만의 고유한 작품세계를 오랜 시간 묵묵히 펼쳐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최병소의 작업을  “애매성의 예술”이라 칭해도 좋을 것이다.
여기저기가 찢기고 갈라진 새까맣고 얇은 표면의 최병소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사람은 ‘이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다소 의아한 생각이 들 것이다. 전시장의 흰 벽에 걸린 그것은 검정 물감이 칠해진 캔버스나 종이와는 전혀 다르며 오히려 연소된 얇은 나무 판이나 금속성의 광물질에 가까운 느낌이다. 그러나 그 둘 모두도 아닌 듯 하다. 다 타버린 재와 같이 금새 바스러질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오랜 시련에 더 단단해진 철판과 같은, 섬약하고도 강건한 이 물질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작가가 종이가 얇아지다 못해 찢어질 때까지 볼펜과 연필로 선을 긋고 또 그어 만들어 낸 시간과 노동 집약의 독창적인 표면이다.  이 고유한 표면은 주로 신문지나 잡지와 같은 일상의 오브제 위에 볼펜과 연필 같은 문구를 매체로 시작되지만, 작가의 극대화된 반복적 행위를 통해 마침내 독특한 감성이 느껴지는 미적 산물로 변모된 것이다. 재현된 어떠한 형상이나 색채와 붓 자국도 없는, 회화라는 호칭이 어색한 이 인공물은 시각적이기보다는 촉각적이며 우리에게 여느 회화에서도 느낄 수 없는 차갑고 저릿저릿한 느낌을 준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미술사의 주요 개념과 경향들 사이에서 부유하며 새로운 해석을 가능케 한다.

지지체와 안료
최병소의 검은 표면은 회화인가? 그것은 분명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적인 의미의 회화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신문지에 수없이 볼펜으로 선을 긋고 그 위에 연필로 다시 선을 그어 만들어 내는 그것은 "여러 가지 선이나 색채로 평면 상에 형상을 그려 내는 조형미술" 이라는 회화의 사전적 정의를 벗어나지 않는다. 마침내 전면화(全面化)되어 묻히지만 수없이 반복되는 '선', 사실상 색으로 느껴지지 않지만 작가가 선택한 볼펜과 연필의 검은 '색', 미술의 재료는 아니지만 신문지라는 확실한 2차원의 '평면', 의도적으로 그려낸 것은 아니지만 반복되는 선 긋기에 의해 드러나는 갈라지고 찢긴 무정형의 '형상'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병소의 검은 표면은 일체의 묘사와 재현을 배제하고 캔버스와 물감이라는 회화의 기본적인 재료를 떠났지만 분명 회화인 셈이다.
화면이 검은 색 한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는 이유로 최병소의 회화는 그간 미술사의 모노크롬 페인팅 혹은 한국의 단색조 회화[3]로 분류되어 왔다. 그러나 이 독특한 회화의 표면은 그들 전통회화의 평면과는 재료와 느낌상으로뿐 아니라 구조적으로 완전히 상이하다. 그것은 캔버스 위에 물감이 얹혀지는 전통적인 지지체와 안료의 관계를 완전히 탈피한 새로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지지체와 안료의 관계는 아주 오래 전부터 최병소에게 중요한 화두였다. 안료가 칠해진 지지체를 '찢는' 루치오 폰타나, 지지체를 완전히 뒤덮도록 안료를 '칠하는' 바넷 뉴먼, 지지체를 안료로 '적시는' 이브 클랭 등의 회화에 관심을 갖던 그는 종이 위에 아크릴 물감을 두껍게 칠한 후 뒤집어 종이를 사포로 밀어버림으로써 물감덩어리만을 남기는 지지체의 '소거'를 시도하기도 했다. 이렇듯 지지체와 안료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던 최병소는 마침내 신문지 작업을 통해 지지체를 소거하지 않으면서 안료와 일체화하는 방법으로 향하게 된다. 신문지 화면 가득 가느다란 볼펜 선을 그어 메우고 다시 연필 선을 그어 사이를 메우는 그의 신문지 회화에서는 캔버스 위에 물감을 올리는 면의 축적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선의 축적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선의 축적은 신문지 위에 볼펜과 연필이 얹혀지기 보다는 지지체 안으로 안료가 파고 들어가 양자가 거의 일체가 되는 구조를 만들어 내고, 이러한 지지체와 안료의 일체로 인해 그의 회화는 본래 물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물질로 변모하는 신비로운 경지에 다다른다. 신문지, 볼펜과 연필이라는 본래의 재료가 가진 정체성은 사라지고 금속성의 얇고 견고한 새로운 물질로 변모하는 이 놀라운 과정은 그야말로 "사라짐으로부터의 탄생"[4]이라 부를 만 하다.

과정과 결과물
최병소의 회화가 이렇듯 "소멸하며 태어나"도록 하는 근원적인 동력은 지지체 위에 끊임없이 사선을 긋는 작가의 반복적인 행위로부터 비롯된다. 그는 신문지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뿐 아니라 전혀 다른 물질로 변화하는 그 극단의 지점까지 ‘긋기’라는 반복적 행위를 가한다. 학창시절 볼펜이나 연필로 연습장을 까맣게 메워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 작은 공간을 빈틈없이 메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기억할 것이다. 하물며 신문지 크기의 종이를 - 때로는 앞 뒷면으로 - 전면(全面)이 까매지다 못해 찢겨질 정도까지 볼펜으로, 또 그 위에 연필로 선을 긋는 그 행위는 그야말로 보통 사람은 할 수 없을 정도의 극단적인 인내와 시간을 필요로 함을 짐작할 수 있다. 작가는 그야말로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선을 긋고 또 그으며 그러한 작가의 ‘긋기’는 그 자체 자율성을 가지고 확장되어 나간다. 그리고 이러한 작가의 반복적 행위는 마침내 물질 자체가 한계에 달하는 지점에서 멈춰진다.
이렇듯 최병소의 회화는 어떠한 결과물을 내기 위해 붓을 움직이는 전통적인 회화와 달리 행위 자체가 우선시되며, 결과물로서의 화면은 과정으로서의 행위를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종이의 지질(紙質), 기온과 습도 같은 물질적 한계와 종이를 격자로 선을 긋거나 접어서 구획을 나누고 시작하느냐 아니냐, 밑바탕을 볼펜으로 메우느냐 먹물로 칠하느냐와 같은 단순한 방식의 차이가 어느 정도 반영되지만, 최병소의 회화는 그의 반복적인 행위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선을 긋는 그의 손이 멈추는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물질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렇게 완성된 나뭇결 같기도 하고 광물질 같기도 한 그 화면은 물성이 강조된다는 점에서 미술사의 몇몇 경향들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들과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작품의 물성이 애초의 재료로부터 달라진다는 점에서 그것은 가공하지 않은 산업재료의 물성을 강조하는 미니멀리즘 조각이나 물감을 흩뿌리거나 두껍게 얹어 만들어내는 추상표현주의 회화의 그 자체 재료가 가지고 있는 물성과는 완전히 다르며, 작가의 엄청난 노동이 그 과정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작가의 최소한의 개입으로 인한 우연적인 변화를 중시하는 아르테포베라[5]의 물성변화와도 다른 것이다. 최병소의 회화는 이렇듯 미니멀리즘과는 형태의 최소화와 날것의 질감이라는 표면적 연관성을, 추상표현주의와는 작가의 행위(gesture)를 중시한다는 물리적 공통점을, 아르테포베라와는 본래의 하찮은 재료를 미적인 물질로 변화시킨다는 과정의 중요성을 함께 하고 있지만 그 어느 경향과도 본질적으로 일치하지 않는 고유함이 있다.

개념과 노동, 예술과 일상
경계선 상에서 양자의 영역을 확장하며 본인만의 고유함을 자리매김하는 이러한 최병소 회화의 특징을 무엇보다 잘 드러내는 것은 그의 재료 선택과 그것의 변용에 있을 것이다. 최병소가 신문지를 본인 작품의 주된 재료로 선택한 데는 물론 그 의미적, 형태적 이유 때문도 있겠으나, 가장 크게는 그것이 "돈도 안 들고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라는 일차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최근에는 신문용지를 구입해 쓰기도 하지만 그가 주로 사용해 온 지지체는 신문지와 잡지이며, 때로는 비행기표나 지폐 등 일상의 오브제였고, 그가 사용하는 매체는 물감을 묻힌 붓(화구)이 아니라 책상 옆에 굴러다니는 볼펜과 연필(문구)이다.
물론 미술사 내에서 많은 예술가들이 일상의 오브제를 예술의 소재로 사용하였다. 피카소와 브라크 등 입체파 화가들은 신문과 잡지의 일부를 오려서 화면에 콜라주 했으며, 뒤샹을 비롯한 초현실주의와 다다이즘 작가들은 일상의 사물을 선택해 전시장에 설치함으로써 예술의 새로운 맥락을 제시하였고, 그밖에 팝 아트를 선도한 라우센버그와 같은 작가는 널빤지에 베개와 이불을 부착하고 페인트칠을 하는 아상블라주 기법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술사에서 작품에 오브제가 사용될 때 그것들 대부분은 그 재료가 가진 물질성에도 불구하고 어디까지나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개념적 측면이 강했다. 그러나 최병소가 사용하는 일상의 오브제는 단지 용도와 의미를 변경하는 ‘관념’의 차원이 아니라, 작가의 극단의 반복적 행위를 통해 전혀 새로운 물질로 변모되는 ‘실재’의 차원에서의 변화가 이루어진다. 언제 어디에나 존재하는 재료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선 긋기라는 행위를 통해 전혀 새로운 형태의 미적 산물을 만들어내는 최병소의 회화야 말로 진정한 의미의 일상과 예술의 경계 흐리기일지 모른다. 사실상 이러한 최병소의 일상과 예술의 혼재는 삶과 밀착된 그의 작업 태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집에 딸린 작은 골방에서 잠자고 밥 먹는 시간 외에 음악을 들으며 끊임없이 손을 움직이는 그에게 일상과 예술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읽을 수 없는 신문
한편, 최병소가 사용하는 신문지라는 재료는 단지 일상의 오브제라는 측면에서만 고찰하기에 다소 미흡함이 있다. 그것은 '신문'이 지닌 상징적 함의 때문일 것이다. 매일 새로운 기사를 담아내는 신문은 그 시대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사건들을 자세히 보여주는 소통의 매체이면서도 온전히 객관적인 사실만을 드러내지 않는다. 때로는 편향된 시선으로 사실을 왜곡하며 외부의 압력에 의해 현실을 은폐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최병소가 미대를 졸업하던 1974년은 박정희 정권이 유신체제를 공표한 지 1년 남짓한 정치사회적 격동기로서 일부에서는 유신철폐운동 등 반항의 목소리가 있었으나, 대체로 언론과 발언의 자유가 억압된 침체적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특히 미술계는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고 자연으로 회귀하려는 백색 위주의 단색조 회화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것은 정신적으로 황폐해지고 사회로부터 소외된 작가들이 자신의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의도적으로 은폐하려는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을 지 모른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소위 한국의 실험미술로 칭해지며 1960년대 후반부터 지속되어 온 일련의 움직임 가운데 있던 일부 작가들은 현실을 그대로 외면하기보다는 간접적으로나마 예술의 범위 안에서 자신의 발언을 표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신문으로 행위예술을 시도한 성능경과 같은 작가다. 성능경은 1974년 '제3회 ST전'[6]에서 한 달 여의 전시기간 동안 매일같이 8쪽의 신문지면 가운데 기사란 만을 오려 내어 나머지 사진이나 여백 부분과 분리해 다른 두 개의 아크릴 박스에 담음으로써 신문의 편집에 따라 사실이 달라지는 언론의 편파성을 간접적으로 비판하였으며, 1977년에는 8면의 신문을 1면당 32면씩 총 256면으로 잘라 무작위적으로 섞어 다시 8면의 신문을 만드는 작업을 통해 신문의 문맥과 의미를 말소시키려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7]
최병소의 신문지 작업 역시 성능경의 그것처럼 1970년대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서 신문이 지니는 상징적 의미와 무관할 수 없다. 당시 그는 매일 날아드는 신문을 읽으면서 답답하고 침통한 마음을 참다 못해 신문의 내용을 지워나가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결국 읽을 수 없도록 지워지고 애초에 무엇이었는지 흔적조차 사라졌지만 그것은 70년대 현실을 보여주던 바로 그 신문이었으며, 그는 성능경처럼 직접적인 방식은 아니지만 당시의 사회상을 자신의 작업에 적극 반영했던 셈이다. 이후에도 그는 줄곧 애초의 화면을 뒤덮어 지움으로써 읽을 수 없는 신문, 내용을 알 수 없는 잡지, 탈 수 없는 비행기표, 쓸 수 없는 지폐 등 의도적으로 용도를 폐기하고 예술적 맥락에서 새롭게 탄생하도록 하는 일련의 작업들을 발표해왔다.

단색조 회화와 실험미술
사실상 최병소는 작품의 고유함과 미술사적 중요도에 비해 그간 제대로 된 평가나 논의가 거의 없었다. 그나마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거론될 때는 1970년대 주류 미술경향인 단색조 회화 작가 중 한 사람으로서였다.[8] 그러나, 그것은 최병소 작업에 대한 전체적인 고찰이 부재한 데서 오는 단편적인 구분에 지나지 않는다. 미술사의 모든 경향과 사조를 명확히 구분할 수 없겠지만, 최병소의 작업은 단색조 회화로만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최병소의 신문작업은 단색조 회화이기 이전에 신문이라는 사회적 함의를 담지한 일상의 오브제로부터 비롯되었으며, 그가 신문작업 이전에 행했거나 이후 선보인 일부 작업을 볼 때 그는 상당 부분 실험미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1974년 처음 참여한 전시인 <한국 실험작가전>과 1974년부터 5년간 참여한 <대구 현대미술제> 등의 일부 전시에서 그는 화병에 꽂아놓은 꽃을 툭 쳐서 바닥에 떨어진 꽃잎 중 몇 개만 분필로 표시를 해둔다거나 여름철에 전시장에 생선을 가져와 도마에 난도질하여 놔둠으로써 냄새가 진동하도록 하는 행위 위주의 해프닝 작업과 특정한 장면의 사진 옆에 그 사진을 설명하는 단어를 나열해 놓은 개념 작업[9] 등을 선보인 바 있다. 또한 최근의 신문 작업 중에도 평면이 아닌 부서진 조각들은 접시에 담아두거나 메를로-퐁티의 <의미와 무의미>를 비롯한 책의 낱장들의 모서리를 긁어 그것들을 아크릴 박스 안에 세워 펼쳐놓음으로써 읽을 수 없는 책을 전시한 설치작업 등을 간간이 행해왔다. 이렇듯 최병소는 그간의 단색조 회화 작가라는 단편적인 평가와는 달리 분명 실험미술에 한 발을 딛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최병소가 오랜 시간 몰두해 온 작업은 신문이라는 평면의 오브제를 엄청난 작가적 노동을 통해 새로운 화면으로 변모시키는 그 결과물이 분명 '회화'의 정의에 속하는 것이었으며, 그것은 외견상 단색이고 물성이 강조되며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화면을 중성화하는 70년대 단색조 회화와의 공통점이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특히 계속해서 ‘연필’을 사선으로 ‘긋는’ 재료와 행위의 측면에서 그의 회화는 단색조 회화의 대표격인 박서보의 묘법과 부분적인 유사점이 있으나, 그와 근원이 다름 - 실험미술과 앵포르멜 - 은 물론 방법과 개념상 상이하다. 화선지를 붙인 캔버스에 유백색의 물감을 칠하고 그것이 채 마르기 전에 그 위에 연필로 사선을 긋고 그것을 다시 물감으로 덮고 다시 선을 긋는 반복적 행위로 완성되는 박서보의 묘법에서 연필선은 어디까지나 물감을 긁어내거나 밀어내기 위해 사용되는 보조도구 - 손가락, 나무, 쇠붙이 등과 유사한 - 에 가까웠다면, 최병소의 신문작업에서 연필(볼펜)선은 화면을 전면화하는 유일한 도구이다. 또한 물감 위에 연필이나 다른 도구가 지나간 자리가 남음으로써 행위의 방향성과 궤적을 드러내는 박서보의 묘법에 비해, 표면을 긁고 누르다가 물질이 한계에 달하여 파괴되는 지점까지 볼펜과 연필로 전체 화면에 선을 긋는 최병소의 작업은 결국 행위의 흔적을 남기지 않고 표면 전체를 균질하게 만드는 바 그야말로 행위와 물성의 일체를 보다 잘 보여준다. 이렇듯 일정 부분에서 최병소의 작업은 70년대 단색조 회화의 맥락 안에서 다른 작품들과 비교될 수 있지만 온전히 단색조 회화의 분류 안에 있을 수는 없다. 그것은 그의 신문작업이 1960-70년대 오브제와 설치, 해프닝과 영화 등 다양한 시도를 행한 소수의 실험미술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결국 '회화'라는 결과물로 귀착되어 온전히 그 안에 머무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유다.

