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ARTIST

  • Jungjoo Kim
    김정주


    김정주는 스테이플러 철침을 쌓아 건물 모형을 만든 뒤 이를 사진으로 찍는 작업을 해온 작가로, 그녀의 작품은 상상력을 바탕으로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완성되는 노동집약적인 과정을 특징으로 한다.  

PRESS RELEASE

Undertone
2011. 5. 19 (목) - 6. 18 (토)

스테이플러 철침으로 실측된 사물의 세계
김정주의 개인전 <함의>가 오는 5월 19일부터 6월 18일까지 평창동 가인갤러리에서 열립니다. 김정주는 2006년 <더 시티(The City)>, 2008년 <매직랜드(Magic Land)>, 2009년 <투명한 벽(Transparents Walls)> 등 세 번의 개인전과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젊은 작가로, 이번 전시에서는 그녀의 새로운 사진 연작과 영상 작업, 드로잉이 선보일 예정입니다.
김정주는 첫 번째 연작인 <더 시티>에서 빌딩숲, 고가도로, 대형교각 등 도시의 수직적 이미지를 강조했다면, 두 번째 연작 <매직랜드>에서는 첨탑으로 둘러싸인 성과 같은 수직적 구조물과 더불어 롤러코스터, 회전열차 등 곡선 형태의 놀이 기구가 혼재하는 ‘가상의 도시’를 연출함으로써 한층 풍부하고 발전된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처럼 두 연작에서 보여준 수직적 쌓기의 본능은 <투명한 벽>이라는 수평적 탐험을 지나 공간 속에 놓인 다양한 사물들에게로 옮겨가게 되는데, 전시 <함의>는 이 과정에 위치합니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이번 전시에서도 스테이플러 철침을 사용하여 조각물을 만들고 그것을 다양한 각도로 촬영하여 최종적인 결과물로 사진을 제시하는 김정주 만의 작업 방식은 이어집니다. 다만, ‘가상의 도시’ 에서 컴퓨터 매트릭스가 만들어내는 또 다른 가상의 공간으로 작가의 관심은 확장되었고, ‘가상’보다는 ‘실측’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했음을 주목할 수 있습니다. 작가는 가상의 빌딩이나 첨탑이 아니라 사과와 오렌지, 병, 찻잔과 같은 실제의 물리적 사물들을 실측하고, 이 사물들이 공간 속에 놓이는 구도와 구성의 묘미를 화면에 담아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렌더링 과정에서 만들어진 사과 역시 스테이플러 철침의 실제 사이즈를 컴퓨터에 입력한 후 프로그램이 집적하고 구축한 것으로, 작가가 손으로 직접 만든 후 형광녹색을 칠해서 촬영한 사과와의 비교는 매우 흥미로운 시도로 보입니다.
그런데 김정주는 왜 하필 스테이플러 철침을 재료로 사용하고, 3차원의 조각을 만든 후 사진과 영상 등 2차원의 화면으로 이를 재구성하며, 세잔의 ‘사과와 오렌지’를 참조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이번 전시의 숨은 의미 찾기 즉 ‘함의’라 할 수 있습니다. 수학 시간에 그래프와 수식의 상관관계를 묻는 질문에서, 3차원의 아그리파 조각상을 2차원의 화면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투시원근법을 따르지 않은 세잔의 구성과 구도를 보면서, 김정주는 공간과의 관계를, 형태가 가진 의미를, 사물의 기저에 감추어진 함의를 찾아 나선 것입니다. 과거의 시간 속에서 길어 올인 이 미결의 문제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이하는 과정, 이것이 바로 이번 전시 <함의>인 것입니다.
전시장 한 켠에는 김정주의 다음 전시를 위한 아이디어 노트이자 예고편이 함께 마련됩니다. 서울이라는 도시를 떠나 프랑스의 한 시골마을에서 단서를 얻은 김정주의 작품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엿볼 수 있는 이번 전시에, 기자님들의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PUBLICATIONS

  • Jungjoo Kim l Magic Land

    2008. Gaain Gallery
    20 Pages, Full Color Illustrations

    Pric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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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비하인드 스토리 _ 함의
글. 윤형주ㅣ가인갤러리 큐레이터

“이번 작업은 나에게 던져진 물음과도 같은 공간에 대한, 형태가 가진 의미에 대한, 그 기저에 감추어진 함의를 찾는 일이었다. 모든 것은 관계에 대한 것, 그들의 좌표에 관한 것인지도 모른다.” - 작가노트 중에서

