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e Young Min

Nov 22, 2007 – Dec 23, 2007

전시서문
글. 신혜영 I 가인갤러리 큐레이터


민재영은 도시의 사람들을 그린다. 도시는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삶의 장(場)으로서 최근 많은 작가들의 관심 소재가 되고 있다. 그러나, 다수의 작가들이 도시의 건물이나 구조와 같은 ‘공간’ 자체에 주목하는 반면, 민재영은 그 공간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에 집중한다. 보다 정확히는 인간의 ‘관계’에 관심을 둔다. 그녀의 그림에는 무리를 이룬 사람들이 등장하고 그들로부터 우리는 타인과 관계 맺으며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얽히어 때로는 힘겹게 또 때로는 무덤덤하게 지금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나 자신을 말이다.
그림 속 사람들은 옆 사람과 몸이 닿지 않으려 애쓰면서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기도 하고, 서로 어깨를 부딪히며 밀집된 군중을 헤치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때로는 길 위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잠시 우두커니 서있기도 하고, 식당, 편의점, 클럽과 같이 사람이 북적대는 일상의 장소에서 주변 사람들과 무심히 스쳐 지나기도 한다. 그들 모두는 언젠가 그 자리에 있었을 법한 나 자신이며, 움직임이 정지된 그 순간은 지금도 여전히 흐르고 있는 시간이다. 구체적 인물과 상황이 묘사되어 있지만 인물들은 특정 개인으로 인식되기 이전에 익명의 인간으로 다가오고, 그들이 처한 상황은 특별한 한 순간이기 보다는 우리가 살아가며 늘 겪고 있는 보편적 상황에 가깝다.
이렇듯 민재영의 그림은 도시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의 일반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그 일반성은 우리에게 각자의 개별적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일상의 장면을 보면서 사람들은 그 상황에서 자신이 느꼈던 개인적인 감정을 다시금 환기하게 된다. 군중 속에 있어도 혼자인 듯한 외로움, 옆 사람과 살이 닿을 때의 묘한 느낌, 주변 동료들에게 느끼는 경쟁심, 그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리라는 동질감 등 살면서 타인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크고 작은 감정들이 그것이다. 평소에는 묻혀 있던 일상의 한 순간에서 느낀 감정과 정서를 그와 유사한 장면과 맞닥뜨림으로써 다시금 상기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내가 느낀 것을 다른 사람도 느낄 수 있다는 인간의 보편성이 자신의 그림을 통해 확인되기를 바라는 예술의 소통 가능성에 대한 작가의 근본적인 믿음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작가의 의도가 실현되도록 뒷받침하는 것은 그림의 형식적 측면이다. 민재영의 그림 대부분은 위에서 수직으로 내려다보거나 사선으로 비껴 내려다보는 관찰자의 시점으로 그려진다. 이는 부유하는 인간 군상의 단면을 하나의 장면으로서 극명하게 부각시키는 동시에 그러한 장면이 보편적 정서를 획득하도록 돕는다. 누구나 겪었을 법한 구체적인 상황을 하나의 장면으로 인식하여 그 장면의 이미지가 부여하는 특정한 정서를 환기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초기에 그녀가 작품 소재로 삼았던 영화 <희생>이나 <해피투게더>의 한 장면처럼, 일상의 순간도 정지된 한 장면으로서 다가갈 때 어떠한 정서적 울림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녀가 자신의 그림에서 사람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그 상황 자체에 대한 몰입이라기 보다 특정한 장면이 불러일으키는 정서적 경험인 셈이다.
민재영의 그림이 하나의 장면으로 보여지는 또 다른 이유는 그녀가 움직이는 순간을 포착하기 때문이다. 실제 작가는 동영상을 촬영하고 그 중에 자신에게 와 닿는 순간의 장면을 정지시켜 그림으로 옮긴다. 초기에는 사진을 이용했지만 사진이 움직임을 포착하기에 부적절하여 동영상 촬영 방법으로 선회했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려진 그림 속 인물들은 고정된 채 완벽하게 재현된 하나의 대상물이 아니라 움직이는 중에 있는 실제 사람들처럼 생생하게 다가오고, 전체적인 화면은 진행중인 어떠한 구체적 상황의 한 장면인 것처럼 여겨지게 된다.
한편, 이처럼 우리가 민재영의 그림에서 움직임을 인식하고 이미지의 미세한 떨림을 감지하게 되는 데는 화면을 구성하는 가로선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림의 전체 화면을 메우는 가로선은 영상화면의 주사선(scanning line)과 같이 중첩되어 특정한 형상을 드러낸다. 그녀가 처음 가로선 그림을 시도했던 것 역시 동양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하자는 취지로 열린 한 단체전(<낯선 외출>, 1999)에서 전통적인 수묵화에 의도적으로 텔레비전의 주사선을 도입한 그림이었다. 마치 멈춤(pause) 단추를 눌렀을 때 주사선이 미세하게 떨리는 비디오 화면을 보는 것처럼, 우리는 무수히 많은 가로선들로 채워진 민재영의 그림에서 움직임이 일시 정지된 하나의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러나 민재영 그림의 가로선은 브라운관의 주사선과 외견상 직접적인 유사관계를 갖고 있으면서 더 근본적으로는 전통적인 동양화가 갖는 형식적 한계를 극복하는 중요한 방편으로 사용된다. 그녀에게 동양화의 선은 거부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대상의 깊이나 실재감을 표현하는 데는 밋밋한 윤곽선에 그칠 수밖에 없어 한계로 다가왔다. 또한 윤곽선 없이 한 붓으로 면을 만드는 것 역시 인물의 세부적인 부분을 묘사하기에는 둔탁하여 적절치 않았다. 그리하여 민재영은 동양화의 윤곽선이 만들어내는 삽화성을 벗어나면서도 선이 지닌 특유의 맛과 세밀함을 고수하고자 여러 시도를 해왔다. 1998년 첫 개인전에서는 이미지를 하나의 선으로 분명하게 표현하지 않고 여러 개의 선을 겹쳐서 형상을 그려냈으며, 이후 2001년 2회 개인전에서는 흐릿한 수묵의 세로선들을 중첩하여 인물 형상을 표현하였다. 이러한 진화과정을 거쳐 나타난 것이 오늘날 민재영의 가로선 그림이다. 또렷한 윤곽선 없이도 인물의 표정까지 생생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그녀에게 지금의 가로선은 매우 적절한 방편이 된 것이다.
민재영의 가로선 그림은 동양화 붓을 사용하여 일정한 간격으로 수묵의 직선을 그은 후 그 위에 목탄으로 대략의 스케치를 하고, 그 이후부터 수묵이면 수묵, 채색이면 채색으로 짧고 긴 선을 무수히 중첩하여 형태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방법은 선이 겹쳐지는 정도에 따라 명암이 조절되어 별다른 조작 없이 가로선만으로도 깊이와 양감을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그려진 그림은 매끈하게 한번에 그은 선과는 달리 형상이 고정되지 않고 진동하듯 흔들리며 자연스럽게 전체적인 이미지를 화면 위로 떠오르게 한다. 가까이서 보면 그저 무수한 직선들로 이루어진 추상적 이미지가 거리를 두고 멀어질수록 서서히 또렷한 이미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러한 민재영의 가로선 그림은 기본적인 방식을 유지하되 계속하여 진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처음에는 거의 수묵 위주였던 그림에 약간의 엷은 채색이 가미되다가 점차 진한 색채를 위주로 한 작품들이 강세를 이루게 되었다. 사실상 그녀의 가로선 그림은 색채 위주일 때 그 효과가 배가된다. 색을 섞지 않고 약간씩 다른 같은 색 계열의 물감을 겹쳐 칠함으로써 인접한 색과의 관계에 따라 색의 발현이 이루어지도록 하여 채도를 떨어뜨리지 않으면서도 풍부한 색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는 기본 4색의 조합으로 무수히 많은 망점을 겹쳐 찍는 오프셋 인쇄와 같은 원리로, 작가는 먼저 한 계열의 색을 칠하고 다른 계열의 색을 칠해가는 식으로 색을 중첩해간다. 이번 전시에는 색채를 위주로 한 진채화와 먹의 농담으로만 이루어진 수묵화가 대조를 이루어 그 차이를 비교해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번 전시는 민재영의 가로선 그림이 형식적 측면뿐 아니라 소재 선정과 제작 과정에서도 변화,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과 그로부터 환기되는 정서를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는 동일하되 작품 소재의 범위를 일반적인 인간군상에서 특정 계층의 사람들로 좁힘으로써 주제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시도가 이번 전시에는 돋보인다. 예컨대 교복 입은 여학생들이나 양복 입은 직장인들과 같이 계층을 알 수 있는 인간군상을 그린 그림들은 보다 구체적이고 효과적으로 어떠한 정서를 환기한다. 서로 부대끼는 가운데 자신을 보호하려는 그 시절 여학생들이 지닌 특유한 정서나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고자 애쓰는 직장인의 특수한 상황이 그대로 전달되어 그림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강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또한 제작 과정에서는 현실적으로 특정 계층의 사람들이 밀집해있는 상황을 찾아내기 어려울뿐더러 원하는 정서가 배어나는 장면을 포착하기 어렵기 때문에 특정한 상황을 연출하여 촬영하였다. 실재를 재연한 것이 실재보다 더 실제적인 까닭에 연출된 상황을 만들어 촬영하는 보다 적극적인 방법을 택한 것이다. 
이렇듯 민재영의 그림은 갑자기 변화하거나 도약하지 않았다. 선의 중첩으로 형상을 만들어내는 형식적 기법에서부터 도시의 인간을 다루는 주제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그림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서서히 같은 맥락에서 진행되어 왔다. 또한 민재영은 누구보다 동양화의 기본적인 형식에 대한 연습이 충실한 작가다. 충분한 연습과 고민을 통해 동양화를 자신의 것으로 해석하고, 먹과 한지라는 재료를 한정된 요소로 제한한 채 그 안에서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계속하여 발전시키고 있을 뿐이다. 그녀는 최근 전통과 동시대성 사이에서 고민하며 자신만의 길을 가고자 하는 젊은 동양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러나 동양화의 전통적인 준법을 고수하는 산수풍경과 서양의 팝아트 캐릭터를 같은 화면 안에 넣어 전통과 현대의 공존을 시도하는 일군의 작가들과 달리, 그녀는 그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의 작가로서 동양화의 재료를 사용하여 자신 주변의 삶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첫 개인전 작업노트에서 밝히고 있듯이 민재영은 지나간 특정 시대의 모델이 전통의 대안이 될 수 없으며, 다만 지나온 시간과 공간의 집적으로서의 ‘나’를 제대로 알아가고 현재의 자신에 충실함으로써 전통의 계승이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이야말로 오늘날 동양화가 ‘우리의 것을 지켜내야 한다’는 당위가 아닌 진정한 동시대 미술로 거듭날 수 있는 바람직한 하나의 방향이 아닐까 한다. 이것이 그녀의 작업을 계속하여 기대해도 좋은 가장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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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wangyup Cheon

Port of Entry

Oct 18, 2007 – Nov 11, 2007

Omni – direction
글. 천광엽

회화평면성에의 본능
회화를 이루는 가장 최소 요소의 하나인 점, 혹은 작은원에서 출발하는 distortion series는 점과 그림자와의 결합을 통해 중성적인 공간에서의 그 깊이를 얻으며 이렇게 모여진 점들은 색과 면을 부여받고 규칙적인 구조와 불규칙적인 구조들이 부딪히며 발생하는 에너지로 인해 그 동적인 무브먼트를 만들어낸다. 개별적인 하나의 원들은 주어진 회화평면과 그 존재의 현존성 속에서 각기 불확정적인 운명을 지니며 전체를 이루는 그 집합들의 덩어리들은 다른 집합군들과 서로 유기적 관계의 리듬을 형성하며 무한하게 확장되는 변주의 다양한 조합과 그 왜곡의 울림에의 상징을 드러낸다.