일생을 통해 지속되는 애매성의 예술
이렇듯 최병소의 작업은 애매하다. 그 자신이 밝히고 있듯 그의 회화는 "그리기인 동시에 지우기이고, 채우기인 동시에 비우기이며, 의미이자 무의미이다." 선을 그리지만 그것은 결국 글자를 지우는 일이고, 선을 채우는 동안 작가 자신과 본래의 물질은 비워지며, 신문의 글자를 지움으로서 의미를 무화(無化) 하지만 그것은 애초에 아무것도 없었던 무의미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최병소의 "애매성의 예술"은 지지체와 안료, 과정과 결과물, 개념과 노동, 오브제와 회화, 일상과 예술, 실험미술과 단색조 회화 등 미술의 역사에서 양립할 수 없었던 독립된 항들 사이를 오가며 그 경계를 흐려왔다. 그러나 그 안에는 그만의 뚜렷한 논리가 내재되어 있었다. 그것은 "작가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작업을 찾아내야 하며 작품이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신문지의 지질이 바뀜에 따라 화면의 물성도 달라지고, 완성된 회화를 잘라 봉투를 만든 뒤 그 위에 길게 접은 회화의 조각들을 붙여 입체를 만들기도 하며, 신문(용)지를 콘크리트 바닥에 놓고 흑연덩어리로 문질러 화면을 완성하기도 하고, 네모 반듯한 신문지가 아닌 잘라지고 구겨진 까만 조각들을 그러모아 바닥에 설치하기도 하는 등 조금씩 그가 할 수 있는 만큼만의 시도를 하면서 그의 “애매성의 예술”은 지속되고 있다.  그것은 또 그렇게 앞으로도 그의 삶과 하나되어 지속될 것이다.
 
[1] 메를로퐁티의 철학이 ‘애매성의 철학’이라 불려온 것은 벨기에 철학자 드 발렌스(De Waelhens)의 저서 『애매성의 철학: 모리스 메를로퐁티의 실존주의(Une philosophie de l’ambigüité: L’existentialisme de Maurice Merleau-Ponty)』(1951) 이후부터다.
[2] 메를로퐁티는 앙드레 말로의 『침묵의 목소리』로부터 영감을 받아 자신의 저서 제목을 『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라 하였다.
[3] 1970년대 초 중반 무렵, 주로 흑백색의 단색조 계열 물감을 사용하여 한지나 마포 위에 반복적 행위를 통해 제작한 물성 위주의 평면회화 경향을 단색조 회화라 칭한다. 1975년 5월 일본 동경화랑에서 열린 <한국 5인 작가 - 5개의 흰 색 전>(박서보, 권영우, 허황, 이동엽, 서승원)을 계기로 백색회화라고 불리기도 했다. 
[4] 2006년 대구 갤러리M에서 열린 최병소 개인전 부제는 <소멸하며 태어나다(Birth from disappearance)>였다.
[5] 아트레포베라(arte  povera)는 1967년 무렵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전위 미술 운동으로 흙, 석면, 흑연, 얼음, 왁스, 타르, 철사 등의 반미학적인 재료의 물질적인 본성을 탐구함으로써 기존의 예술 개념을 해체하여 삶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자 하였다.
[6] AG(한국 아방가르드 협회, 1969-1975)에 이은 대표적인 한국 실험미술 그룹으로 ‘Space&Time’의 약자인 그룹명에서 알 수 있듯이 개념 위주의 공간 설치미술을 주로 행하였으며 이건용, 김구림, 성능경, 황현욱, 박원준, 김문자, 한정문, 여운 등이 활동했다.
[7] 김미경 『한국의 실험미술』, 시공아트, pp.190-194 참고
[8]최병소는 단색조 회화의 주요 전시인 동경 센트럴미술관에서 열린<한국 현대미술의 단면전>(1977)과 국립현대미술관의 <에꼴 드 서울>(1976-79) 등에 참여하게 되면서 단색파 화가로 각인되었다.
[9] 허공 위에 두 마리 새가 뒤엉켜 있는 모습의 사진 옆에 ‘sky, cloud, wind, birds, flying, meeting’여섯 단어를 나열해 놓음으로써 사진을 함축적으로 묘사하였다.


Frail and Sturdy Black Surfaces, the ‘Art of Ambiguity'
Text. Hyeyoung Shin I Curator of Gaain Gallery
Translation. Jawoon Kim

" Whenever we encounter a good novel, a good poem, a good painting or a good film, we sense that we have come into contact with something, that Man has accomplished something and that a work of art has started to convey everlasting messages. But it is only through the artwork itself that the meaning of an artwork can be explained to both the artist and the audience. For neither the thought that creates it nor the thought that receives it can never be the complete dominator. … In both a work of art and a theory as in the sensuous, meaning is inseparable from the signs, and this is why meaning can never be completely expressed. In other words, the highest form of reason borders on unreason. " - from Merleau-Ponty, Sense and Non-Sense, Preface.

While being based on his simultaneous consideration of the two sides of everything that have been regarded as opposites in the history of philosophy such as mind and body, the subjective and the objective, thought and perception, self and other, reason and unreason, the visible and the invisible, sense and non-sense, the “philosophy of ambiguity”[1] of French philosopher Merleau-Ponty has inspired many thinkers and artists of the later generations. Byungso Choi has explored his own artistic path with “the voice of silence”[2] in a corner of the contemporary Korean art scene since the 1970s, and his art bears resemblance to Merleau-Ponty’s thoughts. For Choi has quietly produced his own artistic creations that locate themselves on the boundary zone between independent entities that have not been able to join with each other in the history of art while possessing the features of both sides on one hand and on the other refusing to be belonged to either side. Then, one may characterize the artistic expressions of Choi using the term ‘art of ambiguity’.
In the first encounter of Choi’s artwork whose thin black surface is torn and split here and there, one might ask himself or herself, ‘what on earth is this?’. His work hung on the white wall of the gallery looks quite different from canvas or paper painted with black pigment. Rather, it looks more like a burnt, thin wooden board or some kind of metallic, mineral material. Yet, it seems to be neither of them. It is hard to identify this frail and yet sturdy material that is likely to be shattered around like burnt ashes and at the same time resembles an iron plate hardened by a longstanding ordeal. 
It is an original surface that the artist obtained through a large amount of time and labor. He keeps drawing lines with ball-point pens and pencils until paper wears thin and tears. Although the creation of this unique surface starts with such writing materials as a ball-point pen and a pencil used on everyday objects such as sheets of newspaper or pages of magazines, the maximized repetitive action done by the artist transforms those ordinary objects into an aesthetic product imbued with an extraordinary sentiment. Since this artifact is wanting in any representative figure, color and brushstroke, it is rather awkward even to call the artifact a painting. It is more of tactility than of visuality, and it emanates certain frigid and stimulating feelings, which are not easily found in any other paintings. In addition, it allows one to make quite different interpretations while floating among many different art-historical concepts and tendencies. 

The support and the pigment
Can one regard the black surface of Byungso Choi as a painting? It is obvious that Choi’s work is different from the painting in the conventional sense to which we are accustomed. Nevertheless, having consisted of numerous lines drawn with ball-point pens on the sheets of newspaper, over which lines are again made with pencils, they do not disobey the lexical definition of painting, that is, “the practice of applying lines and colors on a flat surface so as to make images”. No one can deny its properties: endlessly repeated ‘lines’ although they lose themselves in the final, whole surface; the black ‘color’ of ball-point pens and pencils chosen by the artist although no one perceives it as a color; the two-dimensional ‘flat surface’ of a sheet of newspaper although it is not an usual artistic material; the split and torn, irregular ‘image’ revealed by the act of drawing lines although it is not intentional. The black surface of Choi is indeed a painting even though it excludes all modes of depiction and representation and abandons basic painting materials such as the canvas and paint.
For the sole reason that they use only black color, Choi’s paintings have been put under the category of Monochrome painting both in the history of world art and in that of Korean art.[3] The surfaces of these unique paintings, however, totally differ from the flat surfaces of conventional paintings not only in terms of feeling but in terms of structure as well. For the structure of Choi’s painting avoids the conventional relationship between the support and the pigment according to which paint is placed over the canvas. In fact,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support and the pigment has been an essential topic in Choi’s art for a long time. Having been strongly impressed by such artists as Lucio Fontana who ‘ripped’ up the painted support, Barnett Newman who ‘applied’ pigments to the extent that they covered up the support and Yves Klein who ‘soaked’ the support in pigment, Choi once attempted to ‘eliminate’ the support by applying a thick layer of acrylic paint over paper and then sanding the paper off so as to make only a lump of paint remain intact. As he was seeking after a novel aspect of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support and the pigment, Choi finally settled to integrate the support with the pigment without eliminating the support in his newspaper work. In his newspaper paintings for which he draws lines very closely on an entire sheet of newspaper with ball-point pens and then fills up the gaps between those lines with pencils, there is achieved the accumulation of lines, which is intrinsically different from that of planes attained by placing paint over the canvas. This accumulation of lines formulates a structure where the support and the pigment unify with each other as the pigments from ball-point pens and pencils penetrate into the support of newspaper rather than being placed over it. In his paintings, this unification of the support and the pigment lets original materials attain a mysterious state of transforming into a totally different one. Here, the identities of the original materials such as newspaper, ball-point pen ink and pencil lead disappear, and they are reborn into a thin and solid metallic material. This amazing process certainly deserves to be called ‘birth from disappearance’[4].

Process and outcome
The fundamental force that allows Choi’s paintings to “be born as they disappear” is generated from his repetitive action of drawing oblique lines on the support. He continuously performs the repetitive action of ‘drawing lines’ to the extreme extent that not only the appearance of newspaper cannot be recognized but also it is transformed into an entirely different material. Anyone who has the experience of covering up a page of a notebook using a ball-point pen or a pencil would remember how difficult it was to fill up the tiny space. In Choi’s case, it is a sheet of newspaper. One may guess how much patience and time are required to draw lines with a ball-point pen and then a pencil until the entire plane of a sheet of newspaper —sometimes both front and back pages of a sheet— is blackened and is even torn up. The artist constantly draws lines in a state of self-effacement, and this action of drawing lines obtains its own autonomy and extends itself. And this repetitive act of the artist stops finally at the moment when material itself reaches its limit.    
In the paintings of Choi, action itself is prioritized unlike in conventional painting where one moves the brush to produce a certain outcome, and the picture plane as the outcome naturally results from the action as the process. Although it is subject, to some extent, to the differences in physical limitations such as the quality of paper, temperature and humidity and in methods such as demarcating paper by either drawing grids or folding it or not and filling the ground with a ball-point pen or applying ink onto the ground, Choi’s painting entirely depends on his repetitive action. At the point where his hand stops drawing lines is born a new material. The picture planes that seem to resemble certain wood grain or mineral matter remind one of some artistic trends registered in the history of art in the respect that objecthood is emphasized in them, but there are basic differences between those artistic modes and Choi’s paintings. The difference between the objecthood of the work and original materials separates Choi’s paintings both from Minimalist sculptures that lay emphasis on the objecthood of unprocessed industrial materials and from Abstract Expressionist paintings that emphasize the objecthood of the materials used by splattering or thickly applying paint. In the respect that the intense labor done by Choi determines the production process, Choi’s art is different from Arte Povera[5] that attached weight to the accidental changes accommodated by minimizing the intervention of the artist. In other words, Choi’s painting has its own distinctive qualities although it shares certain similarities with some artistic tendencies: the external similarity with Minimalism in terms of the minimization of form and raw texture; the physical similarity with Abstract Expressionism in terms of great importance placed upon the artist’s gestures; the similarity with Arte Povera in terms of the process through which commonplace, original materials are transformed into aesthetic ones. 

Concept and labor, art and everyday life
The painting of Choi, who establishes his own artistic individuality while standing on the boundary and expanding the both sides of it, can be best characterized by his choice of materials and the way he utilizes them. The implicative significance and form of newspaper would have played some role in his decision to use newspaper as one of the main material for his work, but most importantly it was due to the simple fact that “newspaper pages cost nothing and they can be easily found”. In recent years, he sometimes buys newsprint paper, but for the support he has used mainly newspapers and magazines and sometimes everyday objects such as airline tickets or paper money. And for the mediums he utilizes writing materials such as ball-point pens and pencils instead of painting materials such as brushes with paint on them.
It is needless to say that many artists have used everyday objects as materials for their art in the history of art. Such Cubists as Picasso and Braque made collages with parts of newspaper and magazines, Surrealists and Dadaists including Duchamp contributed to the widening of the definition of art by engaging everyday objects in artistic environments, and Rauschenberg, who was one of the pioneers of Pop Art, experimented with the technique of assemblage by attaching a pillow and bedclothes to a board and applying paint over them. In the history of art, however, whenever an object was employed in a work of art, the object often functioned to emphasize the conceptual aspect to make a new artistic attempt by eradicating the boundary between everyday life and art despite the materiality of the object. On the contrary, Choi’s everyday objects undergo change not in the context of ‘concept’ where only their usage and meaning are altered but in the context of ‘the real’ in which they are transformed into totally different materials due to the artist’s repetitive action of extremity. It may be said that the painting of Choi truly exemplifies the blurring of the boundary between everyday life and art since in it ordinary materials and ordinary action of drawing lines are the agents that produce an entirely new form of aesthetic objects. In fact, the coexistence of daily life and art can be detected also in his artistic attitude that is closely related to his life. For everyday life and art are inseparable for Choi who works all day long by constantly moving his hands while listening to music in a back room in his house.

An unreadable newspaper
One may feel that something is missing in the examination of Choi’s material of newspaper simply from the angle of its status as an everyday object. It is probably because of the symbolic implication of a ‘newspaper’. A newspaper, which delivers new stories day after day, is a communication medium that informs us the current events happening in the political, social and cultural fields. But the articles in it are not always true and sometimes it contains articles that distort facts due to their biased perspectives and conceal reality under external pressure. In 1974 when Choi graduated from a fine art college, Korea was experiencing political and social turbulences since it had been passed only a year or so since Park Chung Hee declared the Yusin Constitution. Although some resistances were made in opposition to the Yusin System, an air of social unrest pervaded Korea at the times when freedom of speech was suppressed. Especially in the realm of art, the Korean art scene was dominated by Korean Monochrome Painting that looked away from reality and pursued the theme of return to nature while emphasizing the white color. It is not implausible to conclude that such an attitude originated from artists’ natural response to conceal what they intended to express as they were alienated from society and their minds were impoverished.
On the other hand, however, some Korean artists devoted themselves to a series of experimental artistic movements that had continued since the late 1960s. They did not ignore reality and expressed their voices though only within the field of art. A good example can be provided by the case of Sung Neung-Kyoung who produced works of performance art by use of a newspaper. In The 3rd ST6 in 1974, Sung assumed an indirect critical stance towards the impartiality of the press by pointing out that the practice of newspaper editing could contribute to the misrepresentation of facts. For over a month of the exhibition period, every day he separated news articles and other materials such as photographs or blank margins by cutting out only the news articles from 8 pages of a newspaper and putting them in two acrylic boxes. Also in 1977, he attempted to nullify the contexts and contents of newspaper articles by cutting 8 pages of a newspaper into 256 pieces and putting them together at random to remake 8 newspaper pages.[7]      
Like the abovementioned work of Sung, the newspaper work of Choi is not irrelevant to the symbolism that a newspaper had in the 1970s. It is possible that Choi started to cross out the contents of a newspaper because he could not bear any more the suffocating feeling that he had in reading newspapers delivered to him every day at that time. Having been erased to the extent that no one can even guess what they were, the contents of the newspaper are no longer readable, but the newspaper was what informed one of reality in the 1970s. It can thus be said that Choi did intend to reflect the social circumstances of the times in his artistic endeavors, though not as directly as Sung did. Since then, Choi has continued to make a series of works in which the original usages of materials are intentionally discarded so as to be recreated in the context of art: he crossed off the original contents of the materials he chose in order to produce an unreadable newspaper, a magazine whose content cannot be read, a useless airline ticket, worthless paper money and so on.