문제 1. 그래프와 수식의 상관관계를 구하라.
정방형의 교실 안 직사각형 책상에 앉아, 칠판에 그려진 함수 그래프와 수학기호들을 아리송한 표정으로 번갈아 쳐다보는 한 소녀가 있다. ‘좌표평면 위 저 곡선’과 ‘y=x²+2x+1’이라는 수식이 어떻게 같다는 말인가. 골똘히 생각해도 답은 늘 틀렸고, 그럴 때마다 해결방법과 정답이 주어졌다. 그러나 소녀는 의심스러웠다. 단지 ‘틀렸다’는 통보를 받았을 뿐 자신의 손으로 양자의 관계를 검증해 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수학자 피타고라스에게 만물의 근원은 ‘수’였고, 이를 탐구하기 위한 수단이 ‘숫자’였다면, 김정주에게 그것은 ‘공간과의 관계’와 ‘스테이플러 철침’이다. 나를 둘러싼 세계는 무엇이고, 나는 그 세계와 무슨 관계를 갖는가. 그런데, 문제에 앞서, ‘왜 하필 스테이플러 철침’인가.
“반짝이는 차가운 물성이 손에 와 닿는 감촉이 좋아요. 유닛을 하나하나 이어 붙여가며 집적하는 과정도 재밌고요.”
김정주의 대답이 만족스럽지 않다거나 혹은 ‘틀렸다’고 판단된다면, 질문을 바꾸어보겠다. 수학자들은 세계를 탐구하기 위해서 ‘왜 하필 숫자나 수학기호들’을 사용하는가. 왜 아라비아 숫자 ‘3’을, 집합을 표시하는 기호 ‘⊂’를, 무한대를 표시하는 기호 ‘∞’를 사용하는가.
피타고라스가 물질 너머의 순수한 형식적 원리인 수로 세계의 근원을 설명하려 했다면, 김정주는 스테이플러 철침을 일일이 이어 붙여 세계를 측정하고 검증한다.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TV를 켜기 위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리모컨처럼, 김정주에게 그것은 나를 둘러싼 세계를 깨워 살아나게 하는 도구이자, 감각의 확장인 것이다.
또한 그것은 김정주가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적인 즐거움일 뿐만 아니라 세계를 직접 경험하게 하는 촉각의 기쁨을 선사한다. 반짝이는 작은 유닛을 만지작거리며 작가가 체험했을 세계는 자신의 두 발로 걸어 조선의 영토를 측량한 김정호의 그것과 닮았다. 자신이 직접 세계를 재어보려는 욕망이 김정주에게 스테이플러 철침을 만지게 한 것이다.