화면위의 원들은 그 형태와 조합이 부여된후 마지막의 표면조건에 의하여 최종적으로 완성되는바 즉 캔버스 위의 유화물감인 경우 완전히 건조 후에는 화면전체를 특정하게 계획하거나 의도함이 없이 “다만 표면을 아주 얇게 벗겨낼뿐” 이라는 과정을 개입시킨다.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는 어느 말처럼 작가와 화면의 접촉, 즉 사각의 평면을 감지하는 본능적인 감각으로서 균일하게 적용되는 세렌디피티적인 동시성으로 벗겨내는 결과로서 드러내어지는 그 살결의 흔적들은 예측불가능한 무의식의 영역과 파편 그 지층이며 그 무의식의 영역은 그곳에 머무르고 있는 회화요소들의 어떠한 체계적인 해석과 분석을 거부하고 다만 현실을 초월한 무작의한 의식의 확장만을 꾀한채 무심함의 표정들을 드러내고있다.


Reality – continuum

각 원들의 군락들은 자기복제적 자가증식을 꾀하는 구조와 그 운동성을 지니며 응집과 해체의 분열과정을 통하여 특정한 방향성을 지니지 않는 무지향성적인 움직임을 만들어간다. 알루미늄 허니콤 판넬 위에 폴리우레탄을 이용한 작업들은 그 내부에 켜켜히 형성해가는 원들의 레이어와 그 두께감으로서 복합적인 인간감성의 층을 드러나게 하며 U.P.R.(Unsaturated Polyester Resin–불포화성 폴리에스테르 수지)에 의한 광택표면의 경우 그 물성과 두께가 암시하고 있는 시간성의 축적에 의한 공간의 깊이감과 더불어 현실의 물리적 공간에서부터 보이지않는 마음의 정신적 공간까지의 변환과 그 스펙트럼의 지점을 암시한다.

그 지점은 우리의 의지나 제어됨을 벗어나 독자적으로 자생하고 있는 회화유전자의 미묘한 틈새이며 그 고유의 미적규칙으로서 존재하는 그런 세계이다. 다시 말해 “사이”(In Between)의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이다. 의식과 무의식 그 사이, 현실과 비현실 그 사이, 질서와 무질서 그 사이, 육체와 정신 그 사이에 위치한 그 영역은 끝없이 반복을 이루며 존재하는 각 원들의 무한성과 마찬가지로 현실이라는 edge 위에 놓여져 있어 영원할 것 같이 반복과 순환을 이루는 우리 일상 의 또 다른 메타포 이며 불확정한 현실경계에 응집되어진 우리 현실의 운명 과도 같은 존재의 모습이다.


시각적 지각작용
무엇을 연상할만한 구체적 이미지로부터 독립해 있으며 판단과 추론을 게재시키지 않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따라가며 직관과 직감을 무의식의 차원에서부터 작동시키는 마음의 메카니즘을 구현한다. 가장 최소한의 형태로부터 출발한 점으로부터 구조, 반복, 집중, 그리고 밀도와 그 깊이를 통하여 색채 구조 관계등 평면회화의 가장 극한적이며 본질적인 요소에 대한 연구에 몰두함으로서 얻어지는 다양한 무형에의 집착은 드러나지 않는 또한 보이지 않는 근본적인 현상과 그 영역에 대한 접근을 시도하고있다. 하나의 색을 위하여 쓰여지는 수많은 원들의 레이어에 의한 결과물들은 시각의 물리적 작용을 일깨워주며 그들 원의 흔적과 파열들은 눈의 시각적 착시(optical illusion)를 유발하는 지각작용의 흥미로운 시스템을 일깨우려 함이다. 또한 관람자의 시각적 경험을 증폭시키며 마음의 눈에서 이미지를 완성시키는 관객의 능력을 이용하고 있으며 이것은 화면의 이차원적인 논리를 뛰어넘을 수 있는 상상력을 발현시키고 있다. 더욱이 감상자의 모습이 그림의 표면에 비쳐짐으로서 얻어지는 작품과 감상자의 상호투사작용은 보는 이의 지각작용이 계속해서 그림과 소통하도록 유도하는 인터렉티브한 관계의 표현이라고도 할수 있다.

다양한 색조의 정적인 운율과 현기증 나도록 옵티컬한 작은 점들의 모아레 (moire)들을 따르다보면 일종의 몽롱함과 아련함의 데쟈뷰를 느끼게 되며 표면의 여러 촉각적인 경험들을 따르다보면 숨어 있다 불현 듯 나타나는 우리의 무의식덩어리들의 낮선, 그러나 우리의 내면세계에 존재하는 그 무언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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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iaoze Xie

Xiaoze Xie

Sep 04, 2007 – Oct 07, 2007

축적된 것들이 드러내는 시간, 기억, 그리고 역사
글. 신혜영 I 가인갤러리 큐레이터

‘축적(accumulation)’이라는 단어는 어떠한 사물을 모아서 포개는 행위나 그렇게 된 상태를 뜻한다. 그러나 축적은 단지 쌓는 행위나 쌓인 상태 자체뿐 아니라 쌓거나 쌓이는 데 필요한 시간의 소요를 전제로 한다. 다시 말해 물질적 범주의 축적은 시간이라는 비물질적 범주의 축적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샤오제 시에(Xiaoze Xie, 1966- )는 ‘축적된’ 책이나 신문을 그림의 주된 소재로 삼는다. 그의 작품에 있어서 역시 축적은 물질적 의미와 비물질적 의미 둘 다를 가지고 있다. 책이나 신문이 쌓여 있는 형태가 그의 그림에 있어서 형식적인 측면의 중심 요소라면, 쌓인 혹은 쌓여 가는 책이나 신문이 담지하는 시간과 역사에 관한 의미가 그림의 주제적인 측면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서관의 책장 선반 위에 책들이 횡으로 종으로 정렬된 모습을 그린 시에의 <도서관 연작(Library Series)> 회화가 처음 시작된 것은 1990년대 초반 무렵이다. 미국으로 이주한 지 얼마 안 된 어느날 학교 도서관 서고에 들어섰을 때 그는 책들이 여러 층으로 빼곡히 꽂혀 있는 책장들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는 모습에 압도당했다고 한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그에게 그 모습은 일종의 건축적 형태이자 특정한 시각적 패턴으로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사실상 초창기 그의 <도서관> 회화들은 책등이 만들어내는 직선들이 화면을 기하학적으로 분할하고 있는 회색톤의 단색회화에 가깝다. 현재까지 세계 여러 도서관 서고에 쌓인 책들을 조금씩 다른 기법과 형태로 그리고 있는 시에의 대부분의 그림에는 외견상 공통된 특징이 있다. 그것은 사실적으로 책을 묘사하고 있으면서도 책 자체가 지닌 직선의 형태와 그것들의 규칙적인 반복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화면에 일정한 기하학적 패턴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적 특징은 시에의 그림이 정밀한 사실적 묘사에도 불구하고 일정 정도 미니멀하고 추상적인 느낌을 갖게 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이는 1990년대 중반 시작된 그의 신문 연작에서 한층 부각된다. 접힌 채 쌓여 있는 신문의 단면이 드러내는 패턴은 곡선을 내재한 부드러운 직선의 반복으로 인해 책의 그것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며, 부분적으로 신문 기사의 글자나 사진이 드러남으로써 사실적인 묘사가 주는 재미 또한 잃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에가 책과 신문의 축적에 집중하는 것은 단지 그 형태적 특징 때문만은 아니다. 그림의 조형성을 이루고 있는 단위들이 비물질적 차원의 ‘시간의 축적’을 담고 있는 책과 신문이라는 점에서 역시 그것들은 매우 중요하다. 책은 당대의 인류 지식이 담긴 저장소로서 그러한 개별 책들의 축적은 곧 지식의 역사가 된다. 그가 책의 낱권을 그리지 않고 도서관에 정렬된 책들을 그리는 것은 지식을 담고 있는 책 자체의 특징보다 그것들이 오랜 시간동안 쌓여 이루어내는 지식의 역사라는 상징적 의미를 드러내고자 하는 까닭일 것이다. 그가 그리는 책들이 주로 손때 묻거나 벌레 먹은, 닳고 낡은 오래된 책인 것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다. 오래된 책들은 새로이 등장하는 책들의 토대가 됨에도 불구하고 뒷전으로 밀려나거나 오랜 시간 잠들어 있게 된다. 따라서 이 부패해가는 책들은 그것이 언젠가는 사라질 지도 모른다는 상실감과 쇠퇴의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신문 역시 마찬가지다. 매일매일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는 신문은 본디 그 날 하루에만 효용되는 것으로 일상에서 대부분 그대로 버려지거나 재활용되어 사라진다. 그러나 그것들이 모이고 쌓이면 그것은 그야말로 날짜 단위의 세세한 역사적 흔적이 된다. 날짜 순으로 정리해놓은 도서관의 신문들을 몇 개월 단위로 끊어 그 축적된 상태의 단면을 보여주는 시에의 회화 연작 <일상의 조용한 흐름(The Silent Flow of Daily Life)>은 그러한 신문의 일시적인 특성과 시간의 축적을 잘 보여준다. 1995년 이후 현재까지 지속하고 있는 이 작업은 우리가 별 생각없이 흘려보내는 일상의 날들이 역사의 미세한 단편들이며 시간은 지금도 그렇게 조용히 흘러가고 있음을 암시한다. 시에가 그리는 오래된 책과 신문은 지나간 과거에 대한 향수가 아니다. 그것은 지나간 것이 결코 과거로 끝나지 않으며 지금의 것이 영원할 수 없기에 시간 속에서 계속해서 축적되어 가는 ‘현재’에 관한 이야기인 셈이다. 이번 전시에는 <일상의 조용한 흐름>의 최근작들과 함께 중국 고서를 소재로 한 <중국 도서관 (Chinese Library)> 연작이 소개된다. <중국 도서관>은 오랜 시간 훼손되어 왔고 현재도 조금씩 부패해 가는 중국 도서관에 안치된 고서들을 그린 것으로 역시 1995년부터 지속되어 온 작업이다. 특히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최근작들은 1930-40년대 일본의 침략 기간 동안 도서관이 옮겨가는 과정에서 심각하게 손상을 입은 베이징의 한 대학 도서관의 소장서로서 상당 부분 타거나 검게 그을리고 물에 젖어 찢어진 모습이다. 이 책들은 시에가 그리는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시간의 흔적을 그대로 담고 있으면서도 그 자체로 중요한 역사적 사실의 증거가 된다. 또한 외견상으로 다른 <도서관 연작>과 비교할 때 책의 심하게 훼손된 낱장들이 쌓여 있는 책들의 규칙적인 직선을 가리는 다소 복잡한 형태와 풍부한 색채나 질감으로 인해 기존의 다른 도서관 연작들에 비해 기하학적 추상의 느낌보다는 사실주의 회화의 느낌이 훨씬 더 강조되는 특징이 있다.  한편 이번 전시에서 규모나 형태 면에서 다른 작품들과 구분될 만한 그림이 한 점 있으니 그것은 특정한 공간을 그린 대형 회화 <유산(Legacy)>(2007)이다. 책이나 신문이 쌓여 있는 부분만을 그린 다른 회화들과 달리 공간 전체를 강한 구상성으로 담아낸 이 회화는 시에의 역사와 정치에 대한 생각을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책들과 오래된 가구, 잡동사니들이 담긴 짐 보따리와 종이 상자들로 어지러운 방 한 가운데 마오쩌둥의 흉상이 뒤돌아 놓여져 있다. 이 그림은 2000년도 중국 남부지방의 한 작은 도서관이 새로운 건물로 이사하기 전 임시로 물건들을 쌓아놓은 공간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재현한 것이다. 늦은 오후의 햇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낡은 물건들과 마오의 흉상이 놓인 방안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는 이 장면이 그에게는 중국 사회의 과도기를 상징하는 극적인 순간으로 보였다고 한다. 시에는 자본을 비롯한 여러 가지 새로운 가치들로 전환기를 겪고 있는 오늘날 중국에 공산주의 이념과 같은 낡은 가치들이 표면상으로는 사라졌을지 모르지만 수많은 역사의 흔적들이 도처에 ‘유산’처럼 살아 숨쉬고 있음을 이 그림을 통해 암시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는지 모른다. 사실상 시에의 많은 작품에 그의 정치적 관심이 잠재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정치적 관심이 아닌 인간과 역사에 관한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시에가 태어난 1966년부터 열 살이 되던 1976년까지 십 년간은 마오쩌둥이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지식인과 그 소산물을 탄압한 문화혁명이 지속된 시기다. 또한 그는 대학생 시절 수많은 학생과 시민이 희생된 중국 최대의 민주화 운동인 텐안문 사태를 겪었다. 이처럼 중국의 정치 사회적인 역동기를 경험한 시에의 작품에 정치적인 이슈가 배제되기란 힘든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정치적 주제를 다루면서도 특정한 정치적 진술을 하는데 관심이 없다. 책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특정한 책의 내용을 보여주지 않는 것처럼. 다만 그의 관심은 역사 속에서 일부 힘있는 자들에 의해 남용된 권력이 다수의 힘없는 사람들에게 끼친 막대한 영향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그가 쉽게 버려지고 잊혀지는 일상의 보잘것없는 신문들이 역사의 각 단면을 이루고 있듯, 역사에서 부각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그 역사를 이루고 있는 개별자라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전시에 새롭게 소개되는 사진 연작은 이러한 시에의 역사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암흑 속에서 허공에 책들이 불타오르는 듯한 형상을 재현한 이 사진들은 권력에 의해 책이 강제 폐기되었던 역사적 사건들을 암시한다. 중국의 고서가 불타오르는 사진 연작 <무제(중국 책)>(2007)는 멀게는 진시황의 분서갱유 사건을, 가깝게는 마오쩌둥의 문화혁명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그는 지금도 열 살 무렵 중학교에 재직 중이던 아버지의 사무실에서 폐기하려고 쌓아놓은 고서들을 몰래 들춰 보던 기억을 떠올린다. 한편 니체, 마르크스, 사르트르, 보르헤스 등 서양 근대 이론가나 문학가의 책들이 소각되는 모습을 유사한 방식으로 포착한 또 다른 사진 연작 <무제>는 그의 초기 설치작 <야상곡: 나치에 의한 책 소각(Nocturne: Burning of Books by the Nazis)>(1995)을 사진으로 재현한 것으로 나치에 의해 금서들이 불태워지는 장면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이렇듯 시에의 사진들은 인류 역사상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을 지켜내기 위해 자행되어 온 수많은 책의 금기와 폐기에 관해 다루고 있다.  이들 사진 연작은 책에 대한 시에의 또 다른 주제적 접근인 동시에 사진에 대한 시에의 또 다른 형식적 접근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카메라를 분신처럼 늘 가지고 다니는 그는 인상적인 장면을 사진으로 담아 회화로 조심스럽게 옮겨낸다. 특히 도서관 서고라는 제한된 공간을 그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일일이 사진을 찍어 두어야 했을 것이다. 이렇듯 시에의 모든 회화는 사진을 토대로 그려지기에 사진은 그에게 대단히 중요한 매체이다. 그러나 회화를 위한 중간 단계로서의 사진이 아닌 최종 결과물로서의 사진을 전시에 선보인 것은 드문 일이다. 스튜디오에 인공 조명을 설치하고 허공에 책을 던져 그 순간을 포착해낸 이 사진들은 그의 회화들과는 또 다른 방식의 조형성과 생생한 느낌을 준다. 이는 그간 간간이 설치나 프린트 작업을 선보여 온 것과 동일한 맥락에서 작품마다 주제에 맞는 매체를 선택하려는 의도이자 매체에 대한 적극적인 실험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에에게 주가 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회화이다. 그것은 그의 작품들 중 회화가 차지하는 비율이나 그 자신이 생각하는 중요도 면에서 그러하다. 사실상 그의 회화적 기술은 동시대 어떤 작가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뛰어나다. 그러나 그는 전통적인 사실주의 기법을 그대로 답습하여 사실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는다. 그의 회화 속 대상물은 원근법과 눈속임(trompe-l'oeil)에 의해 잘 구성된 것이라기 보다 사진에 있는 사물이 놓여져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쪽에 가깝다. 하지만 사진을 토대로 한다고 해서 사진을 똑같이 재현하는 극사실주의와도 거리가 있다. 어느 단계가 지나면 그림은 그의 눈과 손이 결정하는 대로 흘러가며, 그의 붓질은 빈틈없이 견고하고 또렷하기 보다는 어느 정도 느슨하고 흐릿하다. 이는 그러한 기법이 시간과 기억, 역사의 일시적이고 덧없음이라는 그의 주제를 표현하기에 적절하기 때문이다. ‘축적된 책’이라는 소재를 형태와 의미 면에서 동등하게 중요시하듯, 책의 파기라는 역사적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해 사진이라는 매체를 선택하듯, 시에는 자신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회화적 기법을 적절히 구현하는 것이다. 그의 작품이 우리의 눈과 마음을 건드리며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이유는 이처럼 내용과 형식을 대등한 무게로 보완하며 조화를 이루어가려는 그의 끊임없는 노력 때문이 아닐까 한다.