Korean Monochrome Painting and experimental art
Choi has been neither properly evaluated nor examined as an artist in spite of the originality and art-historical importance of his art. His name has been mentioned in the discussions of contemporary Korean art only as one of the artists of Korean Monochrome Painting, which was the dominant artistic tendency in Korea in the 1970s.[8] However, this only attests to the absence of the thorough observation of Choi’s art. It is rather impossible to place anyone’s work under a specific artistic mode, but it is especially unreasonable to observe the work of Choi only in the context of Korean Monochrome Painting. The newspaper work of Choi is something more than a work of Korean Monochrome Painting because it uses an everyday object of a newspaper which has certain social connotations and the examination of his works made before and after his newspaper work reveals that a considerable aspect of his art seems to be related to experimental art. In some exhibitions such as Korean Experimental in 1974 in which he participated for the first time and Daegu Contemporary Art Festival in which he participated for 5 years starting from 1974, Choi showed several Happenings that concentrated on the aspect of performance and some conceptual works: He touched flowers from a vase to the ground and marked only some petals with chalk; he chopped a fish up at a gallery in a summer day and left it there to stink; he placed beside a photo of a specific scene several words to describe the photo.[9] Even in recent years when working with his newspaper works, he also made installation works from time to time: he put some broken pieces on plates; he scraped off the edges of the pages of books including Sense and Non-Sense by Merleau-Ponty and then set them in acrylic boxes while making them unreadable. These instances deny the fragmentary evaluation of Choi simply as a Korean Monochrome painter and clearly proves that he has involved himself with experimental art.
It is also true that the work to which Choi has devoted himself for decades has something in common with Korean Monochrome Painting in the 1970s, which can be characterized by the use of monochrome colors, the emphasis on objecthood and the neutralization of the picture plane through the repetition of actions, in the fact that its outcome meets the definition of ‘painting’ as the tremendous amount of his labor transforms the two-dimensional object of newspaper into a new picture plane. Especially in terms of material and action, his painting shares some similarity with ‘Ecriture’ by Park Seo-Bo, which is representative of Korean Monochrome Painting, in the respect that it is produced through the process of constantly ‘drawing’ slant lines with a ‘pencil’. Nevertheless, Choi’s painting not only has different origins—experimental art and Informel— but also uses different methods and are based on different concepts. In the ‘Ecriture’ Series for which Park applied milk-white paint onto the canvas covered with Chinese drawing paper and then repeated the action of making slant lines with a pencil on the canvas before paint dries up and applying paint over it. Here, the pencil lines function to some extent as a supplementary apparatus—such as fingers, wood sticks and metal fragments—to scrape off or press out paint. On the contrary, in Choi’s newspaper work, the pencil (ball-point pen) line is the sole tool to integrate the picture plane into a whole. Also, in Park’s ‘Ecriture,’ one is able to detect the direction and vestiges of the artist’s action as pencils or other apparatuses leave their traces on the layer of paint. On the other hand, Choi’s work remarkably demonstrates the unification of action and objecthood since it does not retain any trace of action and its entire surface is homogenized as he draws lines in the entire pictorial surface with a ball-point pen and a pencil to the point where the scraping and pressing of the surface develops into the destruction of material. Hence, Choi’s art indeed allows one to examine it in the context of Korean Monochrome Painting in the 1970s to some extent, but it does not mean that it should be restricted to the category of Korean Monochrome Painting. Simultaneously, his newspaper work should not be restricted to the category of experimental art either although it is rooted in some experimental artistic tendencies such as object art, installation art, Happening and film in the 1960s and 1970s, because it concludes itself as ‘painting’.        

The art of ambiguity that continues throughout his life
As examined so far, there is no doubt that the art of Choi is indeed ambiguous. As he says, his paintings are “of both drawing and erasing, of both filling up and emptying out and of both sense and non-sense.” He draws lines, but he erases letters by drawing lines over them. As he fills the picture plane with lines, himself and the original material are emptied out. He nullifies ‘sense’ by erasing the letters on a newspaper, but what results from this nullification is not ‘non-sense’. This ‘art of ambiguity’ of Choi has blurred the boundaries between independent entities that have been incompatible with each other such as the support and the pigment, process and outcome, concept and labor, object and painting, everyday life and art and experimental art and Korean Monochrome Painting. Yet, his own distinct logic has always been inherent in his ‘ambiguous’ art: “an artist must figure out what he or she can do, and his or her work should be capable of generating diverse interpretations.” Byungso Choi’s ‘art of ambiguity’ continues as he does what he can do little by little: The objecthood of the picture plane varies in accordance with the quality of newspaper; he produces a three-dimensional object by attaching the narrowly cut and folded pieces onto the envelope; he rubs a sheet of newspaper on the concrete floor with graphite; he scraps up torn and crumpled, black fragments of newspaper, not a perfectly square sheet of newspaper, and installs them on the floor.  And it will keep unfolding itself as his life continues.  


[1] The philosophy of Merleau-Ponty has been described as ‘the philosophy of ambiguity’ since the publication of Une philosophie de l’ambigüité: L’existentialisme de Maurice Merleau-Ponty written by Belgian philosopher De Waelhens in 1951.
[2] This is related to The Voices of Silence by Andre Malraux and Indirect Language and the Voices of Silence for which Merleau-Ponty was inspired by the very book of Malraux.
[3] The term ‘Korean Monochrome Painting’ refers to the Korean painting tendency that emphasized objecthood through the repetitive action applied to Korean paper or hemp cloth by use mainly of such monochrome colors as black and white in the early and mid 1970s. It has been also called ‘White Painting’ since 5 Korean Artists: 5 Whites held at Tokyo Gallery in Japan in May 1975 (Park Seo-Bo, Kwan Young-Woo, Huh Hwang, Lee Dong-Yeup and Seo Seung-Won).
[4] The subtitle of Choi’s solo exhibition held at Gallery M in Daegu in 2006 was ‘Birth from Disappearance’. 
[5] The term ‘Arte Povera’ refers to an avant-garde art movement started in Italy in 1967. It aimed to abolish the boundary between life and art by annulling the established definition of art while inquiring into the materialistic nature of anti-aesthetical materials such as soil, asbestos, graphite, ice, wax, tar and wire.
[6] This was an influential Korean experimental art group that took over AG (Korean Avant-garde Association, 1969-1975). As one can infer from its title that consists of the initials of ‘Space&Time,’ its member artists such as Lee Keon-Yong, Kim Ku-rim, Sung Neung-Kyoung, Hwang Hyoun-Wook, Park Won-Joon, Kim Moon-Jah, Han Jeong-Moon and Yeo Woon concentrated mainly on conceptualistic space installation art.
[7] Please refer to Kim Mee-Kyoung, Experimental Art in Korea, Sigongart, pp. 190-194.
[8] Byungso Choi was started to be considered as a Korean Monochrome painter since his participation in some important exhibitions of Korean Monochrome Painting such as Korea: A facet of Contemporary Art (1977) at  Central Museum of Art, Tokyo and Ecole de Seoul (1976-1979) at 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Korea. 
[9] Beside a photograph in which two birds are entangled with each other, he placed 6 words such as ‘sky, cloud, wind, birds, flying and meeting’ to suggestively describe the photographic image.  

EXHIBITION PAGE

일상의 수묵

Aug 19, 2008 – Sep 19, 2008

전시서문
글. 신혜영 | 가인갤러리 큐레이터


장르의 구분이 불분명하고 매체의 혼성이 극히 자연스러운 오늘날 이 땅의 현대미술에서 유독 하나의 특수한 영역으로 자리해 온 분야가 있다면 그것은 동양화 혹은 한국화 - '동양화'라는 명칭이 일제의 잔재라는 이유로 '한국화'라 부르기를 자청해 온 우리의 전통회화는 사실상 중국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한국화'라는 명칭 또한 적절치 않다는 것이 필자의 개인적 견해다 - 일 것이다. 회화를 동양화와 서양화로 나누는 이분법적 구분이 오늘날 실효성이 있는가에 관한 한 매우 회의적이지만, 문화와 사상 면에서 동서양의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함을 인정하는 한 응당 동양화와 서양화의 구분은 있을 수밖에 없다. 다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동서양의 그림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하는 것이 마땅할 진데, 문제는 한 쪽이 다른 한 쪽의 일방적인 주도에 따라가거나 혹은 영향 자체를 부정하고 상대를 무조건 밀어내려는 극단적 태도일 것이다. 우리 나라의 미술현장에만 초점을 맞춰본다면 근대 이후 진지한 성찰 없이 무분별하게 서구 미술을 수용한 것이 잘못이라면, 전통회화를 수호하고자 높은 담장을 치고 그 안에 갇혀 있었던 것 역시 문제였던 셈이다. 맹목적으로 배우고 익힌 전통적인 화목(畵目)과 수묵 필법(筆法)에 따른 문인화나 산수화가 오늘날 사람들의 감동과 공감을 얻어낼 리 만무하다. 그러한 그림은 오히려 동양화가 고루한 옛 것이라는 반감만을 일으키고 창조적인 예술작품으로서의 동양화의 입지를 제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상 이러한 동양화의 위기와 그에 따른 전통의 현대적 계승이라는 화두는 오래 전부터 우리 화단을 지배해 왔다. 특히 1990년대 후반 재료를 혼용하고 소재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전통산수를 새롭게 해석하려는 일부 작가들의 시도는 이후 동양화의 현대적 해석이 본격적으로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2000년 이후 최근까지 양적으로 크게 성장한 '젊은 동양화'는 전통회화를 오늘날 시대에 맞게 적용하고 변형하는 데 있어서 진지한 성찰보다는 감각적인 변용에 초점을 맞추어 질적인 성장은 더딘 모습이다. 상당수의 젊은 작가들이 전통의 이미지를 표피적으로 차용하거나 단순한 소재로서 활용하고, 전통적 기법과 재료를 현대적 소재에 단순히 접목시키는 데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전통적 진경산수를 그대로 모사한 후 몇 가지 현대적 오브제를 삽입한다거나 장지에 수묵담채로 대중적인 캐릭터나 브랜드 로고를 그린다든지 전통적인 벽화기법으로 현대적 아이콘을 그려 넣는 식이다. 이러한 그림들은 대부분 작가 내부의 진지한 고민 없이 전통을 외부로부터 끌어오는 방식인 바 바람직한 전통의 현대적 계승이 되기 어렵다. 작가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전통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추구하고 그것을 자신만의 고유한 시각으로 읽어내 창조적 조형언어로 표현할 때만이 바로 진정한 전통의 재해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때 비로소 동양화는 동시대의 보편적인 예술이 될 수 있다. 물론 그 표면적 양상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사실상 오늘날 '젊은 동양화'의 문제는 전통을 감각적으로 활용하고 변형하는 그 자체에 있다기 보다 그러한 그림만이 주류로서 주목 받고 있다는 다양성 부족의 현실에 있을 지 모른다.  <일상의 수묵>은 이러한 '젊은 동양화'의 편향된 흐름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출발한 전시다. 최근 트렌드의 작가들과 달리 동양화의 전통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숙성시켜 자신 내부로부터 나오는 울림을 자신만의 고유한 표현 방식으로 그려내는 또 다른 경향의 작가군을 보고자 하는 것이다. 전시에 참여한 다섯 작가들은 주로 한지에 수묵과 채색이라는 전통 재료와 기법으로 자신의 내밀한 일상에 천착한 그림을 그린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들에게 지필묵은 가장 익숙하고 편하게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그려낼 수 있는 도구이며, 그러한 도구로 이들은 전통적인 화목을 그리기 보다는 자신의 삶을 둘러싼 '지근지처(至近之處)'의 친근한 소재들을 그려가고 있다. 최근 새로운 재료와 기법으로 전통산수에 도시 풍경을 접목시키는 일부 동양화 작가들의 ‘신(新)산수풍경’과 달리, 이들 '일상의 수묵'의 작가들은 주로 기본적인 재료와 기법에 충실한 채 객관적 대상으로서 ‘바라보는’ 풍경이 아닌 지극히 주관적인 자신의 삶 한가운데서 ‘만나는’ 일상에 주목한다. 또한 자신이 속한 삶의 '공간'과 그 안에서 의미가 되는 '순간'에 대한 내밀한 관찰로부터 나오는 진솔함은 작품의 은은하고 담백한 형식적 특징과 잘 어우러진다. 이들에게 한지와 수묵은 당위의 재료이기보다는 방법적 필요에 의한 조형수단이며, 그것의 자유로운 운용은 그들의 운신의 폭을 넓혀주어 다음 단계의 새로운 시도를 가능케 한다.  간략하게 다섯 작가의 면면을 살펴보자. 먼저 김성희(1974- )는 자신의 개인적인 삶의 공간을 한지에 농담을 조절한 먹의 필선(筆線)으로 하나하나 그어나가 형태를 완성한다. 그곳의 물건들은 일상의 시간에서 그녀가 반복하여 만지고 사용하는 것들로 애초에는 그녀와 아무 상관없던 것이었으나, 개인적인 필요나 욕구에 의해 생활공간 안으로 들어와 일정한 공간을 점유한 후에는 외부와 아무 상관없이 내부에서 언제나 그녀 자신과 호흡하는 것들이다. 일일이 가로 먹선을 그어가며 형태를 완성해가는 과정에서 화면 속 사물들은 또 한번 그녀의 들숨과 날숨의 진동에 따라 가늘게 흔들리며 반응한다. 세밀하게 떨리는 먹선으로 표현된 사물과 그것들이 놓인 삶의 공간은 애초부터 그곳에 있어 부유하는 생명체들처럼 불안하고도 자연스럽다.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나 자란 김장수(1974- )는 폐교가 된 자신의 어린 시절 학교에 대한 기억을 수묵으로 담담히 그려낸다. 비교적 옅은 먹과 갈필이 두드러지는 그의 그림은 여백을 적절하게 살려 전체적으로 담백하면서 사람의 마음을 아련하게 만든다. 그 가운데 고요한 학교 운동장에 놓인 그의 기억 속 소중한 물건들 - 구슬, 운동화, 주전자, 옷, 우산 등 – 은 때때로 채색의 옷을 입으며 보는 이의 시선을 잡아 끈다. 이렇듯 아주 작은 요소들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작가의 큰 장점이다. <ㅇㅇ아 밥먹어~>, <내일당번>, <보물1호>, <단상 위에 서다> 등 작가가 붙여 놓은 제목과 작은 물건이 놓여있는 담담한 화면을 번갈아 보고 있노라면 픽 웃음이 나면서 절로 저마다의 어린 시절이 떠올라 마음에 무언가 한 가득 차오른다. <마음을 두다>와 <마음의 홍수에 잠기다>라는 두 번의 개인전 제목은 자신뿐 아니라 보는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그의 그림의 특징을 한 마디로 잘 말해주고 있다. 자신이 다니던 대학교 교정과 자신이 사는 동네 주변을 채색 없이 먹만으로 그려내는 고경희(1981- )는 말 그대로 '일상의 수묵'이라는 전시 제목과 매우 잘 부합한다. '지근지처'라는 제목으로 가진 개인전에서 그녀는 <퇴계인문관에서 보다>, <금잔디 광장 옆 진입로>, <공학관에서 바라본 광장>, <다산경제관 뒷길> 등 자신의 학교(성균관대학교) 곳곳을 백묘법을 기본으로 한 수묵필법으로 담담하게 그려냈다. 대학 4년과 대학원 2년을 보낸 학교야 말로 그녀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매우 친밀한 일상의 공간이었을 것이다. 일정한 틀 안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부감의 시선으로 각각의 장소를 포착해낸 그녀의 그림들은 평범하고 진부한 풍경화처럼 보이지만, 평소 의식하지 않았던 어떠한 공간을 새롭게 바라보았을 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분위기를 세밀한 시선으로 포착해낸 것이다. 특히 같은 장소를 각기 다른 시간대에 그린 연작 - 지난 개인전에서의 <학생회관 잔디정원>에 이어 이번 전시의 <화정7단지 앞 근린공원> - 은 동일한 풍경이 빛의 정도나 날씨의 차이, 혹은 그녀의 기분 상태에 따라 달라져 보임을 필법과 먹의 농담을 달리하여 표현함으로써 먹이 얼마나 미묘하고 매력 있는 매체인지를 극명히 보여준다.
수묵 혹은 수묵담채로 그린 앞의 세 사람의 담담한 그림에 비해 구인성(1976- )의 그림은 비교적 채색도 강하고 먹도 진하다. 그간 그는 사람의 왕래가 잦은 도심의 횡단보도, 버스 정류장, 지하철 등의 모습을 배경 면은 밝게 채색하고, 사람 형상은 수묵의 진한 점들로 찍어 대비와 조화가 공존하는 특색 있는 화면으로 선보여 왔다. 먹점으로 매워진 사람들의 모습은 번잡하고 떠들썩한 도시의 인간군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대도시 서울에서 느끼는 작가의 이방인으로서의 감성을 드러냈다. 이번 전시의 그림들에는 군중은 사라지고 변형된 화면 안에 ‘공간’이 강조된다. 기존의 사각형태 화면이 아닌 사다리꼴, 물음표, 유턴사인 등 다양한 형태의 화면 안에 갇힌 횡단보도와 도로의 풍경은 이제껏 그려 온 공간들을 한 발자국 떨어져서 바라보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상상력을 가미한 새로운 조형적 표현을 위한 시도로 읽혀진다. 특기할만한 것은 오랜 기간 그가 먹을 다뤄온 방법인데, 그는 진하게 먹물을 먹인 삼합지(三合紙) 위에 한지를 대고 손가락이나 끌로 눌러서 형상을 만들거나 자연스럽게 배경에 먹색이 베이게 한다. 이러한 방법은 먹이 스미고 번지는 우연적인 효과에 의해 단순히 붓으로 그리는 것보다 훨씬 더 다채롭고 풍요로운 화면을 가능케 한다.
이영빈(1980- )은 전통기법으로부터 스스로 발전시킨 고유한 표현법으로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일상을 담아내는 작가로 ‘수묵’보다는 ‘일상’에 무게가 실린다. 대중목욕탕, 여인숙, 자신의 방 등 평범하지만 은밀한 영역으로서 쉽게 공개되지 않는 공간을 조감도를 그리듯 활짝 펼쳐놓는다. 언뜻 낙서나 자동기술에 의한 것처럼 보이는 그녀의 그림은 연필선이 강조된 드로잉의 성격이 강하지만 동시에 닥지나 장지 위에 분채나 담채로 은은하게 채색한 고유한 회화적 특징 역시 무시할 수 없다. 거창하지 않은 소소한 삶의 단상을 동양화의 전통적인 일획의 필선 대신 가늘게 흔들리는 섬세한 선으로 그려낸 그녀의 그림은 기법과 소재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균형과 긴장을 동시에 발산한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나 자신을 씻는 행위이다. 그러기에 나에게 행복감을 가져다 준다. 아무것도 욕심내지 않고 단지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고 싶다"는 고백은 자신의 평범한 일상을 그려가는 그녀의 작업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치유하는 과정임을 잘 말해주고 있다.
그것이 자신의 집 부엌이든, 어릴 적 기억 속 학교이든, 아파트 앞 공원이든, 늘 건너 다니는 횡단보도이든, 대중목욕탕이든 이들이 그림에서 보여주는 장면은 작가 자신의 내면에서 출발하여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지만, 그림을 바라보는 같은 시대의 보통 사람들 역시 공감할 수 있는 매우 구체적이고도 보편적인 이야기들이다. 사실상 이러한 소소하고 하찮은 삶의 단상이 그림의 소재가 되는 것은 거창하고 획일적인 화재(畵材)가 무의미해진 현대미술에서 이제 지극히 일반적인 일이지만, 이를 전통적 재료로 접근하는 동양화의 시도는 새롭게 느껴진다. 이는 그만큼 동양화의 소재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가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에 맞게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듯, 자신이 사용하고자 하는 재료 안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기법과 소재를 시도 하는 것 역시 작가의 기본 태도일 것이다. 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보편적 예술로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근거지가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것과 그것을 짐으로 안고 살아가는 것은 분명 다른 일이다. 우리 ‘젊은 동양화’가 좀 더 진지하고 좀 더 자유로워져야 할 이유다. <일상의 수묵>이 이를 위한 작은 움직임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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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last der Republik & O2 World