문제 2. 아그리파(Agrippa) 조각상을 그리시오.
스케치북을 세운다. 세로로 4등분 한 후 한쪽 눈을 감고 연필을 이용해 비율을 측정한다. 큰 면을 분할해서 형태를 잡되, 직선에서 곡선으로 밀도를 높이면서 화면에 옮긴다. 이때 명암의 변화를 살펴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 몇 차례의 ‘제작과 조응(making and matching)’의 시간이 흘렀고, 그림이 완성되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정해진 순서를 따랐음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실감(實感)이 나지 않는다. 도대체 저 앞에 놓인 아그리파 조각이 내가 그린 스케치북 속 이미지와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어떻게 하면 3차원의 대상을 2차원의 화면에 담아낼 수 있을까. ‘입체’와 ‘평면’ 사이의 이러한 간극을 극복하는 문제는 사진이 발명되기 전 모든 화가들의 고민이었고, 투시원근법의 발명은 이를 해결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사실상 우리의 지각은 눈에 들어오는 혼란스러운 시각적 단편들을 뒤늦게 하나의 구조로 정리할 뿐이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있는 그대로의 지각에 따라 자신이 받아들인 사물을 화면에 재구성한 세잔의 ‘체험된 원근법’은 이후 많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한편, 19세기 무렵 탄생한 사진은 이러한 회화의 한계를 광학적 방법으로 극복하고 실재와 똑같이 복제하는 획기적인 고안물로 여겨졌다. 그러나 사진 역시, 사물의 표면을 반사하는 빛의 기록일 뿐 사람의 실제 지각과는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더 이상 공간을 평면에 재현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사라졌다.
화실의 조각상 앞에서 3차원을 2차원으로 전환할 때 일어나는 ‘변형’이라는 미술사의 오랜 문제에 맞닥뜨린 김정주는 무엇보다도 우선 ‘감’이 잡히질 않았다고 한다. 수학문제 앞에서 만큼의 암담함은 아니지만 여전히 ‘실감’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김정주는 이를 직접 검증해 보기로 한다. ‘3차원의 사물을 직접 만든 후에 사진으로 촬영해보면 어떻게 될까?’ 김정주의 작업에서 조각과 사진이라는 두 장르의 혼용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도시를 모티브로 가상의 세계를 구축하고 탐구했던 <더 시티>, <매직랜드>를 거치면서 김정주의 관심은 인간의 끊임없는 구축성과 욕망이라는 큰 틀을 견지한 채, 또 다른 가상의 공간, 컴퓨터 매트릭스가 만들어내는 공간으로 확장된다. 3차원의 공간이 사진기에 의해 사진이라는 2차원의 이미지로 바뀌어 기록되는 것처럼, 컴퓨터 속 가상공간이 렌더링이라는 과정을 통해 2차원의 이미지로 바뀌는 과정이 흥미로웠던 것이다.
이때 스테이플러 철침으로 집적된 오브제와 그것이 놓인 공간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장면을 다양한 카메라 워크로 연출한다는 측면에서는 동일하지만, 그러나 김정주는 이번 작업에서의 무게중심을 ‘가상’보다는 ‘실측’으로 이동한다. 사과와 오렌지는 그리고 찻잔과 병과 접시는 가상의 빌딩이나 첨탑이 아니라 실제의 물리적 사물들을 실측한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렌더링 과정에서 탄생한 사과 역시 스테이플러 철침의 실제 사이즈를 컴퓨터에 입력한 후 프로그램이 집적하고 구축한 장면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것은 작가가 손으로 직접 만든 후 형광녹색을 칠해서 사진으로 촬영한 ‘사과’와 컴퓨터 프로그램이 렌더링을 통해 만들어낸 ‘사과’가 보여주는 이미지의 대조(contrast)와 유비(analogy)이며, 특히 눈이 좋은 관람자라면 영상작업에서 숨겨진 ‘함의’ 한 가지를 발견하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문제 3. 왜 세잔인가.
어린 시절 종종 놀러가곤 했던 이모네 가게. 나는 항상 한 쪽 벽면에 걸린 큰 그림에 눈길이 갔다. 회색이 도는 푸른빛의 무언가가 화면을 크게 자르던 그 그림에서 나는 단단하면서도 면면들이 숨 쉬는 마티에르를 보며 골똘히 이런 생각을 했다.
‘이 그림은 아름답지만 구도가 좀 이상하다. 이 부분이 좀 더 작아야 하지 않을까.’
꽤 나중에 나는 그때 그 그림을 그린 화가가 화면 속 구도와 구성의 형식을 치열하게 실험하며 현대 미술의 지평을 열었던 폴 세잔(Paul Cézanne)임을 알게 되었다.
김정주의 이번 전시는 어린 시절 보았던 세잔의 그림이 던져준 ‘구도와 구성의 문제’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보려는 시도에서 출발했는지도 모른다. 전작 <더 시티>와 <매직랜드>에서 보여준 수직적 쌓기의 본능은 <투명한 벽>이라는 수평적 탐험을 지나 공간 속에 놓인 다양한 사물들에게로 옮겨갔다. 이 과정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수순처럼 보일 수는 있다고 해도 그 사물이 반드시 세잔의 ‘사과와 오렌지’일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세잔의 정물화는 부유하는 빛을 쫒느라 놓쳐버린 인상주의자들의 사물로부터 견고함과 깊이를 되찾게 해주었음은 물론, 산만하지만 실제인 지각의 모호함을 인정함으로써 ‘고정된 정신의 눈이 아니라 움직이는 육체의 안구’로 사물을 바라보게 했다. 특히, 김정주에게 영감을 준 것은 화면에서의 구성과 구도에 대한 세잔의 집요한 탐구였고, 이를 따라 실현해보는 과정에서 김정주만의 방식과 재해석을 거친 다양한 작품들이 완성되었다. ‘사과와 오렌지’ 3연작은 테이블 보 아래로 무너져 내리는 사물들의 구성이 주는 묘미와 함께 배경과 사물의 뚜렷한 대비감을 주고, ‘죽은 자연’은 스테이플러 철침 격자들 간의 팽팽한 긴장감과 밀도를 잘 드러내고 있으며, 이에 반해 ‘모서리와 사과’는 회화적인 드로잉을 연상시키는데, 천을 가까이 당기고 조도를 조절해 보다 평면적인 구도를 설정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전시 <함의>는 한 마디로 작가 김정주가 과거의 시간 속에서 길어 올린 미결의 문제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이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문제가 제시되고, 그 문제를 풀기 위한 단서들을 찾아 과정을 따라가면 전시도 끝이 난다. 중요한 것은 답이 무엇인가가 아니라 그 답을 어떻게 얻었는가 이기 때문이다.

To Be Continued...
물리적인 세계의 전부처럼 여겨지던 서울이라는 도시를 떠나 프랑스 북동부 시골마을 샹파뉴(Champagne)에서 지내는 동안 김정주에게는 또 다시 혼돈이 찾아왔다. 여기는 어디고, 나는 누구인가.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동시에 공존하는 그 시골마을에서 김정주는 자신이 떠나온 공간 서울이 과연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김정주에게 자신을 둘러싼 물리적인 세계가 달라진다는 것은 또 하나의 풀어야 할 문제가 주어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전시장 한 켠은 따라서, 새로운 문제풀이를 위해 마련된 김정주의 아이디어 노트이자, 아직 측정해보지 않은 세계를 담기 위한 예고편이다. 사진 속 거미줄을 닮은 반짝이는 작은 체인은 왜 그곳에 걸려 있는가. ‘9 x 9’ 라는 이름의 구성 실험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리고 펜 드로잉 두 점은 왜 그곳에 함께 놓였어야만 하는가. 김정주의 다음 전시가 기다려지는 이유는 이 예고편에 담겨 있는 그 ‘함의’가 무엇인지 궁금하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