Time, Memory and History Revealed by Things That Have Been Accumulated 
Text. Hyeyoung Shin I Curator of Gaain Gallery
Translation. Jawoon Kim

The word, 'accumulation' refers to the action of piling up things or the state of being piled up. Yet accumulation premises not only such an action or a state but time that needs to pile up or be piled up. In other words, physical accumulation premises non-physical accumulation of time. Xiaoze Xie (1966- ) uses 'accumulated' books or newspapers as the main subject matter for his paintings. In his work too, accumulation has two different meanings of physicality and non-physicality. For when the ways in which books or newspaper are piled up define his paintings' formal aspects, the thematic aspects of them are dominated by the meanings of time and history that are contained in those books or newspapers that have piled up or are being piled up.   It is in the early 1990s that Xie's Library series in which books are horizontally or vertically arranged on the bookshelves of a library.  He remembers the overwhelming moment when he found the rows of bookcases whose shelves are crammed with books in the school library. Having studied architecture in college, he experienced it as an architectural form and a specific visual pattern. In fact, his early Library paintings can be designated as grisailles in which the straight lines generated by the spines of books divide the picture planes. There is a common external feature shared by most of the paintings of Xie who has been painting the books piled up in the libraries in various places throughout the world in slightly different methods and forms: despite the realistic depiction of a book, a certain geometric pattern is formulated by the rectilineal form of the book and the repetition of it. This formal element decisively contributes to the somewhat minimal and abstract quality of his painting in spite of its precise realism. This is all the more conspicuous in his paintings of newspapers which started in the mid 1990s. The pattern produced by the profile of a pile of folded newspapers evokes a feeling different from that books engender due to its repeated, tender straight lines possess some curvilinearity, and some parts of the texts or pictures of newspaper articles are exposed not to deprive viewers of the pleasure they can obtain from realistic depiction.  His devotion to the accumulated books and newspapers is not, however, caused solely by such formal factors. Books and newspapers are also important in the non-physical context that the units which determine the formal nature of his painting are books or newspapers that contain 'the accumulation of time'.  A book is one of storage devices that house human knowledge and the accumulation of such books entails the history of knowledge. The reason that he paints not a single book but the books neatly placed in a library might lie in the fact that he provably intends to convey the symbolic meaning of the history of knowledge that books have been accumulated for a long time to establish rather than the nature of a book to contain knowledge. A similar reason can also explain the fact that his books are mostly worn-out and old books that are soiled by use and worm-eaten. Although they pave the way for new books, old books are often neglected or put to sleep for a long time. Accordingly, these books in decay invoke a feeling of loss and decline since they could disappear some day. This also applies to newspapers. Today's newspaper will be replaced by tomorrow's, and it is used only for today and is destined to be thrown away or recycled. Yet, when they are collected and piled up, they become the traces of a detailed history with day marks. While showing the profile of the accumulated state of the several bundles of newspapers arranged by date by a librarian, The Silent Flow of Daily Life reveal both the ephemeral fate of newspapers and time that has been accumulated. This series that has been continued since 1995 suggests that every day we spend without paying much attention to it is a tiny fragment to consist history and that time is flowing away silently at this very moment. The old books and newspapers of Xie are not about some nostalgia for the past. What has passed does never stay in the past and what is being done at this moment cannot be eternal, and thus his newspapers and books are telling the stories of 'the present' that is continuously being accumulated in time.  In this exhibition are exhibited his Chinese Library series together with the recent works of The Silent Flow of Daily Life. Chinese Library has also continued since 1995 and it shows the old books put in the libraries in China that have been being damaged. Especially, the recent works of this series shown in this show take as their subjects the books which are owned by a university library in Beijing and were damaged during the library's move during the years of the Japanese invasion of China in the 1930s and 1940s. The books are considerably burnt, stained with soot or harmed by water. These books contain the traces of time like his other books, but at the same time they evidence an important historical fact. Also, when externally compared to the works of his Library series, these paintings are more imbued with realism than geometric abstraction as rather complicated forms and rich colors or texture used to depict the severely damaged pages veil the regular, straight lines of the books.     Meanwhile, there is a painting that is distinguishable from other works in terms of size or form, and it is a large-scale painting entitled Legacy (2007) that depicts a specific place. Rendering the entire space of a certain place by use of strong composition unlike other paintings that show only the piles of books or newspapers, this work more concretely delivers his views on history and politics. There is seen the back of the bust of Mao Zedong in the center of a room crowded with books, old furniture, bundles containing miscellaneous objects and paper boxes. This painting shows the photographic scene of the place where the things were temporarily put before a small library in the southern part of China moved to a new building. To the eyes of Xie, the scene in which the dim light of late afternoon breaks across the room occupied by old objects and the bust of Mao dramatically epitomized the transition period of China. It might be that Xie aims to imply that numerous vestiges of the past are still breathing in every quarter even though old values such as communist ideologies have disappeared at least on the surface in China that is now undergoing change brought by the prevalence of a variety of new values including capitalism  In fact, many of Xie's works retain his political concerns. And they are not just of simple political curiosity but are related to human and history. During the decade from 1966 when Xie was born to 1976 when he was 10 years old, the Cultural Revolution was being carried out by Mao Zedong to persecute intellectuals and their products as a method to secure his political power. During his college years he also witnessed the Tiananmen Square protests which called for the full-fledged democratization of China and in which many students and citizens were killed or injured. It would be rather hard for Xie, who experienced such political and social turbulences of China, to exclude certain political issues from his artistic work. Yet he is not interested in making specific political statements, as he deals with the subject matter of books in the way that the particular contents of books are not revealed. His political concerns are just unfolded so as to mark the historical fact of the harsh impact of the abuse of power by a small number of power holders on a large number of powerless ordinary citizens. As one can infer from his work where newspapers, which are easily thrown away and forgotten, form a phase of history,  this is provably because he firmly believes that many ordinary individuals who are not registered in history are the ones who actually write history.  His series of photographic works to be first introduced in this show embodies such historical views of Xie. In the photographs, books are burning in the air in the dark, and they suggest the historical incidents during which books were forced to be destroyed by the authorities. Untitled(Chinese Book) (2007), which is a photographic series in which old Chinese books are burning, is redolent of Qin Shi Huang's order to burn books and of the Cultural Revolution led by Mao Zedong. As a matter of fact, he still recalls the moments when he stole a look at the old books that his father, who was teaching at a middle school, had heaped up before throwing them out around at the age of 10. Another photographic series entitled Untitled captures in a similar way the scenes where books by Western theorists and writers of the modern period such as Nietche, Marx, Sartre and Borges are thrown into fire. This work re-presents his early installation piece entitled Nocturne: Burning of Books by the Nazis (1995) in the form of photography and was inspired by a scene from a documentary film in which the Nazis burn banned books. As examined, the photographs of Xie are linked to an aspect of human history that books were banned and destroyed to keep one's power in all ages and countries.  The significance of these photographic series lies in that it is through these works that he makes another thematic approach and at the same time makes an attempt at another formal experiment with the medium of photography. While always carrying his camera with him wherever he goes, he takes pictures of impressive scenes and carefully transfers them onto paintings. In particular, in order to paint such a restricted space of a library, he might have had no choice but to take pictures of every corner. Photography is a very important medium for Xie since all of his paintings are based on photographs. But it is unusual that he exhibits in an exhibition his photographs as the final artistic outcomes, not as the preparatory tools for his paintings. Having captured the moments when books are thrown into the air under artificial lighting in his studio, these photographs provoke vivid feeling and manifest an artistic form in a different way that his paintings do. This is also originated from his attitude to choose a medium that is most appropriate for his theme and from his constructive experiment with artistic mediums, as exemplified by his occasional employment of such art forms as installation art or photogravure print.  Nonetheless, the most essential medium for Xie is painting. A large part of his oeuvre consists of paintings and Xie himself considers painting as his primary artistic medium. It is true that his painting skills are second to those of none of his contemporary painters. But he does not represent facts as they are by imitating conventional realistic methods. The objects in his paintings are not neatly arranged by use of perspective and trompe-l'oeil. Instead, his paintings show as the objects are captured in the photographs. Still, they separate themselves from Hyperrealistic works which highly resemble photographic images. After a certain stage, his painting comes to follow the flow of his eyes and hands, and his brushwork is less compactly solid or clear than loose and blurred to some degree. For it suits his theme of the transitory and ephemeral nature of time, memory and history. As he places equal emphasis on the form and content of his subject matter of 'accumulated books', and as he employs the medium of photography to vivify the historical fact of book burning, Xie utilizes painting methods in the way that they contribute to the effectual conveyance of his theme. That his art draws world attention as it touches our eyes and minds is seemingly due to his ceaseless efforts to supplement the form and content of his work with the same amount of attention so as to achieve equilibrium.    