Jul 18, 2008 – Aug 02, 2008

공화국 궁전과 O2 월드
글. 이문주


2007년 5월, 베를린 장벽이 남아있는 구간인 이스트사이드 갤러리 건너편에는 규모가 큰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오랫동안 길쭉한 사각모양 빈 터로 남아 있던 뮬렌 거리(Muelen Strasse)와 바샤우어 교각(Warschauer Bruecke) 사이의 이 땅은, 내가 가진 베를린 지도에서는 “Anschutz Arena 공사 중 -- 2007년 완공예정”으로 표시되어 있다. 실제로는 2008년 9월 개장을 앞두고 현재에도 막바지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빠른 속도로 지어지고 있는 이 아레나는 건설에 투자한 휴대전화회사의 이름을 따 O2 월드로 불려지며 미국의 거대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Anschutz Entertainment Group이 소유, 운영하게 된다.
저 멀리 아레나 공사장 뒤편에는 역시 과거 동베를린에 지역에 속했던 알렉산더 광장에 서있는 TV 타워가 보이고, TV 타워에서 300 - 400m쯤 떨어진 슐로스 광장(Schlossplatz)에는 또 하나의 큰 공사가 이루어지는 중이다. 바로 동독의 국회의사당이라 할 수 있는 팔라스트 데어 레푸블릭 Palast der Republik 의 해체공사이다. 빠르게 완공되어 가는 O2 World와 서서히 분해되어가는 Palast der Republik의 기념비적인 스타일은 시각적으로 매우 유사하며, 똑같은 텔레비전 타워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흥미로운 대칭적 풍경을 이룬다.
팔라스트 데어 레푸블릭은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폐허가 된 옛 중세시대 궁전 터 위에 지어졌으며 1973년 착공하여 1976년 문을 열었다. 공산정권 하의 공공건축물에 궁전(Palast)이라는 봉건적 이름을 붙인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실제 내부는 콘서트 홀, 레스토랑, 극장 및 각종 편의시설 등 문화공간과 시민을 위한 공공시설로 채워진 장소였음을 도면으로 알 수 있다.
통독 이후 Palast der Republik은 그 존폐여부를 놓고 최근까지 13년 간의 첨예한 논쟁을 거쳤고, 보존을 주장하는 시민단체들의 강력한 반대운동에도 불구하고 독일의회는 결국 2003년에 철거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철거된 터에 사라진 중세 궁전을 복원할 것이라는 베를린시의 향후 계획은 예산낭비에 무의미한 짓이라는 여론의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터무니없이 부족한 예산 때문에 실행여부도 불투명하다. O2 World 공사 개시시점과 거의 비슷하게 2006년 2월에 시작한 이 GDR건물 해체공사의 독특한 광경은 관광객들의 인기를 끌고 있기도 한데, 현장에는 진지하게 개념을 설명하는 표지판이 세워져 이 공사가 무작정 때려 부수는 것이 아닌 선택적이고 순환적인 철거과정“Selektiver Rueckbau”을 실행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들이 강조하는“Selektiver Rueckbau” 는 무엇일까. 오랜 논쟁에서 해체 주장이 결국 힘을 얻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건물의 건축자재로 쓰인 석면 때문이었다. 공화국 궁전을 해체하는 과정은 O2 월드의 건축 속도와 뚜렷한 대조를 보일 만큼 느리기 짝이 없는데, 이는 기본적으로는 유해물질을 안전하게 제거해 나가는 조심스러움 때문이고, 더불어 그 분해한 철근 덩어리 등의 건축잔해들을 보존하여 다른 곳에 사용할 가능성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황당하게까지 들릴 수 있는 이러한 친환경적이고도 지극히 비경제적인 폐기건축물 재활용 전략은 베를린의 외곽 지역인 마짠(Marzahn)에서 최근까지 계속되고 있는 재개발에 실제로 적용된 방식 중 하나다.
마짠 하면 떠오르는 것은 GDR의 전형적인 건축 양식인 콘크리트 슬랩 조립식(plattenbau) 공공주택건물로 가득 찬 우울한 베드룸 타운의 이미지였다. 이러한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짠시가 통독 이후 기울여온 쇄신의 노력은 엄청났다. 그 한가지가 시의 이미지 중심에 새겨져 있는 천편일률적인 회색 대단지 고층 아파트들을 썰듯이 쪼개고 분해한 후 그 콘크리트 덩어리들을 다시 쌓고 재조합 하여 저층의 빌라 단지로 탈바꿈시키는 재개발이다. 이 과정에 투입된 돈, 시간, 인력, 그리고 무한한 인내심은 곧 마짠시가 행한 재개발이 효율성이나 수익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즉 자본주의적 재개발과는 동떨어진 것임을 증명한다. 과연 팔라스트 데어 레푸블릭 Palast der Republik도 언젠가 또 다른 모습으로 도시의 새로운 건축물 어딘가에 스며들어 재생되리라는 것을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 쪽에서는 공화국 궁전이라는 정치적 역사를 지우고 그 이전 시대 궁전의 복제품을 지으려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오락과 소비의 궁전을 지어 올리고 있는 상황, 베를린의 도시 패브릭은 이처럼 서로 다른 재개발 콘텍스트의 콜라쥬였다. 2007년 6월부터 12월 사이에 제작된 “바샤우어 거리” 연작 (Warschauer Strasse von Mai bis Juni / Warschauer Strasse von Juli bis August )에서 나는 봄 여름을 지나며 신축공사장 옆 공터의 모래더미와 벽돌 등 잔해 위에서 차츰 자라나 빽빽해져 가는 식물의 모습, 그리고 공터의 풍경이 이처럼 변할 때 함께 그 뒤 배경에서 빠른 속도로 자라나고 있는 O2 World의 모습을 압축하여 담았다. 삼면화 “Palast der Republik und O2 World” (2007)는 옛 동베를린 지역에서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는 이 정반대 문맥의 두 재개발 장소를 기록한 장면들이 조합된 풍경이다. 건축물을 지지하던 이념의 유효성이 사라짐에 따라 그 수명을 다한 정치적 건축물, 구조에서 분해되어 나와 리사이클링을 기다리는 잔해들, 침체된 지역의 경제활성을 꾀하며 개발되는 자본주의적 거대건축물, 공사장 흙모래산이 이루는 자연을 닮은 지형과 이를 산수풍경처럼 바꾸어내는 각종 풀, 잡초 등 파편적 장면이 뒤섞이고 재배열되어 해체와 구축의 광경이 하나가 된 파노라마 풍경을 이룬다. 이 세 작품은 두 장소의 지속적 관찰에 기반한 연작으로, 함께 연결되어 각각의 화면 내부에서 완결된 공간이 아닌 서로를 인용하면서 확대되어가는 풍경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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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nard Voïta

Bernard Voïta

Jun 05, 2008 – Jun 28, 2008

공간과 평면의 차원적 차이를 제시하는 사진
글. 신혜영

눈에 보이는 대상을 어떻게 하면 정확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사진이 발명되기 전 모든 화가들의 고민이었다. 무엇보다 3차원의 공간과 2차원의 평면 사이의 괴리를 극복하고자 했던 화가들의 노력은 멀리 있는 물체는 작게, 가까이 있는 물체는 크게 그림으로써 평면에서 공간감을 느끼게끔 하는 15세기 투시원근법의 발견으로 해결되는 듯 했다. 오랜 기간 이 도법(圖法)을 따라온 전통적 회화는 입체감과 안정감을 갖는 것으로 여겨졌고, 대부분의 화가들은 별 다른 의심 없이 그림에 투시원근법을 적용하였다. 그러나 사실상 우리의 지각은 투시원근법처럼 소실점을 중심으로 질서정연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그저 눈에 들어오는 혼란스러운 시각적 단편들을 뒤늦게 하나의 구조로 정리할 뿐이다. 이러한 지각의 혼돈을 깨닫고, 있는 그대로의 지각에 따라 자신이 받아들인 사물을 화면에 재구성한 세잔(Paul Cezanne)의 ‘체험된 원근법(la perspective vecue)’은 이후 많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그들은 더 이상 투시원근법을 따라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한편 19세기 뒤늦게 탄생한 사진은 이러한 회화의 한계를 광학적 방법으로 극복하여 실재와 똑같이 복제하는 획기적인 고안물로서 많은 이들의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사실상 사진 역시 사물의 표면을 반사하는 빛의 기록일 뿐 사람의 실제 지각과는 크게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더 이상 ‘공간’을 ‘평면’에 그대로 재현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사라지게 되었다.
스위스 출신 사진작가 베르나르 보이타(Bernard Voita, 1960- )는 지각의 혼란스러움과 공간을 평면으로 전환함에 있어서의 한계를 인정하고, 오히려 이러한 사실을 자신의 작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현대미술 작가다. 그는 카메라 렌즈를 통해 보이는 이미지가 인간의 눈으로 지각한 이미지와 다르다는 사실을 작업의 동기로 삼아, 2차원 평면(사진)에 나타나게 될 이미지를 위해 3차원 현실(공간)을 조작한다. 특정한 풍경이나 정물을 담은 전통적인 방식의 흑백사진 - 은염사진(gelatin silver print) ? 으로 보이는 베르나르의 사진은 사실상 지금의 사진 이미지와는 전혀 상관 없는 사물들을 공간에 일시적으로 설치하고 그것을 카메라에 담은 것이다. 이는 조각이나 설치와 같은 인접장르와의 연계를 통해 사진이 현실을 그대로 재현한다는 관습적 견해에 도전하는 이른바 ‘사진 조각(photo-sculpture)’ - 종이로 실제 모습과 똑같은 광경을 만들고 사진으로 찍는 토마스 디맨드(Thomas Demand)와 같은 - 의 맥락에 있다. 그러나 베르나르의 사진이 이러한 류의 사진들 가운데 차별화되는 것은 3차원을 2차원으로 전환할 때 일어나는 변형이라는 미술사의 오랜 문제에 집중하되, 원근법이나 은염사진과 같은 전통적인 언어를 사용하면서 동시에 그 과정에서 일상의 레디메이드 오브제(an ordinary ready-made objet)를 통한 일시적인 설치(a temporary installation)라는 현대미술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절묘한 상충지점에 있을 것이다.
베르나르는 자신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들을 사진에 이용한다. 그것은 부엌에서 가져온 주방기구이거나 책상에서 가져온 사무용품이며, 창고에 쌓여 있는 못쓰는 물건들이다. 그는 각종 패널, 막대기, 라디에이터, 냄비, 양동이 등 일상의 사물을 이용하여 카메라 렌즈에 비친 모습이 특정한 풍경과 정물이 되도록 물건의 크기와 거리를 조절하여 배치한 후 사진을 찍는다. 적절한 조명과 카메라 각도 등을 맞추고 원하는 장면이 만들어지기까지 카메라와 연결된 모니터 화면을 보면서 사물들의 위치를 끊임없이 움직여 조율해간다. 사진 속 이미지는 작가의 스튜디오 바닥에 어지럽게 배치된 물건들을 일정한 시점에서 응시하는 카메라 렌즈에 의해서만 지금의 그 이미지가 되는 셈이다. 실제 사물과 사진 이미지 사이의 차이를 극대화하기 위해 그는 작은 정물 이미지를 만들 때에는 그보다 큰 사물을 사용하고, 풍경이나 건축물처럼 큰 공간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대로 그보다 훨씬 작은 사물을 사용하는 등 크기의 대조를 이용한다. 베르나르의 사진은 피사체가 되는 실제 사물과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이미지 사이의 간극이 클수록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사진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옮기리라는 일반적인 믿음을 재치 있게 거스르는 그만의 방식이다.
베르나르의 사진이 지닌 매력은 이처럼 어떠한 인위적 조작도 없이 사물의 일시적인 자리바꿈과 사진의 기본적인 속성만으로 전혀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그로부터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미지가 실재(reality)일 것이라는 사진에 대한 의례적인 기대를 저버리는 데 있을 것이다. 단적인 예로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 혹은 수풀이 넘실거리는 드넓은 초원처럼 보이는 그의 2002년 연작 <무제(풍경)>는 사실상 짧은 털로 된 동물가죽 카펫을 찍은 것이다. 이 사진연작은 조명의 위치와 가죽의 결을 달리하는 최소한의 노력만으로 뜻밖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 감상자들을 놀라게 한다. 이번 전시에 선보일 영상작품 는 이 사진연작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작가 자신의 방에 깔린 카펫을 마치 탐사하듯 따라가며 그 ‘흔적(tracks)’을 찍은 수 십장의 사진을 하나의 영상으로 만든 것이다. 단순한 방식으로 제작된 이 영상물은 마치 넓은 초원 위나 깊은 바다 속을 헤매듯 아득함이 느껴진다.
이처럼 공간이 평면으로 전환되는 데 있어서 일어나는 변화를 작업의 주제로 삼고 있는 베르나르는 원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기본적으로 원근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소실점을 가지는 획일적인 방식의 투시원근법도, 일반적으로 카메라가 포착해내는 사진적인 원근법도 아니다. 그것은 카메라 렌즈에 포착된 화면을 바라보는 작가 자신의 지각에 따라 사물의 위치와 거리를 조절하여 화면의 깊이를 드러내는 일종의 ‘체험된 원근법’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세잔의 정물화에서 중앙에 흘러내린 테이블 보의 양 옆으로 보이는 테이블의 모서리가 일직선이 아니라 어긋나게 그려진 것처럼, 베르나르는 모니터 화면을 참고로 자신의 눈에 보이는 대로 사물들을 배치하여 최종적인 화면을 완성하는 임의적인 방식의 원근법을 따르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사진 연작 중 풍경이나 건물과 같이 공간이 확장되고 이미지의 구성 요소가 많은 사진의 경우 원근법은 대략적인 형태와 깊이를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줄 뿐 정확한 형상을 알아보기 어렵다. 이는 여러 시점에서 보이는 시각적인 단편들을 모아 전체적으로 파악해내는 원초적 지각대로 화면을 구성하는 세잔의 원근법에 관한 견해와 상당부분 일치한다.
또한 베르나르는 전체 화면을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 이미지의 일부분이 초점이 안 맞거나 노출을 과다하게 하여 흐릿하게 보이도록 하는 사진적 효과를 사용한다. 이는 빛의 농담을 이용한 전통적인 회화에서의 대기원근법에 비견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이 역시 그의 사진에서는 멀리 있는 물체일 수록 희미하게 보인다는 전통적인 방식 그대로 적용되지 않고, 작가의 임의대로 사용되어 전체적으로 화면에 깊이가 존재한다는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정도에 그친다. 오히려 이미지의 일부가 흐리게 보이도록 하는 이러한 시도는 사진의 이미지를 이루고 있는 각 요소들을 하나로 통일시켜 사진에 포착된 이미지가 실제 사용된 사물들과 전혀 다른 현재의 이미지로 지각되도록 하는 데 기여한다. 그것은 그가 흑백사진 방식으로 작업하는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각기 다른 크기와 색을 가진 사물들을 결합하여 하나의 사물이나 장면을 만들어 내기 위해 그는 통일된 한 가지 색조를 사용하는 것이다. 사실상 그가 최종적인 결과물로서 흑백사진을 채택한 것은 이처럼 전체 이미지의 형태를 강조하기 위한 방편일 뿐 그 자체에 비중을 두는 것은 아니다. 이는 사실을 그대로 재현하리라는 전통적인 흑백사진에 대한 사람들의 선입견에 반(反)하여, 사진 속 이미지가 실제 사물이 아니라 작가가 그렇게 보이도록 임의로 만든 것임을 알게 될 때 일어나는 반전의 효과를 가져온다.
이렇듯 베르나르의 사진 전반에는 공간을 평면으로 전환함에 있어서 실제 사물이 전혀 다른 새로운 이미지로 보이도록 하는 일종의 환영주의(illusionism)가 내재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일정한 법칙으로 적용되는 전통적인 의미의 회화적 눈속임(trompe l'oeil)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것은 그러한 원근법의 획일적인 적용이 얼마나 인간의 원초적인 지각에 위반하는가를 보여준다. 그의 사진은 어떠한 법칙이나 조작 없이 작가의 눈에 보이는 그대로 즉각적으로 사물을 공간에 배치하여 만들어 내는 화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 역시 작가 자신의 지각에 따른 것일 뿐 궁극적으로 사진을 보는 사람의 지각에 따라 사진의 해석은 열려 있다. 비교적 형상성이 강조되는 이미지에서는 그 이미지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를 사람들이 인식하기 전까지는 적어도 형상적 확실성이 담보되지만, 형상을 암시적으로 드러내는 대부분의 사진의 경우 사람들은 저마다의 시각에 따라 형상을 읽어내고 저마다의 상상력에 따라 이미지를 느끼게 된다. 베르나르 자신의 말대로 “여기서 사진은 더 이상 실재를 포착하는 방법이 아니라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한 방법”인 셈이다. 오브제 설치와 흑백사진이라는 상충되는 매체의 결합을 통해 원근법이라는 오랜 화두를 새롭게 해석하고, 평면과 공간의 근본적인 차원의 차이를 다양한 양상의 사진으로서 묵묵히 제시하는 베르나르야말로 현대미술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가일 것이다.