EXHIBITION PAGE

Kyungwoo Chun

Believing is Seeing

May 17, 2007 – Jun 17, 2007

시간의 축적과 인간의 관계를 담은 사진
글. 신혜영 | 가인갤러리 큐레이터

“나는 내가 보는 것을 찍는 것이 아니라 내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을 찍는다.”1) 어느 인터뷰에서 밝힌 사진작가 천경우의 이 말은 사진에 대한 그의 생각을 대변해 주는 동시에 <믿는 것이 보는 것이다(Believing is  Seeing)>는 이번 전시 제목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는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seeing is believing)”라는 서양의 오랜 격언에 대한 역설적 답변으로서, 시각의 명증성을 우선시하는 서구의 근대적 사고와 시각적 복제물이라는 사진의 일반적인 정의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제시하는 것이다. 사실상 천경우 사진 전반을 관통하는 고유한 매력은 이렇듯 기존의 질서를 끌어와 결국에는 전혀 다른 반대 지점에 이르는 역설적 방법론을 취하는 데 있다.
가장 기본적인 사실에서부터 시작해보자. 천경우는 인물사진을 찍는다. 그의 사진 속 인물은 윤곽이 선명하지 않고 형상이 또렷하지 않다. 이러한 결과는 그가 감광도가 낮은 필름을 사용해 장시간 노출로 인물을 찍는 데서 기인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방법이 19세기 중엽 처음 등장한 초상사진의 그것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상류층 사람들이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기 위해 필요로 했던 초기 초상사진은 사진 속 인물이 자신임을 확실히 드러내야 했기에 무엇보다 대상의 사실적인 재현을 최우선으로 하였다. 따라서 장시간의 노출이 불가피했던 당시의 사진 기술상, 보다 또렷한 상을 얻기 위해서 사진가는 피사체에게 오랜 시간 표정을 굳히고 동일한 자세를 취할 것을 요구해야 했다. 그러나 천경우의 인물사진은 초기 초상사진과 동일한 조건을 차용하면서도 그 과정과 목적을 전혀 달리 한다. 자신의 신분을 노출하기 위해 금장식 의자, 커튼 등의 소품들을 사용했던 당시의 초상사진과 정반대로 천경우는 의도적으로 배경을 중성적으로 처리하고, 심지어 많은 사진에서 인물들의 옷을 검은색으로 통일한다. 이는 그야말로 인물에게만 집중하기 위함이다. 장시간 노출로 배경과 옷은 묻혀버리고 우리는 오직 인물의 눈빛과 표정의 “미묘한 뉘앙스”2)에만 몰입하게 된다. 천경우의 사진이 긴 노출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은 오직 그 시간 동안 사진을 찍히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세밀한 정신적 변화의 과정, 즉 “섬세한 정신의 직물”3) 을 담기 위함인 것이다.
따라서 그는 실물과 닮은 또렷한 상을 얻는 데 집착할 필요가 없고, 이를 위해 피사체가 부동의 자세를 취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그는 조리개를 열어놓는 동안 카메라 앞에 앉은 사람에게 자유로워지기를 청한다. 수십 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카메라 앞에 앉은 사람은 작가의 인도에 따라 스스로를 반성하고 숙고하며,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사진을 찍는 자와 찍히는 자 간에 수많은 대화가 오간다. 카메라가 대상이 반사하는 빛을 담는 동안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반응과 교감이 함께 담기게 되는 셈이다. 이렇듯 시간이 축적되는 가운데 서로의 모습을 반영함으로써 완성되는 천경우의 사진에서 더 이상 찍는 자와 찍히는 자라는 전통적인 의미의 주-객의 구분은 희미해진다. 그의 사진 속 인물은 “포즈를 취하는 동안 자신을 조직하고, 순식간에 다른 육체로 만들고, 미리 앞질러 스스로를 이미지로 변형시켜 버리는”4) 경직된 피사체가 아니므로, 더 이상 “과녁, 대상물, ...대상에 의해 사출(瀉出)된 환영이거나 사진의 유령”5)이 아닌 것이다. 나아가 그 결과물이 가져다 주는 섬세한 정서를 느끼고 반응하는 관객까지 그 관계 안으로 들어와 얽히게 된다. 그러므로 그의 사진에서 주도적 의미의 ‘촬영자’와 수동적 의미의 ‘피사체’라는 용어는 적절치 않으며, 그것을 멀찍이 바라보는 ‘구경꾼으로서의 관객’도 존재치 않게 되는 것이다. “정면을 향해 오랜 시간을 나와 함께 채워나간 내 사진 속의 인물들은 나의 자화상이기도 하고 나의 사진을 바라보는 관람자의 모습일 수도 있다”6)는 작가의 말은 그의 사진을 둘러싼 인간의 ‘관계성’을 축약하여 보여준다.
이렇듯 천경우의 사진은 가장 전통적인 방식의 초상사진으로부터 출발하여 인간의 관계와 시간의 축적에 기반한 사진의 본성을 탐구하는 지속적인 과정이다. 그는 사진의 본질적인 특성이 타인과의 관계를 인정하는 것에 다름 아님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사실상 내 얼굴을 보는 사람은 나 자신이 아닌 타인일 수밖에 없기에 사진을 찍어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자 하는 것이 인물사진의 가장 근본적인 목적일지 모른다.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나 자신이 아닌 타인이듯이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만 자기 존재를 증명할 수 있지 않은가.
이번 전시에서 천경우는 자신의 지속적인 테마인 인간의 ‘관계성’을 더욱 심화하여 보여준다. 먼저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그의 첫 컬러사진 연작인 (2006-2007)는 그 제목대로 누군가에 ‘대하여’ 형성되는 우리의 인간관계를 집약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카메라 앞의 두 여인에게 서로의 몸과 얼굴을 기댄 채 두 사람의 나이를 합한 숫자의 분(minutes)만큼 자세를 유지하도록 하였다. 서로의 어깨에 자신의 체중을 실은 상태에서 수십 분을 버티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이들은 서로 기대어 균형을 맞추어 가면서 중심을 유지하는 동안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이 타인을 의존해 가면 살 수 밖에 없는 인간임을 깨닫게 된다. 그는 이 퍼포먼스 형식의 사진 작업에서 참가자들에게 한자의 사람 ‘인(人)’의 형태와 의미를 주지시켰다. 두 개체가 서로 지지함으로써 지탱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사람 ‘인(人)’ 자처럼 우리 인간은 독립된 존재로서 살아가는 듯하나, 동시에 타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고 타인을 통해서만 자신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두 사람의 옷, 머리, 피부에서 반사되는 색이 수십 분간 컬러 네거티브 필름에 그대로 혹은 뒤섞여 기록되어 특별한 조작 없이도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가져온다.
'Versus'의 전작에 해당하는 'Pseudonym'(2004) 역시 개념상 같은 맥락에 있다. 이 사진 연작은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상대의 어깨에 손을 얹고 두 사람의 나이를 평균 낸 시간(minutes)만큼을 보내는 과정을 카메라가 한 방향에서 담아낸 것이다. 사람이 일종의 심리적 보호 범위에 해당하는 가까운 거리에서 타인을 마주 했을 때 느끼는 익숙하지 않은 느낌과 둘 사이의 긴장감을 의도한 작품이다. 또한 이 작품들은 한 사람은 정면이 보이고 다른 한 사람은 뒷모습만이 보이도록 카메라 앵글을 고정하여 촬영함으로써 얼굴이 보이는 사람과 마주한 사람이 다른 인물일 수도 있지만 동일인물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이는 ‘익명(Pseudonym)’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모든 사람이 자신을 나타내고 싶은 욕구와 숨기고 싶은 욕구를 동시에 가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자아와 타아의 동시성에 관한 작가의 생각은 이 작품에서 모노톤의 이미지가 한 장은 포지티브로 다른 한 장은 네거티브로 프린트되어 한 쌍을 이루면서 그 효과가 배가된다.
이렇듯 'Versus'와 'Pseudonym' 연작은 작가 본인이 제3자의 입장에서 거리를 두고 참가자들 사이에 일어나는 교감과 반응을 관찰하고 탐구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작품들과 조금은 차별화된 퍼포먼스 형식의 사진이다. 한편 천경우는 이 두 연작과 동일한 개념의 퍼포먼스를 실제 관객들이 있는 가운데 실연(實演)하고 그것을 비디오로 담은 'INTO: apoyo ocarga(힘이 되거나 짐이 되거나)'(2005-2006)을 이번 전시에서 함께 선보일 것이다. 이는 작가가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관객들이 현장에서 함께 경험함으로써 좀 더 많은 사람들 사이에 긴장감과 관계성이 확장되기를 의도한 것이다. 익명의 관객 10~20명이 마주 앉아 에서처럼 서로의 어깨에 손을 얹고 다른 한 손을 마주 잡은 채 일정 시간을 보내는 이 퍼포먼스는 처음에는 모두에게 낯설고 어색했던 행위가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의 교감의 상태에 따라 짐이 되기도 하고 의지가 되기도 하는 관계의 상대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물론 이러한 전(全)과정을 바라보는 관객들 역시 이 긴장관계에 동참하게 된다. 스페인에서 행해졌던 퍼포먼스를 영상 편집한 이 비디오 작품의 상영과 더불어 전시 오프닝 당일에는 한국 관객들의 참여로 실제 퍼포먼스가 이루어질 예정이다. 이는 관객들에게 영상을 통해 보는 것과 또 다른 종류의 생생한 경험을 가져다 줄 것이다.
한편, 이처럼 유사한 개념을 가진 작품군 외에 전시의 주된 축을 이루는 또 하나의 사진 연작은 전시 제목과 동일한 'Believing is Seeing'(2006-2007)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전세계적으로 처음 선보이게 될 이 새로운 연작은 선천적 혹은 후천적으로 시각을 잃은 시각 장애 어린이와 청소년의 참여로 독일에서 제작된 작품이다. 인물군의 범위를 한정 지었다는 점에서 기존의 작품들과 차별화되지만 여전히 작가 고유의 인물에 대한 내밀한 천착이 돋보인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볼 수 없는 사람들과의 교감을 통해 그가 오랜 시간 고민해 온 ‘보는 것’과 ‘본다고 믿는 것’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작가가 카메라 앞에 앉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무엇을 보는지 혹은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보인다고 믿는지 등을 묻고 답하는 30~40분의 시간 동안 노출이 이루어졌다. 시간이 축적되는 동안 참가자들은 작가와 교감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머리에 그리게 되고 그러한 모든 반응과 교감은 한 장의 사진에 고스란히 담긴다. “눈을 뜨면 보이는 것만 보게 되지만 감으면 더 많은 것이 보인다고 나는 믿는다”는 작가의 말처럼, 눈을 뜨고 있는 사람이 ‘보는 것’ 보다 눈을 감고 있는 사람이 ‘본다고 믿는 것’이 때로는 더 풍부할 수 있다. 'Believing is Seeing'연작은 사진(寫眞)이 ‘실물을 베낀다’는 그 한자 뜻과 같이 오직 실물과의 닮음이나 사실의 복제와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는 작가의 오랜 생각을 우회적으로 말해주는 작품이 아닌가 한다. “물론 사진은 직접적인 사실과 관련된 것이지만, 같은 것을 바라보는 많은 다른 방법들이 있다는 믿음과도 관련된다. 진실로 믿는 것이 보는 것이다.”7) 1994년 첫 개인전 이후 십 수 년 넘게 지속되어 온 천경우의 사진은 이러한 동일한 의도를 기반으로 발전해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인간의 관계성에 관한 보다 심도 있는 연구와 시도를 감행했다. 또한 이제까지의 어두운 모노톤 위주의 작품 성향에서 잠시 벗어나 빛의 또 다른 모습인 색이 사진에서 보여줄 수 있는 조형적 아름다움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는 하나의 큰 강줄기 아래 흐르는 수많은 작은 시내 중 하나에 불과할 것이다. 사진작가 천경우는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믿었던 19세기 초상사진을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을 수 있다’는 믿음에 이르는 21세기 새로운 인물사진으로 바꾸어 가는 긴 여행 길 위에 서있고, 이번 전시는 그 길 위에서 제시하는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일 것이기 때문이다.      

1) , interview by Susanne Pfeffer, HATJE CANTZ, 2005, p. 89
2) <카메라 루시다>, 롤랑바르트, 열화당, p. 18 (“위대한 인물사진가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미묘한 뉘앙스를 표현하지 못한다”)
3) Ibid., p. 18
4) Ibid., p. 18
5) Ibid., p. 16
6) (2005년 5월호), 미술사랑, p. 113
7) , interview by Susanne Pfeffer, HATJE CANTZ, 2005, p. 90


What Is Not Seen Can Be More Than What Is Seen !
Text. Hyeyoung Shin | Curator of Gaain Gallery
Translation. Jawoon Kim

 “I photograph not what I see, but what I believe exists.”1) This words of Chun Kyungwoo stated in an interview reveal his thoughts on photography and imply the meaning of the title of this exhibition, ‘Believing Is Seeing’. The title is a paradoxical response to the Western adage, “Seeing is believing” as it takes a strongly skeptical view of modern Western thought that prioritizes visual verification and of the general definition of photography of visual reproduction. In fact, the distinctive appeal that penetrates the photographic oeuvre of Chun lies in this paradoxical methodology through which established order is primarily taken to be delivered at the opposite end. Let us start with the most basic fact. Chun photographs people. The figure in his photograph has neither clear outlines nor definite shapes. This results from his use of low-sensitivity film and a long exposure. What is interesting about this is that this method is identical to the method used for the portrait photography of the mid 19th century when it first appeared. Since early portrait photography was requested by upper-class people to show off their social standings, one of the most important factors that had to be fulfilled was to clearly demonstrate who the figure was, and thus the realistic representation of the object was imperatively essential. The photographic technology of that time inevitably required a long exposure, and hence a photographer had to ask the subject to keep still for a considerably long time. Although Chun’s portrait photographs employ the same conditions of early portrait photography, its process and aim are entirely different. The portrait photography of that period utilized such props as a chair decorated with gold and curtains to expose one’s social rank, but on the contrary Chun intently neutralizes the background and dresses the subject in black in many photographs of his. This is to place the sole focus on the subject. The long exposure buries the background and clothes, and we can concentrate on the “subtle nuance”2) emanating from the eyes and facial expression of the subject. Chun’s photographic works necessitate a long exposure in order to render “a delicate moral texture,”3) that is, the process of minute mental change occurring only to the very subject that is being photographed during a certain amount of time.  
Accordingly, Chun does not need to worry about obtaining a clear image that resembles the subject and the subject also needs not to pose still. Rather, he asks the subject sitting in front of his camera to feel free for the time during which the iris is opened. The person sitting in front of the camera for a long period of time of several tens of minutes reflects on him/herself in accordance with Chun’s guidance, and numerous dialogues are shared between who is photographing and who is being photographed across the camera. As the camera absorbs the light the object reflects, the mutual responses between the two people are also absorbed. In the photographs of Chun that are completed when they reflect each other as time accumulates itself, the conventional division of the subject and the object, namely, of who is photographing and who is being photographed, is blurred. The figure in his photographs is no longer a rigid subject that “constitutes him/herself in the process of posing, instantaneously makes another body for him/herself and transform him/herself in advance into an image,”4) and thus is neither “the target nor “the referent” nor “any eidolon emitted by the object”.5) Furthermore, the viewer who feels and responds to the delicate emotions that the product generates enters into the relationship and becomes entangled in it. Therefore, either active word ‘photographer’ and passive word ‘subject’ is not pertinent to his photographs, and there even ‘the audience as the bystander’ do not occupy a place. His statement, “The figures in my photographs who have seen it through for a long time depict both myself and those who are looking at a picture of me”6) briefly explains the relation of human beings that encompasses his photographs.
Chun’s photographs are the products of the continuous process that inquires into the nature of photography that is based on human relationships and the accumulation of time while having started from the most traditional mode of portrait photography. He is well aware that the essential property of photography is nothing but acknowledging the relationship with other people. Considering that who sees my face is not me but other people, it may be said that the fundamental aim of portrait photography is to meet the desire to identify oneself through his/her own picture. As who calls my name is not me but others, one can verify his/her being only within his/her relationships with others.
In this exhibition, Chun digs deeper in exploring his continuous theme of human ‘relation’. Versus (2006-2007), his first series of color photographs that is shown in Korea for the first time through this exhibition, epitomizes one’s human relationships that are formed ‘versus’ someone as the title suggests. For this work, Chun asked the two women in front of the camera to hold their leaning pose for the duration of the minutes calculated by adding their ages. It is not that easy to endure several tens of minutes while placing one’s weight on the other’s shoulder, and they realize more acutely than ever that they cannot live without relying on others during these minutes when they are trying to keep their balance as they lean on each other. For this photographic work in the form of performance art, he made sure that participants comprehend the form and meaning of the Chinese letter for ‘human (人)’. As the letter entails that two entities can hold themselves by supporting each other, it seems that one leads his/her life as an independent being, yet one cannot avoid to rely on others from time to time and one can identify him/herself through others. The colors reflected from the two people’s clothes, hair and skin are recorded on color negative film either as they are or in mix so as to bring out the dreamily beautiful without any special manipulation.
Pseudonym (2004) which is the previous version of Versus is also in the same conceptual context. This series shows a single angle view of the process in which two people are sitting while facing each other with their hands on each other’s shoulder for those minutes that correspond to the average number of their ages. Chun intended to convey the unfamiliar feeling and tension that people sense when they face others in a close distance that is applicable to a kind of psychologically protected range. In addition, in these works the camera angle is fixed to capture one’s frontal view and the other’s rear view, and in consequence the one whose face is exposed and the other are possibly either different persons or one and the same person. This dual possibility symbolically tells, as the title of ‘Pseudonym’ entails, that everyone has two different needs at the same time to reveal and conceal him/herself. Such a thought of Chun on the simultaneity of ego and other ego doubles its effect in its realization as a positive print and a negative print of a monotonic image form a pair.
While incorporating the element of performance art, Versus and Pseudonym are slightly differentiated from his previous works in the respect that the artist himself took the position of the third person who observes and delves into the mutual responses between participants. Meanwhile, Chun also shows in this exhibition a video work entitled ‘INTO: apoyo o carga’ (2005-2006) in which a performance whose concept is identical to these two series is performed before an actual audience. This is intended to extend tension and relation to much more people by making viewers to experience the situation occurred during the process of the artist’s photographing. In this performance, ten to twenty anonymous viewers are sitting facing each other as in Pseudonym with their one hand on each other’s shoulder and their the other hand holding each other’s hand for a certain amount of time. The change developed during those actions demonstrates the relativity of relation as the actions that were unfamiliar and awkward at first become, as time accumulates, either burdensome or helpful in accordance with what kind of rapport they share. And viewers who are watching the whole process come to participate in this state of tension. Together with this video work in which the performance carried out in Spain is edited, on the opening day of this exhibition there will be an actual performance with the help of Korean viewers. It will provide viewers with a live experience different from that can be gain from video images.
Besides these works of similar concepts, another photograph series that forms one of the main axes of the exhibition is Believing Is Seeing (2006-2007) which has the same title the exhibition does. This new series, which is introduced for the first time through this exhibition, was produced in Germany with the participation of young people who were visually impaired either congenitally or postnatally. These works are differentiated from previous works in the fact that they restrict the range of subjects, but nonetheless they still bear Chun’s persistent exploration for people. In this series, Chun unfolds his longstanding question on ‘to see’ versus ‘to believe to see’ by showing the empathy with those who cannot see. The long exposure for thirty to forty minutes was taken as Chun asked those in front of the camera what they see or how they believe to be seen by others and they answered. As time accumulates, participants imagine how they look as they empathize with Chun, and all the responses and empathies are intactly registered in a photograph. As Chun says, “Open eyes see only what is seen, and I believe closed eyes can see much more,” what one ‘believes to see’ with his/her closed eyes can be sometimes richer than what the other ‘sees’ with his/her open eyes. 
It is assumable that Believing Is Seeing implicitly illustrates Chun’s consistent idea that photography has to do not merely with the notions of resemblance and the reproduction of facts as the meaning of Chinese word for photography of copying the actual object connotes, but it is capable of making what is not seen to be seen. “Of course photography has to do with direct reality, yet it also has to do with the belief that there are many different ways of viewing the same thing. Believing really is seeing.7) It may be safely said that the photographic art of Chun that has continued over a decade sine his first solo exhibition in 1994 has developed on the basis of this coherent intent. In this exhibition, he ventures a more intensified attempt on human relation. Also, while abandoning the previous use of dark monochrome for a while, he explores into the visual beauty that color, which is another appearance of light, can create. Yet, this would be nothing but one of the countless streams which are to be joined to form a wider river. For photographic artist Chun Kyungwoo is on a long journey during which he develops 19th-century portrait photography that believed ‘what is seen is all that is’ into 21st-century portrait photography that would make one believe ‘what is not seen can be more than what is seen,’ and this exhibition is just one of infinite possibilities that he unfurls on that journey.


1) KYUNGWOO CHUN – photographs, video performances, interview by Susanne Pfeffer, HATJE CANTZ, 2005, p. 89
2) Roland Barthes, Camera Lucida, Yeolhwadang, p. 18. (“Photography is anything but subtle except in the hands of the very greatest portraitists”)
3) Ibid., p. 18
4) Ibid., p. 18
5) Ibid., p.16
6) art in culture, May 2005, misoolsarang, p. 113.
7) KYUNGWOO CHUN – photographs, video performances, interview by Susanne Pfeffer, HATJE CANTZ, 2005, p. 90