The Switchover of a Space to a Plane
Text. Hyeyoung Shin
Translation. Jawoon Kim

Before photography was invented, every painter was troubled with how to depict accurately the objects perceived by the eye. Above all, their problem of overcoming the dissociation between the three--dimensional space and the two--dimensional plane seemed to have been solved by the discovery of linear perspective in the 15th century that allowed one to feel the sense of depth by depicting the objects larger as their distance from the observer decreases. Conventional painting, which used this method for a long time, was considered to possess three-dimensionality and stability, and most painters applied linear perspective to their paintings without having much doubt. To tell the truth, however, our visual perception does not interpret what we see in perfect order centering on the vanishing point as in linear perspective, but rearranges a confusion of visual fragments that enter the eye into a structure. Having been influenced by ‘Experienced perspective (La perspective vecue)’ used by Paul Cezanne who realized the disorderliness of perception and restructured on a picture plane the objects that he saw in accordance with his perception as it was, many painters started to free themselves from the obsession that they should obey the rule of linear perspective. Meanwhile, having been developed in the 19th century, photography was favorably received by many as a pivotal device through which they make an exact reproduction of the real while conquering such a limitation of painting in an optical way. As it is revealed that a photograph is merely a record of light reflected from the surface of an object and its image greatly differs from what the human eye perceives, however, one no longer expects to be able to represent ‘a space’in ‘a plane’ as it is.      
The Swiss photographic artist Bernard Voita (1960- ) is a contemporary artist who acknowledges the disorderliness of perception and the limitation of transferring a space onto a plane and makes full use of such fact for his artistic work. He takes as a motive for his art the fact that the image seen through the camera lens is different from the image perceived by the human eye and concocts the three-dimensional reality (space) for the image to be appeared on the two-dimensional plane (photograph). The photographs of Bernard, which appear to be conventional, black and white photographs--gelatin silver prints--of specific landscapes or objects, in fact contain what he photographed after he temporarily installed the objects which were irrelevant to the images that are shown in his photographs. This is in the same context of ‘photo-sculpture,’--as in the works of Thomas Demand who makes scenes exactly identical with the real of paper and photographs them--which challenges the conventional view that photography represents reality as it is by incorporating such adjacent art forms as sculpture or installation art.  Yet, what differentiates Bernard’s photographs from other ones of this kind lies in the well--balanced collision between his use of such conventional vocabularies as perspective and gelatin silver print and the simultaneous use of the vocabulary of contemporary art of a temporary installation with an ordinary ready-made object while he concentrates on the old art historical problem of the metamorphosis that occurs in the switchover of the three--dimensional to the two-dimensional.  
Bernard utilizes for his photographs the objects that he can find in his surroundings. Among them are included kitchen utensils from his kitchen, office supplies from his desk and useless things from his storeroom. He arranges everyday objects such as various kinds of panels, a stick, a radiator, a pot and a bucket in the way that they form on the camera lens a specific landscape or still life by adjusting the sizes of the objects and the distances between the objects and the camera and photographs them. He keeps adjusting the degree of illumination and the angle of the camera and he tunes the scene until he acquires what he wants by constantly changing the locations of the objects while checking the image on the monitor connected to the camera. The image in his photograph can only be achieved only by the camera lens that gazes from a certain point of view at the objects scattered on the floor of his studio. To maximize the gap between a real object and the photographic image of it, he employs the technique of size contrast: he uses a larger object for a small still-life image and a much smaller object for the image of a big space such as a landscape and a building. For the greater the rupture between the subjects of real objects and the image produced by them is, the more effective Bernard’s photograph is. This is his distinctive way to defy tactfully the general belief that a photograph delivers reality as it is.
It may be said that the charm of Bernard’s photographs originates in the facts that their images are totally novel images obtained only through the change of the locations of objects and the use of the basic properties of photography without any artificial manipulation and that they run counter to the usual anticipation for photography that the images we are seeing now are those of reality. A straightforward example of this can be found in his 2002 series entitled ‘Untitled (Landscape)’. The image of a choppy sea or a plain of waving grass is in fact produced by photographing a short--furred animal skin rug. This photography series astonishes viewers with its unexpected images produced only through the minimum efforts of changing the location of lighting and the direction of the fur, TRAX, a video work to be shown in this exhibition, is composed of dozens of the photographs of the ‘tracks’ he made in his exploration of the rug laid on his floor. Standing in front of this video work made through such a simple process, one falls into the vagueness of meandering through the vast meadow or the deep sea.
In obtaining the image that he desires, perspective is the basic technical choice of Bernard whose artistic theme is the change that occurs in the switchover of a space to a plane. But the perspective used by him is neither unified, linear perspective with vanishing points nor photographic perspective that the camera generally captures. Rather, it is a sort of ‘experienced perspective’ through which the artist adjusts the location of the object and its distance from the camera in accordance with his own perception of the image captured on the camera lens. As in the still life of Cezanne where the edges of the table, which appear at the both sides of the tablecloth streaming down in the center of the picture plane, are not straight but run askew, Bernard uses an arbitrary perspective through which he completes the final scene by arranging the objects as they enter to his eyes while checking the image on the monitor. As a result, in the cases of the photographs of landscapes and buildings with extended spaces and a large number of compositional elements, perspective only helps one to recognize approximate forms and depths without revealing precise figures. This greatly corresponds to Cezanne’s view on perspective who intended to compose the picture plane in accordance with the primal perception that comprehends the whole by collecting the visual fragments seen from different angles. 
In composing the overall picture plane, Bernard also uses the photographic effect that makes certain parts of the image blurry by making them out--of--focus or giving them overexposure. This bears comparison with aerial perspective that uses the gradation of color used in conventional painting. In his photographs, however, this too is not employed in the same way used in conventional painting though which the object looks vaguer as its distance from the observer increases. Rather, it is arbitrarily used by the artist so as to stop at letting the sense of depth be perceived in the overall picture plane. Instead, such an attempt to make parts of the image look blurry allows the image captured in the photograph to be perceived as the present images which are totally different from the object actually used by unifying the elements that consist the image of the photograph. It has something in common with the reason that he works in the way of making black-and-white photographs. In order to produce an object or a scene by combining objects of different sizes and colors, he uses a single, unified color scheme. In fact, his choice of ‘black and white’ for the final outcome is only a tool to emphasize the form of the overall image without placing some weight on the technique itself. This brings forth reversal effect that occurs when one realizes that the image in the photograph is not the image of an actual object but something that the artist made to be seen as such against the general misconception of conventional black and white photography that it represents reality as it is.  
As observed so far, a sort of illusionism is inherent in the work of Bernard in general: a real thing appears as something totally different in the process of the switchover of space to plane. Yet, it has nothing to do with trompe l’oeil in the conventional sense that is employed as a rule. Rather, it demonstrates how much the unified application of perspective violates primordial human perception. For the images in his photographs are produced by the immediate arrangement of objects in a space as seen to his eyes without any rule or fabrication tactic. But it too reflects only the artist’s own perception, and ultimately the interpretation of his photographs can vary according to the different perceptions of viewers. Until one realizes how the images are produced, the images of relatively strong figurativeness guarantee at least figurative certainty. In the cases of most photographs of his where figures are only suggestively recognizable, each viewer detects the figures according to his or her own perspective and feels the images according to his or her own imagination. As Bernard said, “Here, the medium of photography is a way not to capture reality but to illustrate certain possibilities.”And indeed, another possibility of contemporary art is illustrated by Bernard who unravels the long-standing puzzle of perspective from a new perspective through the combination of the incompatible mediums of installation art and black and white photography and elucidates the underlying dimensional difference between plane and space through photographs of diverse mo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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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onica Bailey

2 Willow Road & Postscript

Apr 24, 2008 – May 24, 2008

2 Willow Road & Postscript
글. 신혜영 I 가인갤러리 큐레이터

시각예술의 해석에 있어 기호학을 접목한 미술사학자 노만 브라이슨(Norman Bryson)은 사진에서 초점이 맞은 선명한 이미지는 형상적이고 초점 밖에 있는 이미지는 비형상적이라고 구분하고, 후자에 해당하는 형상이 부재한 이미지(imageless image)야말로 상상력과 이야기를 지닌 ‘담론적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오랜 기간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데 힘써온 사진은 그간 형상적인 것에 우위를 두어 왔으나, 더 이상 실재의 복사물로서 복무하지 않는 오늘날의 사진은 굳이 초점의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를 떠나 형상적인 것 너머의 이야기를 하고자 하며 사람들은 그 의도를 읽어내고자 한다.
영국 출신 사진작가 베로니카 베일리(Veronica Bailey, 1965- )의 사진은 대부분 노만 브라이슨의 구분에 의하면 초점이 잘 맞은 형상적 이미지에 해당한다. 책이나 편지의 미세한 종이 질감까지 포착할 정도로 선명한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대상이 본래 지닌 기하학적인 형태를 강조함으로써 초점과 상관없이 추상적이고 비형상적인 것으로 다가오며, 이미지 너머에 풍부한 이야기가 내재되어 있다. 이처럼 형상적인 동시에 비형상적인 베일리의 사진은 저마다의 해석과 상상력을 열어 둔 일종의 시각기호로서 수용자에게 받아들여지며, 이러한 시각기호에 제목이라는 언어기호가 개입됨으로써 다층적인 의미작용을 생산해내고 있다.
베일리의 대표적 사진연작 <2 Willow Road>(2003)로 부터 시작해보자. 이 사진들은 수직으로 세워진 책의 낱장들이 확대된 이미지다. 대상에 밀착된 카메라로 인해 종이의 재질과 닳아진 상태까지 부각되는 이 사진은 분명 형상적 이미지임에 틀림없다. 또한 책이 놓인 각도, 두께와 색이 대조되는 표지와 낱장의 조합, 종이들의 갈라진 지점과 벌어진 정도 등에 따라 미묘한 차이와 변화를 만들어내는 각각의 사진은 조금씩 다른 표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일차적으로 사람들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수직적 패턴이다. 대부분의 사진이 - 몇몇은 책 안쪽의 삽화나 글씨가 살짝 보이기도 하나 – 수 겹의 종이 모서리가 만들어내는 직선만으로 화면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2 Willow Road>는 대상이 지닌 물리적 현존만으로 그 자체 형상적이면서 동시에 비형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2 Willow Road>의 진정한 묘미는 제목이 개입되면서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일차적으로 사람들은 <2 Willow Road>라는 제목 - 우리말로 ‘버드나무 2길’ 정도에 해당하는 – 에서 ‘길(road)’이라는 낱말의 함의와 수직적 형태의 이미지를 연관시켜 파악하고자 할 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개별 사진의 제목을 보는 순간 이미지와의 또 다른 상관관계를 떠올릴 것이다. <높은 빌딩에 대한 인간의 반응> 혹은 <긴 의자에서 바라 본 장면>과 같은 제목에서는 ‘길’이 아닌 ‘빌딩’이나 ‘긴 의자’가 가진 또 다른 재현적 함의를 이미지와 연관 짓다가 <권력의 거만함 >, <예술 안에서의 여성>, <나와 같은 소녀> 등의 추상적인 제목을 만나는 순간 제목과 이미지를 번갈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그러다가 <러시아 아방가드르드 예술>, <최고의 전쟁사진>, <헝가리 요리책> 등의 구체적인 단어가 등장하거나 <골드핑거>, <만 레이>, <본질적인 르 코르뷔지에> 등의 인명에 해당하는 제목을 발견하고는 비로소 이들 사진의 제목이 곧 사진 속 책의 제목임을 알아차릴 것이다.
이 책들은 모두 근대 건축가 에르노 골드핑거(1902-1987)의 개인 서가에 꽂혀 있는 것들로 그 제목의 면면에서 인물의 취향과 관심사, 나아가 삶의 궤적과 인간 관계를 엿볼 수 있다. 먼저 연작 전체의 제목인 ‘2 Willow Road’는 런던 햄스테드(Hamstead)에 위치한 – 국보로 지정된 - 골드핑거의 주택의 이름이다. 베일리는 1997년부터 2001년까지 관광 안내원으로 일하며 그곳의 책들을 찍었다. 헝가리 출신의 건축가이자 가구 디자이너였던 골드핑거는 1929년경부터 파리에서 수학하며 르 코르뷔지에나 만 레이 같은 파리 예술가들과 친분을 쌓았고, 예술가인 우르슬라 블랙웰(Ursula Blackwell)과 결혼하여 1934년 영국으로 건너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햄스테드 지역에 근대건축 양식으로 3채의 ‘Willow Road’ 주택을 지었다. 그리고 그 중 하나인 ‘2 Willow Road’에서 부인과 함께 살다 생을 마쳤다. 위에 나열한 <2 Willow Road> 사진의 제목들은 이렇듯 골드핑거라는 인물을 알아갈수록 수수께끼가 풀리듯 그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골드핑거라는 인물에 대한 사전지식 없이도 <2 Willow Road>는 그 자체로 다층적인 의미작용이 가능하다. 공통된 기하학적인 패턴에도 불구하고 저마다의 표정을 가지고 있는 사진을 보면서 사람들은 초상사진의 얼굴과 이름을 대입시키듯, 책의 이미지와 제목을 대조해 가면서 저마다의 관점에서 사진들을 읽어낸다. 때로는 자신의 느낌과 제목이 기가 막히게 일치하기도 하며 때로는 불일치하기도 한다. 사실상 이 사진들은 베일리가 골드핑거의 책들 가운데 일부를 선택해 자신이 느낌대로 제목과 어울리도록 책의 형태를 만들고 화면을 구성하여 찍은 것이므로 베일리가 파악한 골드핑거의 책 제목에 관한 인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베일리의 주관적 인상에 의한 기호화일 뿐 수용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예컨대 검정 배경에 붉고 흰 책의 낱장들이 삼각형의 구도를 이루고 있는 <예술 안에서의 여성>을 보고 누군가 도도하면서 에로틱한 여성의 느낌을 받았다고 하여 그것이 반드시 베일리의 본래 의도나 다른 모든 사람의 인상과 일치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베일리의 모든 사진들은 보는 사람의 주관에 의해 저마다 다르게 파악되며 그 사람의 상상력과 선입견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베일리의 사진의 매력은 이처럼 지극히 객관적으로 보이는 이미지가 무한히 주관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이른바 열린 가능성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일리의 또 다른 주요 사진연작인 (2005)는 <2 Willow Road>와 여러 면에서 연결되어 있으며 그녀만의 예술적 특징을 더욱 공고히 한다. 개봉된 편지가 봉투 안에 들어있는 형상을 찍은 이 사진들은 화면을 수직으로 가로지르는 접히고 벌어진 종이의 층들이 만들어내는 형태로 인해 전작과 마찬가지로 기하학적 추상의 인상을 준다. 그러나 급하게 찢겨진 편지봉투의 파편과 낡은 종이의 질감, 글씨와 우표 등 보다 상세한 부분이 재현되어 형상적 이미지가 보다 강조된다. 그러나 이러한 형상적 이미지 역시 편지의 정보를 담고 있는 대부분이 초점에서 벗어나 - 노만 브라이슨의 구분대로 – 이미지의 형태에 집중하게 되므로, 한편으로 비형상적이며 그만큼 많은 담론적인 요소를 내재하고 있다. 그러나 일차적으로는 전작에 비해 알아보기 쉬운 대상의 이미지와 ‘추신’이라는 뜻의 전체 제목, 그리고 추신에 해당하는 어구인 <잘 자요 내사랑>, <내 모든 사랑을>, <당신을 그리워하며> 등의 개별 사진의 제목으로 인해 사진의 해독은 훨씬 용이하다. 이미지와 제목으로부터 누구든지 쉽게 이 사진이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 주고 받은 편지임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제목과 이미지 사이의 관계 역시 보다 직접적인 편이다. 예컨대 <잠을 깨우는 키스>라는 제목의 가로 형태의 사진은 위 아래로 살짝 벌어진 봉투의 형상으로 인해 그야말로 가벼운 키스를 연상케 하며(사실상 이 제목은 전쟁 기간 중 밀러가 <보그(Vogue)>에 보낸 기사 중 파리의 독립을 잠을 깨우는 키스로 묘사한 부분에서 따온 것이지만), <사랑해>라는 제목의 사진의 경우에는 봉투가 좌우로 벌어진 모습이 심장의 모양을 떠올리게 한다. 구체적으로 재현적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이러한 사진들 이외의 다른 대부분의 사진도 달콤한 제목과 파스텔 톤의 봉투 색깔, 그리고 전체적으로 안쪽이 보일 듯 말 듯 벌어져 있는 모습에서 에로틱한 은밀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 역시 개인적인 감상일뿐 보는 사람 마다 다른 심상을 떠올리고 다른 인상을 가질 수 있다.
역시 <2 Willow Road>와 마찬가지로 제목과 이미지 너머에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의 편지 대부분은 미국 출신 사진작가 리 밀러(Lee Miller, 1907-1977)가 그녀의 두 번째 남편이 된 초현실주의 예술가 롤란드 펜로즈(Roland Penrose, 1900-1984)와 주고 받은 것들이다. 모델로 사진계에 입문한 밀러는 초상사진과 패션사진을 주로 찍다가 <보그>의 프리랜서 사진기자로 일하던 중, 전쟁발발 후 종군기자로 참여하여 유럽의 중요한 격전지를 다니며 많은 사진을 찍었다. 이 편지들은 주로 1937년부터 1945년 사이에 파리, 아테네, 카이로, 생 말로 등지에 머물던 밀러와 런던에 있는 펜로즈 사이에 오고 간 것들로 그 제목으로부터 당시 상황과 두 사람의 열정적인 사랑을 엿볼 수 있다. 베일리는 동 서세스(East Sussex) 지역의 팔리 농장(Farley Farm)에 위치한 리 밀러 아카이브(The Lee Miller Archive)의 허가를 받아 그 곳에 보관된 편지들을 자신의 작품 소재로 삼았다.
흥미롭게도 베일리의 밀러에 대한 관심은 전작인 <2 Willow Road>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녀가 골드핑거의 ‘2 Willow Road’에 머물면서 발견한 - 골드핑거의 친구였던 - 펜로즈가 밀러의 사진을 콜라주 해 만든 작품 <진정한 여인(The Real Woman)>이 단초가 된 것이다. 피카소, 만 레이, 미로, 타피에스 등의 예술가들과 친분을 맺으며 자신의 예술세계를 펼친 밀러의 작가로서의 면모 - 베일리의 는 사막을 찍은 밀러의 사진 <공간의 초상(A Portrait of space)>(1937)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 와 세계대전 당시 여성 종군기자로서의 활약상, 그리고 한 남자와 격정적인 사랑을 나눈 여자로서의 삶까지 베일리에게 밀러는 작품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밀러의 흔적이 담긴 여러 물건 중 베일리는 가장 사적인 영역에 해당하는 편지를 선택했고, 각각의 편지에 대한 자신의 인상대로 그것들을 입체적 형태로 만들어 사진을 찍었다. 어두운 배경에 놓인 편지들은 마치 베일리가 간접적으로 포착한 밀러의 초상사진을 보는 듯 조금씩 다른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이처럼 베일리의 사진은 과거 누군가에게 속했던 특정한 사물을 통해 그 사람의 현존을 증명한다. <2 Willow Road>의 책과 의 편지는 각각 골드핑거와 밀러라는 20세기 예술가들의 삶의 흔적으로서 그 사람 개인뿐 아니라 주변 인물, 심지어 당시의 시대상황까지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모든 작업은 항상 관계에 관한 것이다”는 베일리 자신의 말처럼 그녀의 사진은 외형적 아름다움 외에 엄청나게 풍부한 텍스트로서 가치를 갖는다. 선적인 추상으로 인한 간결한 이미지 너머로 제목이 주는 암시와 함께 호기심을 끈을 놓지 않고 따라가다 보면, 그곳에는 한 사람의 인생을 중심으로 수많은 관계와 역사적 사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베일리의 책과 편지가 닫혀져 있는 것은 이미지 뒤에 가려진 텍스트의 풍요로운 의미작용을 알리는 단서일지 모른다. 이렇듯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많은 베일리의 사진은 형상적인 것 너머 담론적인 것을 추구하는 현대사진의 특징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2 Willow Road & Postscript
Text. Hyeyoung Shin | Curator of Gaain Gallery
Translatiton. Jawoon Kim