EXHIBITION PAGE

Seong Chun

Seong Chun

Apr 10, 2007 – May 10, 2007

공간과 지각의 상대성에 관한 섬세한 고찰
글. 신혜영

“닫혀 있는 상자 속에는 언제나, 열려 있는 상자 속보다 더 많은 것들이 있다. 사실을 확인하려고 든다면, 이미지들은 죽어 버릴 것이다. 언제나 상상함이 삶보다 더 풍요로운 법이다.”
- Gaston Bachelard, The poetics of space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는 자신의 저서 『공간의 시학』(1957)에서 사람들이 시를 읽고 느끼는 저마다 다른 주관적인 느낌을 묘사하면서 예술에 대한 심미적 체험이나 상상력이 각자의 삶과 본질적으로 깊은 관련을 맺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는 자궁 안에 있을 때 형성된 무의식 속의 이미지가 상상력의 근원이 된다고 보고, 자궁과 유사한 집, 서랍, 상자, 장롱, 조개껍질 등 내밀한 공간들에 대해 탐구한다. 재미 한인작가 천성림(Seong Chun, 1966- )은 사람들이 모든 현상에 대해 저마다 상대적인 지각과 감수성을 지닌다는 사실을 공간과 장소에 관한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작품 안에서 풀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바슐라르를 떠올리게 한다(실제로 그녀는 작품에서 『공간의 시학』의 텍스트를 사용하기도 했다).
천성림의 주된 작업방식은 종이를 얇게 잘라 그것을 실처럼 사용하여 뜨개질 기법으로 평면과 입체를 만드는 것이다. 멀리서 볼 때 형태와 색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그녀의 작품은 가까이 들여다보면 한 올 한 올 엮어놓은 그 직조법에 놀라게 된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얇은 종이에 깨알같이 적혀 있는 작은 글씨들이다. 그녀는 종이에 텍스트를 인쇄해 얇게 자른 후 그것을 코바늘로 뜨개질하듯 엮어나간다. 이러한 그녀의 작업은 물론 엄청난 노동력과 섬세한 손길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녀의 작업을 여성성이 돋보이는 공예적인 작업이라고만 할 수 없는 것은 그 안에 있는 바로 이 텍스트 때문이다.
그녀가 작업의 재료로 사용하는 텍스트는 그녀가 평소에 읽은 책에서 공감이 가는 부분을 발췌하여 본인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것이거나 아예 새롭게 쓴 것들이다. 그것은 바슐라르의 『공간의 시학』에서부터 기 드보르(Guy Debord)의 『스펙터클의 사회(Society of the spectacle』, 폴 비릴리오(Paul Virilio)의 『시각기계(The Vision Machine』, 램 쿨하스(Rem Koolhaas)의 『정신착란증의 뉴욕(Derilious New York)』에 이르기까지 거의 대부분이 공간과 사회, 그리고 시각 이미지에 관한 이론서들이다. 그녀의 작품이 추상적이고 서정적이며 명상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그녀가 작품에 사용하는 텍스트의 내용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녀는 어떠한 사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책보다 행간의 의미를 최대한 많이 함축하여 그 사이를 자신의 언어로 채울 수 있는 책들을 선호한다. 또한 텍스트를 책에서 그대로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방식으로 바꾸어 적는다. 따라서 그녀의 작품 안에 담긴 글은 표면상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뜨개질로 짜인 종이의 가닥가닥마다 쓰여 있는 텍스트는 그것들이 엮여나가는 과정에서 감춰지고 드러남을 반복함으로써 한 두 단어 이상 알아보기 힘들어진다. 따라서 구절이나 문장을 유추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며 전문(全文)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사실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텍스트를 하나의 조형적 요소로 받아들이게 될 뿐 해독의 시도를 하기조차 힘들다. 혹여 해독하려 한다 해도 얼핏얼핏 보이는 각 단어들을 조합하여 저마다의 짐작과 느낌으로 그 작품의 텍스트를 받아들일 뿐 원래의 내용을 파악할 수 없으며, 따라서 작품을 제작할 당시 그녀의 생각이 그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그녀는 이러한 모호함(ambiguity)을 의도한다. 그녀는 지금 여기 놓여진 바로 이 작품을 통해 작품을 바라보는 자와 작품을 제작한 자의 대화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그것이야말로 예술작품 감상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특정한 텍스트가 사람들에게 읽혀지기보다는 그 텍스트를 재료로 사용한 자신의 작품 자체가 사람들에게 각기 다르게 다가가기를 원하는 까닭이다. 이러한 점에서 천성림에게 텍스트는 서로 다른 공간 사이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작품에 사용되는 텍스트를 기술한 자의 공간과 작품을 제작한 자신의 공간, 그리고 그것을 감상하는 자들의 공간을 연결하는 것이 바로 그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천성림의 모든 작업은 그녀를 둘러싼 ‘공간’으로부터 시작된다. 한국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 LA로 이민 간 후 그곳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다시 뉴욕으로 이주한 그녀는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 과거에 자신이 속해 있던 공간과 현재 자신이 속해 있는 공간에 대해 고민하고, 그러한 고민을 작품에 충실히 반영해 오고 있다. 처음 지금의 뜨개질 작업(crocheted work)을 시작한 계기 역시 그녀의 공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1990년대 초반 뉴욕에 온 그녀는 상대적으로 넓은 작업공간이 확보되었던 미 서부 지역에서와 달리 협소한 공간에서 작업을 할 수 밖에 없는 뉴욕의 현실에서 책상에 앉아 많은 책을 읽고 메모하는 일이야말로 자신의 상상력을 확장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길이었다. 그러던 중 낱장의 종이들을 뜯어내고 남은 노트의 끝부분을 반복해서 접어나가다가 지금의 작업을 생각해냈다. 어린 시절 미국에 다니러 온 이모가 가르쳐 주었던 뜨개질이 떠올랐고 실 대신 종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껏 읽어 온 수많은 텍스트들이 거기에 자연스럽게 삽입되었다. 그 결과 오랜 기간 축적된 그녀의 사유와 상상력은 텍스트와 함께 작품 안으로 녹아들 수 있었다. 이렇듯 텍스트는 그녀의 작업에서 조형적 요소이기 이전에 그녀가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추동 하는 사유의 흔적이며 수많은 공간을 이어주는 매개체인 것이다.
텍스트를 이용한 천성림의 종이 뜨개질 작업 가운데 몬드리안의 추상회화를 모티프로 한 연작들은 뛰어난 조형성과 함께 공간에 대한 고찰을 보다 직접적으로 미술사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자세히 언급할 가치가 있다. 그 근저에 많은 이론적 배경을 가지고도 가장 기본적인 색과 단순한 형태로써 근원적인 아름다움을 이끌어낸 몬드리안은 회화를 전공한 그녀에게 가장 존경하는 화가 중 한 사람이자 자신의 작업과 여러 지점에서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녀는 빨강, 파랑, 노랑이라는 기본색과 수직, 수평을 이루는 검은 선이라는 몬드리안의 원초적인 모티프를 가지고 그 비례와 구성을 변형시키고, 재료와 제작방식을 전혀 다른 것으로 대체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천성림의 작품이 몬드리안을 차용하면서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고유하게 변형시키는 지점은 몬드리안 회화 안에 몬드리안 회화에 관한 텍스트를 삽입한다는 점이다.
모더니즘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몬드리안의 회화에는 단순한 색과 형태로 회화적 요소를 환원한 만큼 그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많은 설명과 주석이 따라붙는다. 그러나 그것들은 절대 그림 안으로 들어 올 수 없으며 언제나 그림 뒤에 따라다닐 뿐이다. 이러한 추상회화의 역설은 천성림에게 몬드리안을 차용하는 이유가 되고 그녀의 작품의 핵심적인 부분이 된다. 그녀는 몬드리안이 직접 쓴 글과 미술사학자 이브 알랭 부아(Yve Alain Bois)가 몬드리안에 관해 기술한 『모델로서의 회화(Painting as Model)』 중 자신에게 의미있는 부분을 발췌하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은 텍스트를 프린트 한 종이와 색지를 뜨개질 기법으로 엮어 몬드리안의 회화를 변형시킨다. 이렇게 제작된 그녀의 새로운 추상회화(사실상 회화가 아닌)에는 - 얼키설키 짜여 그 의미를 해독할 수 없지만 - 몬드리안에게서는 불가능했던 글과 그림의 공존이 가능해진다. 그녀는 회화적 이미지를 구성함에 있어서 텍스트를 삽입함으로써 몬드리안의 순수한 조형성을 흐리는 동시에 몬드리안 본인의 서술뿐 아니라 그에 대한 이론가의 해석과 그 둘에 대한 작가 본인의 생각을 첨가함으로써 텍스트의 내용에서 또한 순도를 흐린다. 이러한 시도는 몬드리안, 이브 알랭 부아, 작가 자신, 나아가 개별 감상자들 사이를 잇는 것으로서 각기 다른 그들의 공간을 연결해주고 있다.
몬드리안 시리즈뿐 아니라 사실상 천성림의 작품 전반은 회화를 기반으로 한다. 이차원의 종이를 삼차원으로 전환하는 제작방식 자체가 일종의 회화의 변형이며, 그녀의 작업에서 색의 사용은 매우 핵심적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빌딩을 암시하는 직사각형의 종이 상자 위에 초록색 계열의 각기 다른 색지로 뜨개질하여 덧씌운 수 십 개의 단위원소들을 하나의 테이블에 설치한 의 경우 그것은 그 자체로 초원이 드리워진 한 폭의 대형회화를 연상케 한다. 또한 과슈와 색연필을 사용해 제작한 작가의 드로잉들은 그녀의 뛰어난 회화적 감수성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부분이다. 연필로 그은 그리드 사이에 여러 가지 색을 채워 넣어 형태를 완성하는 그녀의 드로잉들은 일정한 규칙이 반복되는 뜨개질 작업과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색과 형태, 그리고 그리기 본연의 행위가 매우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렇듯 천성림의 작업은 현대미술의 여러 가지 요소들을 한데 아우르고 있다. 텍스트와 이미지, 개념성과 노동력, 이차원(평면)과 삼차원(입체), 그리기와 만들기 등 동시에 공존하기 힘든 요소들이 작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그녀만의 고유한 특징을 담지하고 있는 것이다. 종이라는 일상의 재료는 명상에 가까운 반복적인 노동을 통해 일정한 부피를 가진 예술작품이 되고, 그것은 기법상 공예적이지만 내용상 풍부한 지시물(reference)을 가지고 있는바 개념적이다. 그녀의 작품에 확정된 것이나 절대적인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보는 사람의 관점과 기준에 따라 전혀 다른 것이 될 수 있으며, 이러한 상대성과 모호함이야말로 그녀의 작품에서 변하지 않는 핵심일 것이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이라는 제목의 설치작품은 이러한 그녀의 작품세계를 대변한다. 제목에 쓰인 ‘site’와 ‘perception’이라는 단어의 알파벳 14글자를 각각 다른 색의 종이로 뜨개질하여 입체 형태로 만들고 그것들을 모아 천정에 설치한 이 작품은 그녀가 생각하는 한복의 색동저고리 색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그것은 실제 한복의 색과 일치하지 않으며, 한복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한복의 색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동일한 작품을 보고도 그들이 속한 환경이나 개인의 지각에 따라 전혀 다른 것으로 보일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렇듯 천성림의 작업은 바슐라르의 말처럼 “닫혀 있는 상자 속에는 언제나 열려 있는 상자 속에서 보다 더 많은 것들이 들어있음”을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고 하겠다. 이 글 또한 그 상자 속 내용물을 짐작하는 한 가지 시각일 뿐, 그녀의 작품을 대하는 사람들 저마다 다른 기대와 생각으로 그 상자를 풀어보아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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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son Salavon

Jason Salavon

Mar 02, 2007 – Apr 01, 2007

Jason Salavon
글. 신혜영 | 가인갤러리 큐레이터

"미디어는 메시지다(the medium is the message)", 미디어 이론가 마셜 맥루한의 선언과도 같은 이 말은 각종 미디어가 범람하는 오늘날 현대사회의 양태를 일찍이 예견한 것으로 유명하다. 1960년대 컬러TV 확산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팽배할 당시 맥루한은 인쇄매체의 일방적인 시각 의존성을 비판하고 현대의 전자매체가 감각의 균형과 함께 사회의 통합을 가져오는 우월한 매체임을 주장하였다. 나아가 모든 미디어를 인간의 심리적, 물리적 확장으로 보고 미디어가 전달하는 내용보다 그 내용이 어떤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느냐가 더 중요한 까닭에 ‘미디어 자체가 메시지가 된다’는 것이 그의 이론의 핵심적 내용이다. 이러한 맥루한의 주장은 오늘날 사회적 맥락에서뿐 아니라 예술 분야에서 역시 시의성을 갖는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미술의 미디어(매체) 역시 변화를 거듭해 왔다. 전통적인 회화와 조각 외에 사진과 비디오 아트가 주류 미술계에 등장한 데 이어 컴퓨터를 이용한 미디어 아트가 중요한 미술 매체로 자리매김했으며, 오늘날에 와서는 미디어 아트 안에서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선택에 따라 다양한 스펙트럼의 미디어 아트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공존하는 현대미술 안에서 어떠한 미디어를 사용하느냐는 무엇을 표현하느냐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 사실이다.
미국 출신 작가 제이슨 샐러번(Jason Salavon, 1970- )은 작업의 출발점이 되는 소재에서부터 실제 작업에 필요한 프로세스와 최종적으로 작품이 보이는 결과물의 형식까지 모두 ‘미디어’와 직결되어 있는 그야말로 “미디어가 곧 메시지”라는 맥루한의 말을 철저히 따르고 있는 미디어 아티스트다. 제이슨의 미디어 아트는 영화, 뮤직 비디오, 인터넷 사진, 잡지 사진 등 현대사회의 각종 미디어로부터 추출한 이미지의 데이터를 자신이 프로그래밍한 컴퓨터 소프트웨어에 입력하여 전혀 새로운 형태로 변형한 후, 디지털 사진이나 비디오 영상의 결과물로 선보이는 일련의 과정을 따르기 때문이다. 일단 그의 작업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그의 작품을 크게 세 가지 군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다수의 이미지들을 중첩시켜 하나의 평균적인 이미지로 만들어 내는 회화적 느낌의 디지털 사진들은 제이슨의 미디어 아트의 대표적인 작업군을 이룬다. 예컨대 'Homes for Sale'(1999, 2001, 2002) 연작은 특정 시기, 특정 지역의 부동산 업체의 카탈로그 안에서 비슷한 가격대의 단독주택 사진들 100여 장 이상을 컴퓨터 디지털 작업을 통해 포개어 얻어낸 평균의 이미지이다. 각각의 개별적인 이미지는 사라지고 희미한 윤곽만으로 어렴풋이 집의 형태를 짐작케 하는 이 시리즈는 언뜻 서정적인 추상화의 이미지를 연상케 하지만, 사실상의 작품 제작은 정확한 데이터와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의한 기계적 조작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또한 미국인의 삶에서 기념이 될 만한 네 가지 특별한 순간 - 결혼식, 크리스마스, 야구시합, 졸업식 - 을 담은 100장의 사진을 인터넷에서 뽑아 그것들을 같은 방식으로 중첩시켜 각각 한 장의 이미지로 합성한 '100 Special Moments'(2004) 연작이나 작가 자신의 고등학교 졸업앨범에서 모든 여학생과 남학생 졸업사진을 각각 하나로 모으고 어머니의 졸업앨범에서 같은 방식으로 제작한 'The Class of 1988'(1998), 'The Class of 1967'(1998), 10년 단위로 1960년대부터 1999년대까지의 ‘플레이보이’ 잡지에서 가운데 접히는 페이지에 나오는 사진 이미지들을 평균 낸 'Every Playboy Centerfold, The Decades'(2002) 등은 모두 개별적인 일상의 이미지들의 데이터를 컴퓨터 기술에 의해 중첩시켜 하나의 평균 이미지로 변형시킨 작업들이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에서 제이슨은 우리의 과거 경험이나 생활 속 사물들이 하나의 보편적인 이미지로 각인될 뿐 각각의 개별적인 이미지는 사라지고 만다는 사실을 암시적으로 보여줄 뿐 아니라, 미디어와 그로부터 나온 이미지들로 구조화된 이 세계에서 우리가 얼마나 그러한 현실에 무감각하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제이슨의 미디어 아트 중 또 하나의 주요한 작업군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연속되는 이미지들이 전체를 이루는 기존의 미디어 콘텐츠에서 그 각각의 이미지들의 평균색을 추출하여 그것들을 다시 전혀 새로운 시각적 형태로 재구성하는 방식의 작업들이다. 그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Emblem'(2003) 연작은 1970년대 유명 감독들의 상징적인 영화 세 편 - 스탠리 큐브릭의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2001: A Space Odyssey)'(1968), 마틴 스코시즈의 '택시 드라이버(Taxi Driver)'(1976), 프랜시스포드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1979) - 에서 필름 안에 연결된 수십만 개 프레임의 각각의 평균색을 추출하여 그것을 중심에서 바깥쪽으로 내러티브의 흐름에 따라 원형으로 재배치한 디지털 사진이다. 이 작품들은 영화 '타이타닉(Titanic)'(1997)의 336,247개 프레임의 평균색을 필름의 내러티브에 따라 왼쪽 상단에서부터 오른쪽 하단으로 가로의 직선으로 배치한 이전의 'The Top Grossing Film of All Time'(1997)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가로의 직선 형태가 영화의 러닝타임에 따라 지름의 길이가 결정되는 원형으로 변화된 차이를 보인다. 작품의 대상이 되는 영화들에서 우리는 제이슨이 자신의 작품 가운데 은연중에 미국 대중의 취향을 보여주고자 한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이밖에 유사한 방식으로 제작된 작품으로 미국 내에서 지금껏 가장 인기가 많았던 뮤직비디오 10편을 가지고 각 장면의 평균색을 일정한 두께의 가는 띠로 연결해 하나의 색면을 완성하는 프린트 작업인 'MTV's 10 Greatest Music Videos of All Time'(2001) 연작과 실재 방송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컴퓨터와 연결하여 수많은 띠로 된 원형체가 방송 신호에 따라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프로젝션으로 벽면에 투사하는 영상작업인 'Everything, All at Once'(2005) 등이 있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은 그가 작품제작의 도구와 결과물로써 미디어를 사용함은 물론 작품의 소재로 미국의 매스미디어를 이용하고 있음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끝으로 미국 사회의 특정 분야의 통계자료를 해체하여 전혀 다른 시각적 형태로 재구성하는 방식의 작업들을 제이슨의 또 하나의 작품군으로 묶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인 'Shoes, Domestic Production, 1960-1998'(2001)은 약 38년간 미국의 신발 산업을 31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그 데이터를 가상의 3차원 공간 안에 재배치한 영상과 사진 작업으로 색색의 빛의 점들은 우주를 배회하는 성운처럼 아름다운 형태를 띤다. 지극히 객관적인 데이터를 전혀 다른 신비한 형상의 이미지로 패턴화하는 작가 고유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한편 'Modern Lifestyle Mandala'(2001-2002) 연작의 경우는 미국 사회의 일상용품들을 최소의 단위로 삼아 복잡한 방사형의 만다라를 구성하는 사진작업이다. 란제리, 자동차, 가구, 꽃 등 미국 생활의 대표적인 네 종류의 상품군을 각각 작품의 소재로 하여 구성한 각기 조금씩 다른 만다라 안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각양각색의 상품 이미지들이 만다라의 안료 역할을 하고 있다. 작품의 전체적인 이미지 너머 그 이미지를 이루는 각각의 요소들을 통해 미국 사회의 소비성향과 재화의 면면을 알 수 있어 흥미롭다. 이밖에 10만개의 노란색 점을 1995년도 미국 내 부의 분배를 기준으로 화면에 분포시킨 '100,000 Yellow Dots'(1997)나 미국 전체 인구의 키와 몸무게 분포를 검은색 점으로 나타낸 'Height Distribution, Men&Women, US'(2001)와 'Weight istribution, Men&Women, US'(2001) 등의 디지털 프린트 작품들은 모두 미국사회의 통계적 데이터가 작가 고유의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해 새로운 조형적 이미지로 변형된 새로운 형식의 미디어 작업들이다.
제이슨은 이상의 세 가지 작품군과 그 밖에 기타 작품들에서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다른 컴퓨터 언어와 프로그램을 자유자재로 사용한다. 그러나 대학에서 컴퓨터를 부전공한 그에게 그것은 그리 어려운 수준의 기술이 아니며 경우에 따라 다른 전문기술자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화가나 조각가가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에 적합한 재료와 제작방식을 취하듯 그가 자신이 선택한 주제나 소재에 따라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컴퓨터를 이용하여 처음의 데이터와 전혀 다른 모습의 조형적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이다.
작가마다 자신의 작업에 맞는 매체를 선택하듯 헐리웃 영화, MTV 뮤직비디오, 인터넷 포르노 사진, 플레이보이 사진, 주택, 신발, 자동차, 가구 등 미국의 사회문화적 현실을 다루는 제이슨이 작품 제작에 컴퓨터 기술을 사용하고 그 결과물을 디지털 사진과 비디오 영상이라는 미디어를 통해 보여주는 것은 더없이 적절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제이슨이 다른 미디어 작가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철저히 미디어와 직결된 제작 방식을 따르면서도 그 결과물의 이미지들이 기존 미술사의 전통적인 맥락을 연상시킨다는 역설에 있다. 배경지식 없이 그의 작품을 맞닥뜨린 사람은 희미한 윤곽의 서정적 추상 이미지에서 터너나 리히터를 떠올리고, 수많은 얇은 선들로 이루어진 색면 작업에서 옵아트 계열의 회화를 떠올릴지언정 그것이 전적으로 컴퓨터에 의존한 미디어 아트임을 인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렇듯 고유한 컴퓨터 프로세스를 통해 동시대 사회문화와 미술사, 디지털 데이터와 회화적 이미지 사이 간극을 매우는 것에 제이슨 미디어 아트의 특별함이 있다. 미디어 과잉 시대에 우리를 둘러싼 여러 형태의 미디어와 거기에서 산출되는 이미지들을 가지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계속해서 새로운 미디어 실험을 해나가는 제이슨과 같은 예술가야말로 맥루한이 칭송할만한 자가 아닐까?


Jason Salavon
Text. Hyeyoung Shin | Curator of Gaain Gallery
Translation. Jawoon Kim

“The medium is the message.” Media theorist Marshall McLuhan is well known for this phrase that foresaw the condition of contemporary society which is inundated with various types of media. In the 1960s when negative responses to the proliferation of color televisions were surging forth, McLuhan criticized the unitary predominance of the visual brought about by print media and posited the superior ability of modern electronic media to balance sensitivity and to unify society. Furthermore, according to McLuhan, all forms of media are the psychological and physical extension of the human race and “the media itself becomes the message” since the content that media deliver is less important than which medium is used to deliver the content. This idea of McLuhan is pertinent to not only today’s social conditions but also art of our time. Artistic media have also undergone a consistent change while responding to the change of the times. Photography and video art have occupied the mainstream of the art scene and new media art, which employs computer technology, has established itself as one of major art forms. And even within the field of new media art, in these days one witnesses a flux of new media artworks whose diversity generated from various hardware and software. It is undeniable that the kind of medium to be used is as important as what to be expressed in the contemporary art scene in which all kinds of media prevail.
Jason Salavon (1970- ) is an American new media artist whose work thoroughly embodies McLuhan’s slogan of “the medium is the message” as its subject matter, method, and final form are directly connected to ‘media’. Jason samples images from various media of modern society such as feature films, music videos, the internet, and magazines, feeds those data into the self-authored computer software so as to alter the images into entirely different ones, and shows the results in the forms of digital photographs or video images. The division of his work into three parts will be helpful in one’s understanding of his art.
First, the main part of his work consists of digital photographs of painterliness in which a large number of images are overlapped into an averaged image. For example, his Homes for Sale (1999,2001,2002) series shows the averaged images obtained by collecting the photographs of over 100 houses with similar price range from the real estate catalogues of a certain period and a certain region in the U.S. and then amalgamating them by use of digital programming. The individual images are erased and only indistinct outlines vaguely indicate the shape of a house. These works remind one of lyrical abstract paintings at first glance, but in fact the actual production of the works solely depends on the mechanical operation of accurate data and computer programming. Besides this series, there are many other works of averaged images are that acquired by combining data sets of everyday images by means of computer technology: the 100 Special Moments (2004) series shows four composite images of four special moments in American life —the wedding, Christmas, the baseball game, and the graduation ceremony— and for each occasion 100 pictures are culled from the internet; in The Class of 1988 (1998) and The Class of 1967 (1998) the photos of all of students respectively from his high school graduation yearbook and from his mother’s are put together; and Every Playboy Centerfold, The Decades(2002) shows the averaged images of the centerfold pictures of every volume of Playboy published during each decade from 1960 through 1999. In these series of works Jason suggestively argues that our past experiences or everyday objects are perceived as one universal image and individual images are destined to be vanished and exposes how much one is numbed to reality in this world that is structured by media and the images from them. 
Another important part of Jason’s oeuvre is composed of the works in which the color-averaged images of existing media’s contents, which is consisted of continuous images in accordance with the passages of time, are recomposed into totally different visual images. A good example of this part is the ‘Emblem’ series. For this series, the representative films of three renowned film directors of the 1970s – 2001: A Space Odyssey (1968) by Stanley Kubrick, Taxi Driver (1976) by Martin Scorsese, and Apocalypse Now (1979) by Francis Ford Coppola - are used. In these digital photographs, each of hundreds of thousands of frames of each film is reduced to its average color and is reorganized in outwardly flowing concentric rings in accordance with the order of the narrative. These works are in the continuum of his previous work entitled ‘The Top Grossing Film of All Time,’ in which the average colors of 336,247 frames of Titanic (1997) are arranged conforming to the original sequence of the narrative in straight horizontal lines beginning at the upper left and moving to the lower right. The difference is the previous horizontal lines are replaced with concentric form whose diameter is decided by the running time of the film. One might detect Jason’s implicit intention to reveal the popular taste of the U. S. from the list of the films used in his works.  
A similar method is employed for other works. For the MTV’s 10 Greatest Music Videos of All Time (2001) series, 10 most popular music videos in the U. S. were used as material. The average colors of the scenes of each video are configured into thin lines of regular thickness and these lines are connected to form a color plane. Also, in Everything, All at Once (2005) TV programs are processed through a computer program so that numerous circles projected on the wall are changing in real-time in accordance with television signals. These works clearly testify that media is used as the means and in the outcome of his art-making and that he uses the mass media of the U. S. as his subject matter.
Finally, Jason also breaks down the statistical data of a specific social field of the U. S. so as to recompose them into entirely different visual images. For Shoes, Domestic Production, 1960-1998 (2001), the artist samples a data set by classifying the shoe industry of the U. S. for the duration of about 38 years into 31 categories and organizes the data in a virtual, three-dimensional space. The dots of various colors generate glorious scenes resembling nebulae. This work well exemplifies the artist’s distinctive method to formulate totally different, mysterious images from objective data. His Modern Lifestyle Mandala (2001-2002) series are photographic works in which everyday objects are used as minimum units so as to create a complex radial mandala. He chooses four kinds of goods that represent the American way of life such as lingerie, automobiles, furniture, and flowers for his mandalas. A close look at slightly different mandalas reveals that the images of various kinds of products function as pigments. It is interesting to observe that each element constituting the overall image exposes aspects of the consumer culture and products in the U. S. Among digital photographic works of Jason in which statistics of diverse social realms of the U. S. are transformed by the computer program designed by the artist into novel visual images are included as follows: 100,000 Yellow Dots (1997) in which 100,000 yellow dots are distributed in the picture plane on the basis of the distribution of wealth in the U. S.; Height Distribution, Men&Women, US (2001) and Weight Distribution, Men&Women, US (2001) in which black dots map the distributions of height and weight of the U. S. population.
For the works examined in three parts above and other works, Jason freely maneuvers different computer languages and programs. Having studied computer science in college, he uses such technology without much difficulty, and in some cases he is helped by other computer technicians. What is important is, however, that he produces visual images entirely different from original data by utilizing computer technology in the way that is most suitable for his theme or subject matter as a painter or a sculptor employs material and methods appropriate to what he or she intends to express.
It is natural for artists to use certain artistic mediums that most suit their artistic intention, and it is ideally appropriate for Jason who concerns with the social and cultural reality of the U. S. through materials such as Hollywood films, MTV music videos, pornographic pictures in the Internet, pictures in Playboy, houses, shoes, automobiles, and furniture to utilize computer technology in his art-making and to show the results in the forms of digital photography and video art. Moreover, what differentiates Jason from other new media artists lies in the fact that his artistic outcome reminds one of contexts of art history although his method is tightly linked with media. Without any information about his work, one would merely recall William Turner or Gerhard Richter in front of his lyrical abstract images with obscure outlines or Op art paintings before his color-field work consisting of numerous thin lines while not recognizing that the production of those works are entirely dependent on computer technology. The originality of Jason’s art lies in that the gaps between contemporary social culture and art history and between digital data and painterly images are bridged by his self-designed computer program. In the surplus of media, Jason continues to experiment in his own artistic way with various forms of media and the images delivered by them. McLuhan might be applauding at Jason’s artistic perfor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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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covering Seoul