The critic and art historian Norman Bryson, using semiotics in the interpretation of a visual art, characterizes in-focus photographic images as figural and out-of-focus ones as non-figural and asserts that an imageless image, which falls under the category of the latter, is discursive while being embedded with imagination and a story. Having been devoted to representing an object as it is for a long period of time, the medium of photography has given priority to the figural. However, today’s photography, which no longer serves to reproduce the real, intends to tell the story beyond the figural while being indifferent to the fact that the subject is in focus or out of focus.
Most of the photographic works of English photographic artist Veronica Bailey (1965- ) render, according to the categorization of Norman Bryson, in-focus, figural images. For the images are so clear to capture even the delicate texture of paper used for the book or the letter. Their emphasis on the primary, geometric shapes of objects makes one perceive their images as abstract and non-figural and hear the abundant stories hidden behind the images. Bailey’s photographs, which are figural and non-figural at the same time, are received by the receiver as some sort of visual signs that allows each receiver to apply his or her interpretation and imagination to them. And as linguistic signs of titles are interveningly added to those visual signs, multi-layered significations occur in her photographs. 
Let us start with 2 Willow Road (2003), which is Bailey’s important photography series. In these photographs, the pages of the books vertically standing are enlarged. Obviously, these photographs show figural images as even the texture and wear and tear of paper can be perceived owing to the position of the camera at a very close distance to the object. Also, each photograph has a slightly different expression as subtle difference and change are produced by the different angles used to books, the combination of the different thicknesses and colors of the cover and the pages and the difference in the distance between pages. Yet, one’s primary attention is paid to the vertical pattern. For most of her photographs fill their picture planes only with the straight lines produced by the edges of pages—though small parts of illustrations or letters are exposed in a few cases. In other words, in 2 Willow Road it is only through the physical presence of an object that simultaneously figural and non-figural images are created.
The exquisiteness of 2 Willow Road lies in the intervention of titles. One’s first attempt to interpret these works is to relate the connotations of the word ‘road’ in the title to the vertical form of the images. Yet, as soon as one sees the title of each photograph, different correlations flit across his or her mind. When one sees the titles such as ‘Human Response to Tall Buildings,’ or ‘View from a Long Chair’, she or he connects the images to the representative connotations of the words of ‘building’ or ‘long chair’ instead of ‘road’. But then, in front of the abstract titles such as ‘The Arrogance of Power,’ ‘Woman in Art,’ and ‘A Girl Like I’, one keeps bending his or her head as he or she looks at the titles and the images by turns. Finally, when one encounters such concrete titles as ‘Art of The Avant-Garde in Russia,’ ‘The War’s Best Photographs,’ and ‘Hungarian Cookery Book,’ or the titles with persons’ names such as ‘Goldfinger,’ ‘Man Ray,’ and ‘Essential Le Corbusier’, he or she can gather that the titles of the photographs are the titles of the books in those photographs.
All of these books are from the bookshelves all over the house of modernist architect Ernö Goldfinger (1902-1987), and from their titles one can infer his tastes and interests and further his journey of life and his relationships with other human beings. ‘2 Willow Road,’ the title of the series, is the name of the house of Goldfinger—designated as a national treasure—located in Hamstead, London. Bailey photographed the books in the house while working as a tour guide from 1997 to 2001. Goldfinger who was an Austro-Hungarian architect and furniture designer studied in Paris around from 1929 and made close acquaintance with such artists then residing in Paris as Le Corbusier and Man Ray. Having married artist Ursula Backwell, he went to England in 1934 and built three ‘Willow Road’ houses in a modern style in the area of Hamstead before the outbreak of World War II. He lived at ‘2 Willow Road,’ which is one of the three house with his wife. The meanings of the titles of 2 Willow Road can be understood when one realizes who Goldfinger was.
In 2 Willow Road multi-layered significations are possible without prior knowledge of Erno Goldfinger. Despite the common denominator of geometric patterns, each photograph possesses its own expression, and one reads the photographs from his or her own point of view while comparing the images and the titles as if applying the names in the titles to the faces in portraits. Sometimes one’s feelings awfully correspond to the titles and other times they do not. In fact, these photographs originate from Bailey’s impressions of the titles of Goldfinger’s books since she selected some of Goldfinger’s books, composed the shape of the books in the way to agree with her own feeling about the title and then photographed it. Yet, they embody just significations based on Bailey’s subjective impressions, and different receivers are entitled to diverse interpretations of it. For instance, someone might see a haughty and erotic woman in Woman in Art in which red and white pages form a triangular composition against a black background. But does it represent the original intention of Bailey or the impressions made upon all the other viewers? Every photograph by Bailey is understood differently according to the subjective minds of viewers and the interpretation of them depends decisively on the imagination and preconception of the viewers. It is not exaggerating to say that the charm of Bailey’s photographs lies in the open possibility of infinite subjective interpretation in spite of their unquestionably objective looks.  
Postscript (2005), Bailey’s another major photography series, is connected to 2 Willow Road in various aspects and it solidifies the distinctive characteristics of her art. In these photographs, letters are put in their open envelopes, and the vertical form produced by the layers of paper generates the impression of geometric abstraction as in her previous work. Nonetheless, the figural aspect is emphasized through the hurriedly torn fragments of the envelops, the worn-out texture of paper and the representation of such details as letters and stamps. On the other hand, thewse figural images are also non-figural since the most parts that contain the information of the letters are out-of-focus—according to the categorization of Norman Bryson—and it makes one to concentrate on the forms of the images, and thus they are subject to many different discourses. Primarily, the interpretation of them is, however, much more facilitated by their images of relatively easily recognizable objects in comparison to the previous work, the word ‘postscript’ used for the title of the series and the use of such phrases usually used for postscripts as ‘Goodnight Sweetheart,’ ‘All My Love,’ and ‘Missing You’ for the titles of individual photographs. From the images and their titles one can easily infer that these photographs render the letters between lovers. Moreover, the relation between the titles and their images is more explicit. For example, a light kiss is reminded by the slightly open, horizontal form of the envelope in Awakening Kiss (though it is actually from her writing for Vogue to describe the liberation of Paris as like an awakening kiss). And in I Love You, the shape of the open side of the envelope resembles that of the heart. Besides such photographs that invoke certain concrete representative images, most of the other photographs in this series emanate secretive eroticism through their sweet titles, the pastel colors of the envelopes and the cracks that quietly disclose the insides. Yet again, these are no more than subjective observations and each viewer is entitled to have his or her own mental images and feelings.
As in 2 Willow Road, there are many stories behind the titles and images of the works of Postscript. Most of the letters shown in Postscript are the letters exchanged between American photographer Lee Miller (1907-1977) and her second husband and Surrealist Roland Penrose (1900-1984). Miller’s experience of photography started with her occupation as a model. As a photographer, she worked at first mostly in the fields of portrait and fashion photography, and during her career as a freelance photographer for Vogue, the war broke out. As a war correspondent, she made photographic records of the hard-fought fields in Europe. These letters composed largely of the ones exchanged between Miller who was staying in such places as Paris, Athens, Cairo and St. Malo from 1937 to 1945 and Penrose in London, and the titles reveal the circumstances of that time and the passionate love between Miller and Penrose. Bailey could use the letters as her subjects with the permission of the Lee Miller Archive located at Farley Farm in East Sussex.    
Interestingly enough, Bailey’s interest in Miller was formed during the process of her previous work, 2 Willow Road. It was started by The Real Woman, a collage of Miller’s photographs made by Penrose, who was a friend of Goldfinger. Bailey discovered it during her stay in Goldfinger’s house of ‘2 Willow Road’ and she was fascinated by Miller’s life through research on her. After all, Miller was an artist of her own artistic creativity while making friends with Picasso, Man Ray, Miro and Tapies, a woman war correspondent during the war and a woman who fell in ardent love with a man. Bailey chose the letters which are most private objects among various things of Miller and photographed the form she made to agree with her own feeling about each letter. The letters against dark backgrounds possess slightly different appearances as if they were the indirect portraits of Miller captured by Bailey.
As examined so far, the photographs of Bailey evidence the presence of a certain person through the things that once belonged to the person. The books in 2 Willow Road and the letters in Postscript tell about, as the vestiges of the lives of 20th-century artists Goldfinger and Miller, not only those individuals but their acquaintances and even the social circumstances of the times. Bailey says, “All of my works are about relationship,” and her photographs possess immeasurably rich texts as well as external aesthetic beauty. For when one keeps following the thread of curiosity as the titles leads beyond the simple images of linear abstraction, he or she discovers numerous relationships and historical facts that encompassed the life of an individual. That the books and letters of Bailey are closed might indicate that there are rich significations of texts veiled by images. Having more invisible things than visible things, Bailey’s photographs manifest the feature of contemporary photography to pursue the discursive beyond the figu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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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ungtaik Jang

Trans Painting

Mar 13, 2008 – Apr 12, 2008

빛과 색, 물질에 대한 회화적 천착

글. 신혜영 I 가인갤러리 큐레이터

" 반 고흐의 빛이 한여름 정오의 빛이라면 나의 빛은 대지와 맞닿은 새벽녘의 하늘빛이며, 일식 때의 태양 언저리 빛이며, 성숙하지 않은 소녀의 길지 않은 가운데 손톱의 투명한 빛이다.
빛과 색채는 회화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이지만 나의 작업에 있어서 그것들은 반투명한 매체와 함께 절대적 요소가 된다. 증식된 투명한 색채와 빛의 순환에 의한 물성의 구체화를 통한 정신의 드러냄이 내 작업에 진정한 의미라 하겠다. " - 장승택


붓과 캔버스를 떠난 회화를 회화라고 부를 수 있을까? 장승택의 회화는 붓과 캔버스를 떠난 지 오래다. 회화의 순수성을 주장하는 서구 ‘모더니즘’의 논리대로라면 그의 회화는 회화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빛과 색의 물질적 현현(顯現)이 회화의 가장 중요한 본성이라고 한다면 그의 회화는 분명 회화이다. 붓을 떠나 회화의 틀 안에서 다양한 재료로 실험을 거듭해 오는 동안 장승택은 빛과 색이 물질을 통해 보편적 세계를 드러내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여 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때로 유성물감이나 안료를 섞은 반투명한 파라핀이나 합성수지(레진)였고, 한동안은 물감이 엷게 발린 패널들로 이루어진 플랙시글라스 박스이기도 했으며, 이번 전시에서는 그간의 플라스틱 시대를 일단락 짓고 유리의 시대를 맞이하여 새로운 시도를 감행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의 작업 전반에서 일관되게 유지되어 온 것은 표면 위에 얹어진 안료로서의 색이 아닌 빛과의 소통에 의해 유동적으로 반응하는 색에 대한 천착이며, 빛과 색을 머금어 세계와의 만남을 구체화하는 질료(質料)로서의 물질에 대한 탐구이다. 
장승택의 1990년 첫 개인전은 오늘날 그의 고유한 회화를 암시하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프랑스 평론가 장 루이 훼리에(Jean-Louis Ferrier)가 “물질에 있어서의 정신”이라는 제목으로 서문을 쓴 이 전시에서 장승택은 색과 형상을 최대한 절제하면서 거칠고 대담하게 자신의 내면 에너지를 표출한 추상회화를 선보였다. 이 시기 그림들은 그의 작품 중 유일하게 캔버스에 붓으로 그려진 것이지만, 물감의 흘림과 번짐, 얼룩 등이 주조를 이루고 금속 오브제가 콜라주 되어 있는 등 향후 물성에 대한 탐구로 일관된 그의 작업의 전개를 예견하는 측면이 매우 강하다.
첫 개인전 이후 5년 여간 장승택의 물질에 대한 탐구는 절정에 달한다. 캔버스 표면 위의 물감이 가지는 물성으로 만족하지 못한 그는 오일, 왁스, 파라핀, 합성수지, 소금, 그을음 등 회화작가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재료들을 작업으로 가져와 다양한 물성에 대한 실험을 행하게 된다. 이는 마치 1960년대 말, 흙, 석면, 흑연, 얼음, 타르, 고무 등의 반미학적인 재료를 통해 아방가르드의 새로운 유형을 보여주었던 이탈리아의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아르테 포베라가 재료의 물성 자체를 드러내기 위한 설치 위주의 작업을 했다면, 장승택은 일정 정도 빛이 투과할 수 있는 재료들을 사용하여 회화의 사각 틀 안에서 빛과 반응하는 색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두었다. 당시 그는 일정한 두께의 프레임 안에 파라핀이나 왁스를 붓고 유성물감을 섞어 응고시키거나 합성수지에 안료를 넣어 굳힌 매끈한 색면을 보여주었고, 유리와 유리 사이에 소금을 켜켜이 쌓거나 유리 안쪽 면에 양초로 그을음을 입혀 흰색 또는 검은색의 비균질한 화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 당시 작품들은 외견상 단색화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미술사에서의 ‘모노크롬 회화’와는 태생부터 완전히 다르며, 사실상 회화라기 보다는 물성이 두드러진 입체적 오브제에 가깝다. 또한 산업적인 재료와 규격화된 형식을 가지고 있지만 끓이기, 녹이기, 흘려붓기, 굳히기, 태우기, 그을리기 등 작가의 적극적인 개입과 노동의 과정에 의존한 까닭에 ‘미니멀리즘’과도 근본적으로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90년대 초반의 본격적인 물성 탐구의 시기를 거쳐 장승택은 플랙시글라스라는 반투명하고 매끈한 대지 위에 안착하게 된다. 이전에 그가 한 동안 매진했던 합성수지 작업은 빛을 투과하면서도 안료와 균질 하게 섞이고 표면이 매끈한 재료의 특성상 어느 정도 그의 욕구를 만족시켰으나, 평면 위에 물감을 바르는 회화의 기본 공정과는 크게 달라 회화의 모체(母體)로부터 출발한 그가 오래 머물 곳이 되지는 못하였다. 이 때부터 그는 캔버스 대신 플랙시글라스 표면 위에, 붓 대신 롤러나 손으로 유성물감을 바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플랙시글라스를 일정한 두께의 박스 형태로 만들어 빛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부여했다는 점이 특기할만한 사실이다. 색이 엷게 칠해진 표면을 투과한 빛이 일정 공간을 거쳐 안쪽 면의 다른 색을 만나 반사되어 나옴으로써 일반적인 캔버스의 단색회화와는 전혀 다른 빛과 색, 물질이 하나 된 ‘중층의 회화’가 탄생한 것이다. ‘폴리페인팅(Poly-Painting)’이라 이름 붙은 이 회화는 장승택 회화의 대명사로 여겨지며 199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 십 여 년간 점차 다른 모습으로 발전되어 왔다. 동일한 색일지라도 안쪽 면의 색이 달라짐에 따라 전체적으로 미세한 색조의 차이를 보이도록 했고, 물감이 칠해진 표면을 손 날을 세워 부분적으로 밀어냄으로써 행위의 흔적을 남겼다. 또한 하나의 표면 위에 여러 차례 다른 색면을 올려 채도가 낮아진 단색면을 보여주었고, 가장 최근에는 한 화면 위에 같은 계열의 색을 그라데이션하거나 대비를 이루는 다른 색들을 나란히 칠하여 일종의 다색면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장승택의 폴리페인팅은 반투명한 재질을 가진 플랙시글라스의 특성상 색과 반응하는 빛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평면 위에 물감을 칠하는 회화의 기본적인 행위를 만족시키는 바 오랜 기간 그의 고유한 회화를 대변해왔다.
이번 전시에 새롭게 시도된 장승택의 ‘트랜스페인팅(Trans-Painting)’은 폴리페인팅이 재료와 기법의 변화를 겪고 비슷한 시기에 시작된 작업의 또 다른 축인 ‘폴리드로잉(Poly-Drawing)’과 결합하여 탄생한 연작이다. 폴리드로잉은 강물 위에 작은 돌맹이가 빠져 파장을 일으키듯 흰 바탕에 깊이가 느껴지는 구멍이 아롱지는 형상을 가진 것으로, 색에 치중한 폴리페인팅과는 분명 차별화되는 것이었다. 원형의 크기가 조금씩 달라지도록 커팅한 여러 겹의 반투명 폴리에스테르 필름이 겹쳐져 형상을 만들어내는 폴리드로잉은 색(色)이 아닌 커팅된 선(線)이 이미지를 만들어낸 까닭에 ‘페인팅’이 아닌 ‘드로잉’의 명칭을 부여 받았다. 존재의 심연을 드러내는 듯한 이 드로잉은 종전의 균질한 색면회화와는 대조를 이루면서도, 그간 한결같이 추구해 온 화면의 깊이와 빛의 효과를 극명하게 드러내주었다. 그러나 이 폴리드로잉은 1996년 처음 발표된 이래 간헐적으로 보여져 왔을 뿐 폴리페인팅에 비해 상대적으로 충분히 연구, 발표되지 못했다. 이번 개인전에서 그는 한동안 중단했던 폴리드로잉을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본격적으로 발전시키고, 십 년 가까이 고수해왔던 플랙시글라스를 떠나 유리를 주재료로 여러 가지 시도를 감행해 폴리드로잉과 폴리페인팅의 본격적인 결합을 꾀하였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두 종류의 작업을 조합하여 화려한 변주곡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이다. 몬드리안이 <콤포지션>의 화면을 구성하듯 장승택은 트랜스페인팅에서 드로잉의 흰 면과 페인팅의 색 면을 자유자재로 옮겨 붙여 하나의 작품으로 구성하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이면화의 형식을 넘어 비율과 크기가 다른 화면들로 구성한 여러 형태의 삼면화 혹은 사면화에 이른다. 따라서 트랜스페인팅이라는 명칭은 그의 작품이 재료 면에서 ‘투명해지고(transparent)’ 방법 상에서 단위작품들을 조합하여 원래의 회화 형태를 ‘변형하였(translate)’음을 함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사실상 트랜스페인팅은 그간 붓과 캔버스를 떠나 온 장승택 작업의 총체적 집약본이자 새로운 전환점이다. 지금까지 축적해 온 모든 기술과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자신이 추구하는 회화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새로운 물질에 대한 탐구가 작품의 성격에 큰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색조는 원색 위주로 더 밝고 감각적으로 변하였고, 재료는 더 다양해지고 제작공정은 더 정교해져 전체적으로 미끈하고 가벼워진 느낌이다. 반투명한 플랙시글라스와는 달리 빛을 완전히 투과하는 유리를 사용함으로써 색이 보다 명쾌해 보이도록 했으며, 주로 유리 안쪽 면에 색을 칠하고 바깥 표면은 매끈한 유리 재질을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회화라는 느낌보다는 색유리 패널 같은 기성의 느낌이 강하다. 또한 색과 투명도가 상이한 여러 종류의 유리를 사용하고 유리 안쪽 면에 컬러 시트지나 거울과 같은 다른 재료를 얹어 다양한 효과와 미묘한 차이를 시도하고 있다. 한편 드로잉의 경우 앞면 유리의 종류나 폴리에스테르 필름의 재질과 안쪽 판넬에 칠해진 색에 따라 구멍의 색과 전체적인 색조가 달라지도록 하고, 커팅으로 만들어낸 선들 외에 칼날의 자국만 남긴 선들을 함께 병치하여 이미지의 변주를 꾀하고 있다. 폭 6cm의 알루미늄 프레임을 먼저 만들어 놓고, 그 위에 색을 칠한 유리를 얹거나(페인팅) 유리 위에 여러 겹의 폴리에스테르 필름을 얹은 후(드로잉) 일정 공간을 띠우고, 색을 칠한 포맥스 패널로 뒷면을 막아 마무리하는 작업공정은 이전 작품에서 발전되어 나왔지만 보다 복잡하고 정교해졌다.
재료의 특성과 제작과정의 정교함에 힘입어 장승택의 트랜스페인팅은 이전보다 더욱 ‘미니멀’ 한 외관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언제나 모든 작업의 전 공정을 혼자서 직접 해내는 그에게 트랜스페인팅의 다양해진 재료와 정교해진 제작과정은 신체적 행위와 노동력의 개입을 극대화하도록 하였고, 그로 인해 그것은 외견과는 달리 사실상 ‘미니멀 아트’에서 더욱 멀어지게 된 셈이다. 사실상 장승택 작업의 가장 큰 매력은 이처럼 제작과정과 작품의 외견이 상치(相馳)한다는 점에 있다. 산업용 원자재처럼 보이는 이전의 합성수지나 파라핀 패널이 그가 손수 밤낮으로 끓여 붓고 굳혀서 만든 것이었듯이, 공장에서 만들어 낸 기성 인테리어 소품처럼 보이는 이 매끈한 색면회화는 그가 직접 알루미늄을 잘라 프레임을 만들고 유리에 색을 칠하고 포맥스 뒷면에 나무를 잘라 지지대를 만드는 것까지 누구의 도움도 없이 수작업으로 해낸 것이다. 그 누가 그토록 ‘미니멀’한 외관 뒤에 이토록 ‘맥시멀’한 과정이 숨어 있는 줄 짐작이나 하겠는가.
따라서 장승택의 작품을 ‘모노크롬 회화’나 ‘미니멀 아트’로 지칭하는 그간의 일반적인 평가는 명백한 오류다. 그의 회화는 붓과 캔버스를 기본 요소로 상정하는 ‘모노크롬 회화’의 미술사적 함의를 완벽히 거스를 뿐 아니라 외견상 단색의 평면회화로 보이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단색도 아니며 평면도 아니다. 또한 산업적인 재료를 사용한 정제된 외관 뒤에는 엄청나게 까다로운 수작업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술사 안의 모순되고 상충하는 여러 사조와 개념을 가로지르고 넘어서면서 끊임없이 회화의 본성을 쫓는 그이기에 ‘다(多)’ 혹은 ‘복합(複合)’을 뜻하는 ‘poly’나 ‘가로지른다’ 혹은 ‘넘어선다’는 뜻의 ‘trans’와 같은 그의 회화의 부제들이야말로 그의 회화에 관한 매우 적절한 수식어가 될 것이다. 그의 회화는 시간을 두고 오래 감상할수록 그 진가가 느껴진다. 그것은 하루 종일 빛이 들고 남에 화답하며 처음에는 그저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색면이었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들리고 만져진다. 이는 음악과 영화를 사랑하고 신선한 샐러드 위에 뿌려진 들기름 냄새를 즐기는 그의 예민한 감수성이 이면에 내재되어 있다가 조금씩 베어 나오기 때문이며, 오랜 시간 그가 빛과 색, 물질과 나누어 온 깊은 교감이 묻어 나기 때문일 것이다. 캔버스와 붓을 떠나 십오 년 넘게 이어진 그의 긴 ‘화행(畵行)’은 회화라는 끝이 보이지 않는 드넓은 땅을 불평 없이 쉬지 않고 걸어온 것이었고, 그 길은 앞으로도 그렇게 계속될 것이다.


A Painterly Inquiry about Light, Color, and Material
Text. Hyeyoung Shin I Curator of Gaain Gallery
Translation. Jawoon Kim

" If the light of Van Gogh is the light at noon in midsummer, My light is the light in the sky at dawn touching land, The light at the rim of the sun during a solar eclipse, And the transparent light on the short-clipped nail of the middle finger of an immature girl. 

Light and color are the elementary components of painting, But in my work, they are the absolute elements together with translucent mediums. Revealing the mind through the concretization of objecthood, which results from the multiplication of transparent color and the circulation of light is what my work truly intends to do. " - Seung-taik Jang