Jan 16, 2007 – Feb 13, 2008

4인의 도시 발견과 재구성
글. 신혜영 | 가인갤러리 큐레이터


최근 미술계에 도시를 소재로 한 작가와 전시가 하나의 흐름으로 읽혀질 만큼 크게 늘어난 것이 사실이다. 주로 젊은 층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이 특징은 도시를 자신이 살아가는 하나의 환경으로서 바라보고 관심의 대상으로 삼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이전 세대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최근의 경향이기도 하다. 이는 예술의 소재를 다각도로 확보해내는 단순한 소재 확장의 측면을 넘어서, 그들이 몸담고 있는 이 도시의 고유한 특성과 문제를 예술의 범위 안으로 끌어와서 해석하고 제기할 수 있는 작가들의 역량의 증가로 파악해도 좋을 것이다. 이 전시는 단순히 도시의 풍경을 묘사한다거나 도시 사람들의 삶의 단편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사회학적으로 이 도시가 가진 근본적인 구조를 나름의 뚜렷한 시각과 표현방법으로 풀어내는 젊은 작가 4인의 전시다. (이 전시에서 도시는 서울로 한정된다. 그들 작품의 대상 전체가 서울인 것은 아니지만, 서울은 현재 그들이 살고 있는 도시이며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도시 구조의 특징을 가장 잘 담지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김정주, 방병상, 이문주, 정직성 이 네 사람의 작품을 하나의 전시 안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이들은 자신이 사는 도시 서울의 곳곳을 직접 돌아다니며 절감한 바, 우리나라의 도시화 혹은 근대화가 불과 삼사십년 안에 급속도로 이루어진 데서 오는 여러 가지 구조적인 모순과 문제점에 천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다른 하나는, 그러한 사실들을 단순히 기록하는 단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독특한 자신들의 조형언어로 변형하여 풀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사실이 이들 네 사람이 가진 각기 다른 음색의 목소리를 한 데 모아 구성진 화음으로 엮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작가의 면면을 살펴보자. 먼저 정직성은 작품 활동 외에 온라인상에 플라잉넷(www.flyingnet.org)이라는 도시정보 네트워크 웹진을 운영하고, 자신을 포함한 9명의 작가를 선정해 <장면들-도시회화展>이라는 제목의 도시에 관한 전시를 기획할 만큼 도시 연구에 전력을 쏟고 있는 대표적인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작가 정직성’에게만 초점을 맞춰보자면, 그녀는 도시의 주택가 골목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형태의 구조물들을 관찰하고 파악한 뒤, 그것을 재구성하여 새로운 형태의 화면을 만들어 낸다. 그녀의 관찰대상이 되는 곳은 신림동, 후암동, 삼청동, 망원동 등 주로 유사한 구조물이 밀집해 있는 주거지역이다. 이러한 주택가의 구조물들은 제한된 건축법 아래 지어져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골목구조, 가옥배치, 보수와 증축의 흔적 등 사람들이 필요에 따라 만들어간 조금씩 다른 모습들이 흥미롭게 자리하고 있다. 그녀는 이처럼 미묘한 반복과 차이를 지닌 도시 주택가의 건축적 요소들을 캔버스 앞에서 다시 상기하여 원근법에 어긋나는 마치 입체파의 그것처럼 다시점(多視點)으로 화면상에 재구축한다. 겹겹이 들어선 수십 개의 집들은 유사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형태를 띠며 계단, 난간, 벽, 지붕 등 여러 가지 주택 구조물의 요소들을 통해 서로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화면을 이룬다. 이번 전시에서 그녀의 이전 회색 연립주택 시리즈는 시멘트와 함께 우리나라 근대화의 대표적 건축 재료인 붉은 벽돌을 연상케 하는 붉은색의 전면화(全面化)로 새롭게 변환되어 향후 작업의 발전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 정직성이 우리나라의 급속한 도시화 과정에서 특정 도시로 인구와 자원이 몰려드는 과잉도시화로 인해 주거의밀집현상을 보이는 지역들을 주로 다루었다면, 이문주는 그러한 도시화 과정에서 생겨난 지역들 가운데 낙후되었다거나 효용성이 없다는 국가의 일방적인 판단 아래 무차별적으로 파괴되고 재개발되는 지역들을 작업의 소재로 삼는다. 1997년 이래 계속되어 온 그녀의 도시에 대한 작업은 2000년부터 2005년까지 미국에 거주하는 동안 보스톤, 디트로이트, 브룩클린 등의 도시를 대상으로 더욱 심화되어 최근 서울에 관한 작업까지 발전되어 왔다. 이문주가 그리는 이들 재개발지역의 모습은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인 대량생산과 효용성의 원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바, 도시의 건축물마저도 하나의 상품처럼 생산과 소비의 과정을 되풀이 하고 있음을 그 현장에 서서 우리에게 적나라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회화가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사회학적인 문제의식 제기라는 주제적 측면에 머물지 않고, 그것을 다양한 제작 기법으로 재구성하는 조형적 측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그녀는 실제 재개발 현장을 다니며 사진에 담아 온 특정 공간을 작업의 기초로 하되 한 작품 안에서 세부적인 장면들은 그 주변을 찍은 수십 장의 다른 사진에서 가지고 와서 재조합하거나 상상으로 하나의 화면 안에 새롭게 구성해낸다. 그녀가 사용하는 재료 역시 이러한 제작 기법과 맥을 같이 한다. 주로 대형작업을 선호하는 그녀의 작품 안에는 표현할 대상에 따라 다르게 선택된 유채 물감, 아크릴 물감, 실크스크린, 사진을 확대한 복사물 콜라주 등이 여러 겹으로 중첩되어 하나의 화면으로 완성된다. 이렇게 완성된 이문주의 대형회화는 마치 우리가 재개발 현장에 와 있는 착각이 들 정도의 생생함을 주지만 동시에 어딘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듯한 생경함을 느끼게 하는 독특함이 있다. 회화의 정직성, 이문주에 이어 방병상과 김정주는 사진을 매체로 도시의 구조를 다루는 작가들이다. 먼저 방병상은 도시를 걷는 여인들의 신체 일부를 클로즈업한 ‘Red Road’와 ‘Flower’(2000) 등에서부터 시작해 오늘날 도시와 도시에서 살아가는 군중의 모습을 고유한 시각으로 담아낸 ‘Walking in a Strange City’, ‘Looking at the Sunny-Side’, ‘In Green Heaven’등의 사진 연작을 통해 그 누구보다 도시라는 주제에 일관된 관심으로 매달려 온 사진작가다. 그의 사진에 등장하는 소재는 거리, 공원, 수영장, 고궁 등 특정한 도시의 공간과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지만, 그것을 통해서 그가 진정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공간이 도시에 생겨나게 된 이유와 그것들이 실제로 가지는 기능이나 의미의 아이러니 같은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선보이는 ‘She is-Summer’ 시리즈는  공원의 나무, 돌, 폭포 등 도시 속 자연 이미지를 재구성한 것이다. 언뜻 단순한 풍경사진 - 그의 사진 중 처음으로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 으로 보이는 이 사진들을 통해 작가는 단시간 내에 조성된 서울의 공원에는 자연마저도 사실상 자연이 아닌 인공물임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러한 주제에 맞추어 그는 종전의 ‘스트레이트 포토’가 아닌 조작과 보정을 의도적으로 강조한 ‘메이킹 포토’를 시도했다. 피사체와 카메라의 거리를 측정하여 촬영 지점을 이동하는 이동시점과 촬영의 각도를 달리 하는 다각시점으로 여러 장의 사진을 찍고 그것들을 후반 작업에서 스캔하여 디지털 작업으로 조합하여 한 장의 사진으로 모은다. 이러한 제작기법으로 어렵게 얻어진 그의 ‘She is-Summer’ 시리즈에서 인공적인 자연물들은 각도와 시점을 달리하여 변형되거나 반복됨으로써 새로운 인공물로 태어나는 셈이다. 김정주는 방병상과 달리 최종적인 매체를 사진으로 삼고는 있지만 그에 앞서 조형물을 제작하는 중요한 사전 작업을 거친다. 그녀는 스테이플러 철침으로 고층빌딩, 고가도로, 교량 등  각각의 도시 구조물 미니어처를 만들고, 그것들을 집적하여 하나의 거대한 도시 미니어처를 만든 후 그것의 부분이나 전체를 사진으로 찍어 전혀 다른 느낌의 도시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그녀의 사진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설명을 듣기 전에는 그 재료나 크기, 제작과정을 쉽게 짐작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차가운 금속성의 느낌 때문에 언뜻 그 장면들이 가상 혹은 미래의 공간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도시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공간이며 스스로 공간에 따라 자신의 감정과 사고가 지배된다”고 말하는 작가에게 사진 속 공간은 그녀가 스무 해 넘도록 살아 온 서울의 모습임에 틀림없다. 물론, 공간의 구성과 배치 등에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되었을 테지만, 그녀가 주로 다루고 있는 소재들은 1960년대 이후 성장 위주의 도시개발을 대표하는 무개성한 고층빌딩, 건설현장의 타워크레인, 교통난 해결을 위한 고가도로와 교량 등 도시 서울의 현재 모습을 이루고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현상을 현상 그대로 보여주지 않고 다르게 변형하고 재해석할 수 있는 예술적 능력이 이제 대학을 막 졸업한 그녀에게 작가로서의 가능성을 기대하게끔 한다.  이들 네 사람이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도시의 풍경을 아름답게만 담아내는 작가였다면 이 전시는 기획되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또한 이들이 사회학적으로 도시 서울이 지닌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만 힘쓰는 사회참여적인 작가였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 전시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으로서 이 도시 서울이 지닌 구조상의 모순을 몸으로 체득하고 그것을 자신이 가장 적합하다고 여기는 조형수단을 통해 재구성하는, 이른바 내용과 형식이 균형을 이루는 젊은 작가 4인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 그 의의를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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