Can we call it a painting a painting made without a brush and canvas? It has been long since the painting of Seung-taik Jang has abandoned the brush and canvas. If one adheres to the logic of ‘Modernism’ of the West that advocates the purity of painting, his painting is not a painting. Yet, if one considers the materialistic manifestation of light and color as the focal nature of painting, his painting is no doubt a painting. For he has made every effort to disclose the universal truth of the world by letting light and color pass through material as he has continuously experimented with diverse materials within the frame of painting while abandoning the brush. Among the materials he has used are translucent paraffin or synthetic resins mixed with oil paint or pigments and plexiglass boxes in which light penetrates through panels painted lightly with different colors while engendering a single color, and in this exhibition glass is newly employed leaving the plastic materials of the previous years behind. What have been coherent in his entire work up to now is, however, not the colors as pigments placed on painting surfaces but the colors that flexibly respond to light as they communicates with it and also his inquiry into material that concretizes the encounter with the world by holding light and color. 
The first solo exhibition of Jang in 1990 already forecast the peculiar quality of his painting of today. In the exhibition for which Jean-Louis Ferrier wrote an article entitled ‘L’Esprit de la matière,’ Jang showed his abstract paintings in which the energy of his own inner mind is exposed violently and boldly while colors and forms are restrained to the minimum. The paintings of this period are the only ones that utilized canvas and the brush among his oeuvre, but they use the dripping, spreading and staining of pigments as their main methods and contain collages by use of metal objects while strongly foreseeing the later development of his work through which he has continued to inquire into the nature of objecthood.     
For about five years after his first solo exhibition Jang’s artistic exploration of material was at its peak. Having not satisfied with the objecthood of pigments on the surface of canvas, he made many experiments on the obejcthoods of diverse materials by employing such materials that a painter would be unable even to imagine using as oil, wax, paraffin, synthetic resins, salt and soot. This reminds one of Arte Povera in Italy that established a new avant-garde mode while using such anti-aesthetic materials as earth, asbestos, black lead, ice, tar and rubber at the end of the 1960s. When Arte Povera concentrated, however, mainly on installation works in order to expose the objecthood of material itself, Jang utilized certain materials through which light could penetrate to some extent within the rectangular frame of painting in order to focus on the generation of color as the materials interacted with light. At the time, he produced smooth color planes for which he poured paraffin or wax into frames of regular thicknesses, mixed it with oil paint and let it coagulate or he put pigments into synthetic resins and let them solidify, and made irregular color planes of white or black color by piling up salt in several layers between glass plates or by fuming the inside surfaces of glass plates. The works made during this period looked like monochrome paintings in their appearances, but they were far from Monochrome Painting as registered in the history of art in their origin, and they were in fact more akin to three-dimensional objects with strong objecthood rather than painting. Also, they were fundamentally different from the works of Minimalism since they depended on the artist’s active intervention and labor of boiling, melting, dripping, solidifying, burning and fuming although they used industrial materials and regular forms.   
After the period of his full-pledged inquiry into objecthood in the early 1990s, he arrived at the translucent and smooth land of plexiglass. The work with synthetic resins on which he pushed himself for a while met his artistic need to some extent because synthetic resins allowed light to penetrate through and were homogeneously mixed with pigments and provided smooth and glossy surface texture. But its production process, which was greatly different from that of painting to apply pigments onto flat surfaces, prevented the artist whose artistic parent was painting from continuing the work. From that time he started to apply oil paint onto the plexiglass surfaces instead of canvas with a roller or his hand instead of a brush. What should be noticed above all is that he constructed a space where light could stay on by making a box of regular thickness of plexiglass. Light penetrates though the surface painted lightly with a color, passes through certain space to meet a different color of the inside surface and is reflected out. And there produced ‘multilayered painting’ where light, color and material become one while differentiating itself from a monochrome painting that uses canvas. This painting, which is called ‘Poly-Painting,’ is regarded as the pronoun for Jang’s painting and has gone through gradual transformation for about a decade from the late 1990s to the present: a same color generated subtle difference in the overall tonality as the color of the inside changed; some traces of action were made by the partial pressing out of paint on the surface with the side of his hand; monochrome planes of low chromas were made by placing different color planes over a surface repeatedly; and his latest attempt produced polychromic planes where colors of similar hue were gradated on a surface or totally different colors were overlapped to engender contrast.
Another artistic axis of Jang’s work, which began during the same period when his ‘Poly-Painting’ was made, is ‘Poly-Drawing’. While showing holes studded on a white ground like ripples made by tiny stones thrown onto calm water, this series is clearly different from his previous work which concentrated only on color. Several layers of translucent polyester film sheets with circles of slightly different sizes are laid one on top of another and a sheet of hologram paper is pressed onto the inside panel while leaving a space between them. And these poly-drawings are given the name of ‘drawing’ not of ‘painting’ because not colors but cut lines are the agents by which images are created. These holes, which are produced by circular lines and resemble the black holes in the universe, lucidly illustrate the depth in the picture plane and the effect of light that he has consistently seek after while contributing to the contrast between the previous, homogeneous color planes and the poly-drawings’. Yet, his poly-drawings have been shown only intermittently since their first exhibition in 1996 and they have been neither studied nor exhibited enough in comparison with his poly-paintings.  
Jang’s ‘Trans-Painting,’ which is his new series to be shown for the first time in this exhibition, is the outcome of his in-depth study on his previous works of poly-drawings and poly-paintings where the transformations of the two different forms are combined. It is true that there have been other attempts of combining the two: he made diptychs of poly-drawings and poly-paintings of the same sizes; he experimented the poly-drawing within ploy-painting by repeating the process of attaching circles made of self-adhesive paper and applying paint onto it and removing it. But at this time he pushes the combination to the full. In this exhibition, he developed his poly-painting whose production he had stopped for a while by expanding the range of materials for it and ventured various attempts while employing glass as his main material and abandoning plexiglass of his poly-painting to which he held past almost for a decade. What is more important is that he composed dazzling variations by integrating the two forms. Jang made a free combination of the white plane of his poly-drawing and the color plane of his poly-painting in his trans-painting series as Mondrian did for his ‘Composition’ Series. Jang produced triptychs and quadriptychs in diverse forms consisted of planes different in proportion and size while going beyond the form of a diptych. The name of ‘trans-painting’ suggestively reveals that his material is transparent and his method is to translate the original structure of painting by putting together his unit works.
In fact, Jang’s trans-paining condenses all the artistic attempts that he has made for more than 15 years while abandoning a brush and canvas and represents a turning point in his artistic development. For he intends to show in a most effective way the kind of painting that he pursues on the basis of all the skills and all the trials and errors cumulated until now and simultaneously for his inquiry into new materials is greatly affecting the nature of his work. In overall, it seems that his work has become  streamlined and light as its color scheme is brighter while primary colors are chiefly used, a wider range of materials are employed and its production process is more elaborated. The use of glass that let light fully penetrate through unlike translucent plexiglass imbues the painted color with more vividness. The sense of ready-madeness, which can be felt in colored glass panels, rather than that of painting is stronger as color is applied only on the inside plane of the glass and its outside maintains intactly the smooth and glossy texture of glass. Various effect and subtle differences are attempted by using different kinds of glass in terms of color and transparency and by placing self-adhesive color paper or a mirror over the inside plane of the glass panel. In the case of drawings, the color of the hole and the overall color scheme are varied in accordance with the kinds of the glass used, the textures of polyester film sheets and the colors applied to the inside plane of the panel. Also, the juxtaposition of the lines made by cutting and those of the traces of a knife generates change in its images. The overall production process is developed from that of the previous work, but it is more complicated and elaborated: The aluminum frame of 6 centimeters wide is made first, then a panel of glass applied with color paint is placed over the frame (in painting) or several layers of polyester film sheets are placed over the glass (in drawing), next, some space is put between them and finally foamax applied with a different color is used to close up the back side.  
At a glance, Jang’s trans-painting seemingly has an appearance more minimalistic than ever. But he always performs the entire process by himself, and thus the diversification of material and the elaboration of the process aggrandize the bodily action and labor intensity of the artist. Accordingly, his painting, in fact, distances itself from Minimal Art more than ever despite its appearance. The most appealing aspect of the work of Jang is that the production process of his work and the appearance of it contract each other. As the synthetic resin or paraffin panels that appear to be industrial raw materials used in the previous works were made by him by boiling, pouring and let solidifying around the clock, these smooth color-field paintings, which look like small ready-made articles for house decoration manufactured in a factory, are made by his own hands without any help from others from constructing a frame by cutting aluminum, to applying color and to making a support for the back with wooden sticks. Who could guess that this ‘minimal’ appearance is hiding that ‘maximal’ process behind it?   
The general interpretation of Jang’s work as Monochrome Painting or Minimal Art is, therefore, definitely a fallacy. His painting utterly defies the art-historical definition of Monochrome Painting that assumes a brush and canvas as the essential elements of painting, and further although its appearance corresponds to two-dimensional, monochromatic painting, it is neither monochromatic nor two-dimensional in the strictest sense. In addition, the refined appearance caused by the use of industrial materials.is premised on dreadfully intricate handwork. Since he is consistently seeking after the inherent nature of painting while crossing and going beyond the different artistic tendencies and concepts that contradict and conflict with one another within the structure of art history, the terms used to refer to his painting such as ‘poly,’ which means ‘many’ or ‘complex,’ and ‘trans,’ which mean ‘across’ or ‘beyond’ seem to be precisely befitting terms to modify his work. His long ‘journey of painting’ that has continued over a decade and a half without using canvas or a brush has been a silent walk towards the invisible end of the vast land of painting and he will keep walking on that land.

EXHIBITION PAGE

Jungjoo Kim

Magic Land

Jan 08, 2008 – Feb 03, 2008

전시서문
글. 신혜영 | 큐레이터

높이 솟은 고층건물과 고딕양식의 성곽이 하나의 화면에 공존하는 화려하면서도 황량한 느낌의 이 사진 속 도시는 영화 <배트맨>의 고담시(Gotham City)를 연상케 한다. 고담시가 뉴욕을 배경으로 하여 부패와 탐욕을 상징하는 가상의 도시로 변모하였듯, 스테이플러 철침으로 만들어진 김정주의 사진 속 도시는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서울이 작가의 상상력과 만나 변형된 새로운 도시다. 현대식 빌딩, 중세시대의 성체, 모노레일, 회전관람차가 복잡하게 한데 어우러진 금속성의 이 어둡고 생경한 도시는 이름하여 ‘매직랜드(Magic Land)’다. 김정주의 매직랜드는 고담시가 그러하듯 서로 상충된 요소들이 공존하는 가운데 도시의 여러 가지 모순을 담지하고 있어 흥미롭다.
먼저 성(城)에서 출발해보자. 성은 무언가를 높이 쌓아 올려 자신의 방어막을 만들려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에 충실한 구조물로서 인류의 등장 이래 계속하여 다른 형태로 변모하며 존재해왔다. 누구나 어린 시절 블록이나 모래를 쌓아 올려 성을 만들었던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무언가를 쌓아 올리는 것은 학습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갖게 되는 인간의 기본적인 행위 중 하나다. 이러한 수직적 쌓기에 대한 본능은 인간이 거주하는 건축물에도 반영되어 오늘날 높고 견고한 고층건물로 가득찬 도시를 형성하게 되었다. 성은 오늘날 도시에서 외형적으로는 사라졌지만 본질적으로 내재하여 여전히 기능하고 있는 셈이다.
가로로 길게 연결된 스테이플러 철침을 필요에 따라 다른 길이로 잘라 레고 블록을 쌓듯 쌓아 올리는 김정주의 작업은 이러한 인간의 쌓기 본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기술자들이 고도의 건축술로 고층건물을 올리듯 그녀는 그녀만의 숙련된 기술로 아찔한 높이의 빌딩을 쌓아 올린다. “유년기에 하던 놀이에서 발견되던 그 즐거움이 철침으로 집적된 오브제로 이루어진 공간들을 쌓게 만들었고, 이곳은 매우 정직한 놀이세계이자 현실에 휩쓸리는 동안에 유일하게 나를 보호해준 공간이었다. 즉 이상(理想)을 꿈꾸며 세운, 나의 욕망이 드리운 곳이다”. 작업노트에서 밝히고 있듯이 김정주의 작업은 쌓기에 대한 본능과 유년시절 경험한 쌓기의 즐거움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집적 자체에의 관심으로부터 출발한 그녀의 작업은 더욱 높고 강력한 변형된 성들이 밀집해 있는 도시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첫 번째 연작인 에서 작가는 빌딩숲, 고가도로, 대형교각, 건설현장의 타워크레인 등으로 구성된 도시의 수직적 이미지를 잘 보여주었다.
에서 진수를 보인 이러한 김정주의 수직적 쌓기는 이번 <매직랜드> 연작에서 다양한 형태로 변형,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매직랜드>에는 성의 현대식 변형체인 고층건물뿐 아니라 첨탑을 가진 그야말로 중세시대의 성이 등장한다. 또한 회전관람차, 모노레일 혹은 롤러코스터 등이 공존하여‘매직랜드’라는 제목과 함께 놀이공원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 <매직랜드>의 놀이공원은 꿈과 환상의 나라이기 보다는 삭막한 도시와 뒤엉켜 있는 낯선 곳이다. 사실상 어린 시절 모든 동화 속에 어김 없이 등장했던 성은 많은 이들에게 동경의 대상으로서 성인이 되어서까지 일종의 판타지로 남게 된다. 이른바 유년의 상징으로서 성은 자연스럽게 상상과 환상의 공간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러한 지점에서 김정주는 성을 수직적 쌓기의 상징물에서 비현실적인 공간의 상징물로 확장시켜 비현실성의 대변체인 놀이공원으로 연결한다. 놀이공원은 자본주의 사회의 대표적인 허구적 공간으로서 의도적으로 인간을 현실로부터 차단해 일상의 삶을 망각하도록 만든다. 놀이공원의 형형색색 화려한 놀이기구와 미니어처 구조물은 그곳에 머무는 동안 일시적으로 사람들의 주의를 빼앗고 한정된 공간 안에서 소비를 극대화하도록 완벽하게 짜여 있다. 이러한 연유로 놀이공원은 역사적으로 보다 높은 생산성을 가져오기 위한 일시적인 유희의 공간으로 끊임없이 세워져 왔으며, 대부분 도시의 외곽에 위치해 도시의 인위적 확장에 기여해왔다. 꿈과 환상이라는 기치아래 사람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존재의 목적을 은폐하는 놀이공원이야말로 자본주의의 논리가 가장 잘 반영된 공간인 셈이다.
김정주는 성을 이러한 놀이공원을 대표하는 구조물이자 나아가 도시 전체의 상징물로 바라보고 있다. 오늘날 도시는 소비의 극대화를 위해 치밀하게 계획되고 그 사실을 의식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굴러가고 있다는 점에서 놀이공원의 확대판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판타지를 대변하는 성과 그것이 확장된 허구공간인 놀이공원, 그리고 그 변형체인 도시의 구조물, 이 모두는 인간의 욕망과 자본주의라는 전체적인 맥락 안에 서로 연결된다. 김정주의 <매직랜드>에 성과 여러 놀이기구들이 도시의 구조물들과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이다. 뿐만 아니라 어디까지가 놀이공원이고 어디서부터가 도시인지 구분할 수 없도록 짜여진 <매직랜드>야말로 실재와 허구가 뒤엉켜 있는 오늘날의 현실을 매우 적절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김정주의 <매직랜드>는 작가의 분명한 논리 아래 치밀하게 조성된 가상의 도시다. 이 새로운 도시는 날것 그대로의 금속성 재료와 어두운 색조의 화면으로 인해 꿈과 환상의 결정체인 성과 놀이공원의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차갑고 황량하며 심지어 퇴락의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겉으로 화려해 보이는 놀이공원이나 도시 이면에 숨겨진 어두운 부분을 암시하고 있어 흥미롭다. 치밀하게 계산된 산업논리에 의해 유지되는 사회구조와 이에 종속된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시적 성장에 의해 가려져 있는 자본주의의 냉혹한 현실을 은연중에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주는 놀이기구와 도시의 구조물을 어두운 배경에 차가운 금속으로 재현함으로써 대상의 형태와 이미지를 미묘하게 상충하도록 하여 그 효과를 배가시키고 있다. 전작인 에서 스테이플러 철침의 금속성 재질이 일차적으로 근대적 산업구조물의 느낌을 불러일으켰다면, <매직랜드>에서 동일한 재료는 구조물의 특성상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도시의 인상을 주는데 기여한다.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되면서 한층 작가의 주제의식이 분명해진 이 가상의 도시 <매직랜드>는 전작에 비해 내용 면에서도 심화되었지만, 형식 면에서 또한 발전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집적의 형태와 공간의 구조가 훨씬 다양하게 표현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최종적으로 사진으로 남게 되는 김정주의 작업은 기본적으로 엄청난 시간이 걸리는 조형물 제작의 과정을 거친다. 스테이플러 철침을 일일이 손으로 뜯어 붙이는 이 무념무상의 노동집약적 과정에 있어 작가는 별다른 드로잉 없이 즉각적으로 구조물들을 만들고 전체적인 공간을 완성해 나간다. 그 곳에는 그 안에서만 작동하는 기계적 메커니즘이 존재한다. 구조물 하나하나는 실제 건물이 세워지는 것처럼 매우 정교하게 구축되며, 전체 공간은 실제 도시가 세워지는 과정처럼 중심 구조 위에 세부적인 요소들이 추가되어 하나의 거대한 도시로 완성되는 것이다. 물론 이 거대 도시는 실제크기의 몇 천분의 일로 축소된 미니어처이다. 에서 구조물들이 주로 스테이플러 철침의 직사각형 모양을 토대로 한 수직수평의 구조로 이루어졌다면, 이번 <매직랜드>에서는 곡선형 구조가 새롭게 시도되었다. 곡선을 만들기 위해서는 철침을 보다 작은 단위로 잘라 매우 정교하게 이어 붙이는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곡선은 회전관람차, 롤러코스터, 원형경기장 등에 적용되어 <매직랜드>의 핵심적인 조형 요소로 자리하게 된다. 김정주의 <매직랜드> 연작은 수직적 형태의 기본적인 도시 구조물에 이러한 곡선 형태의 놀이기구들이 더해져 보다 풍부한 조형성을 선보이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김정주의 작업이 경쟁력을 갖는 것은 이러한 실제 조각물을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효과적으로 변모시키는 최종적인 결과물의 이미지에 있다. 처음 김정주의 사진을 맞닥뜨린 사람은 차갑고 생경한 도시의 강렬한 인상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스테이플러로 만들어졌음을 인식하고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아무리 정교하게 만들어냈다 하더라도 사실상 그것은 폭 1센티미터의 작은 철침을 이어 붙여 만든 작은 미니어처 도시에 불과하다. 만일 이 미니어처를 실물로 제시한다면 사람들은 그저 솜씨 좋게 잘 만들어진 조각이라고 고개를 끄덕일지 모른다. 어쩌면 접착제가 묻어있거나 매끈하지 않은 형태에서 허점을 잡아내기에 바쁠지 모른다. 그러나 사진으로 재현된 김정주의 작품은 보는 사람을 압도할 정도의 힘을 가지며, 실제 도시의 이미지로 받아들여진다. 이것은 분명 사진의 힘이다. 화면 속 대상을 실제로 느끼도록 환영(illusion)을 제공하고 사람의 눈과 다르게 이미지를 한정된 프레임 안에 담는 사진의 기본적 속성 덕분인 것이다. 또한 김정주의 작품은 다양한 각도와 부분 확대와 같은 카메라 워크에 의해 보다 풍부한 장면을 재현한다. 도시의 전체 구조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부감 이미지나 구조물의 표면 질감을 강조하는 클로즈업 이미지는 사진으로만 포착할 수 있는 훌륭한 조형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주는 이처럼 조각과 사진이라는 두 장르의 경계를 관통하고 있다. 조각을 사진으로, 즉 삼차원의 입체를 이차원의 이미지로 전환함으로써 발생하는 효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김정주의 이번 두 번째 개인전에는 사진 연작 외에 작가의 세밀한 펜 드로잉이 함께 선보일 것이다. 새롭게 시도된 이 드로잉 연작은 <매직랜드>의 연장선상에서 도시의 구조를 매우 가는 펜으로 정밀하게 묘사한다. 동식물 조직의 세포처럼 도시의 특정 지점마다 내재되어 있는 하부 중층(重層) 구조를 그린 이라는 제목의 이 드로잉들은 마치 <매직랜드>의 도시 아래 감춰진 복잡한 부분을 드러내는 듯 하다. 편집증에 가까울 정도로 치밀하게 스테이플러 철침을 쌓아 올리는 것과 같이 놀라울 정도의 밀도로 그려낸 드로잉들은 작가의 고유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오늘날 장르간의 뚜렷한 경계가 무너지고 인접장르와의 혼성을 가장 큰 특징으로 하는 현대미술 안에서 필요에 따라 여러 장르를 아우를 수 있는 능력은 작가로서 매우 유리한 조건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뚜렷한 자신만의 주제를 가지고 여러 장르를 하나의 결로 변주해낼 수 있다면 말이다. 김정주는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으로서의 도시를 자신만의 시각을 가지고 하나의 큰 틀 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제 이십 대 중반의 가능성 많은 이 젊은 작가의 행보에 앞으로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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