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ARTIST

  • Inhyeon Lee
    이인현


    이인현은 가공하지 않은 캔버스에 단색 유채물감만을 사용하여 간결한 화면을 구성하는 작가로서, 그의 작품에서 물감이 서서히 옅어지거나 진해지는 색의 번짐 효과는 그 자체로 어떤 물리적인 지층을 연상케 한다.

PRESS RELEASE

Lee Inhyeon 
2006. 9. 14 (목) – 10. 15 (일)

가인갤러리의 이번 전시는 가공하지 않는 캔버스에 청색 유채물감을 사용하여 극히 간결한 화면을 만들어 내는 서양화가 이인현의 개인전입니다. 이번 전시는 1993년 작가의 첫 한국 개인전과 이후 두 차례의 개인전을 통해 그의 작업이 한국 미술계에 큰 반향을 일으키는데 기여했던 본 갤러리에서 십 여년 만에 다시 개최하는 전시로 본 갤러리로서는 감회가 더욱 새롭습니다. 작가로서는 2003년 노화랑 전시 이후 삼년 만에 갖는 개인전으로, 그는 이번 전시에서 ‘회화의 지층’이라는 동일한 제목 아래 그 기법과 양상이 더욱 풍부해지고 다양해진 작품들을 선보에게 될 것입니다.
물감이 서서히 옅어 지거나 진해지는 색의 번짐 효과가 그 자체로 어떤 물리적인 지층을 연상케 하는 그의 '회화의 지층' 작품들은 넓은 캔버스 안에 일직선으로 번져 펼쳐지거나 점의 형태로 찍힌 물감 자국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극히 미니멀한 외관을 통해 우리를 보다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합니다. 대형 캔버스에 무심한 듯 번진 물감자국이 때로는 숲이 되고 때로는 물에 비친 숲 그림자가 되며, 물감의 번짐이 없는 흰 캔버스는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잔잔한 물결조차 허락치 않는 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자유로운 상상이 허락되는 것은 특정화된 일루전이 존재하지 않고 물성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미지가 드러나는 이인현 회화의 고유한 특징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그의 회화는 관람자를 각자 나름의 상상의 세계로 이끔과 동시에 관람자에게 보다 적극적인 관람태도를 요구합니다. 물감의 번짐 효과가 캔버스의 정면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캔버스의 정면 틀을 벗어나 측면까지 이어짐으로써 관람자가 그림에서 물러났다 가까이 다가갔다를 반복하면서 더 적극적으로 감상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전통적인 미술사 안에서 규정된 회화에 대한 정의를 뒤집는 작가의 비판적인 시각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이러한 기존의 전통에 대한 그의 반격은 제작기법과 재료사용에서 잘 드러납니다. 그는 캔버스에 유성물감을 사용하면서도 그것을 묽게 용해하여 짧은 시간 안에 균질하게 펴 바르거나 순간적으로 내려놓아 번지게 함으로써 유화가 가지고 있는 두터운 마티에르를 피하고 수성의 느낌이 나게끔 합니다. 또한 그는 물감을 캔버스에 옮기는 과정에서 회화의 상징과도 같은 붓의 사용을 자제하고 막대에 캔버스 천을 씌우고 물감을 적셔 붓처럼 쓰거나 반대로 물감이 칠해진 넓은 캔버스에 작은 캔버스의 모서리를 대어 찍어내기도 합니다.
이 모든 시도는 예술작품에 대한 물신화와 예술가의 권위(authority)에 저항하는 작가의 의지에서 기인합니다. 나름의 계산을 거쳐 제작에 들어간 이후 그는 일체의 상념과 욕심을 거둔 채 숨을 죽이고 동일한 시간과 긴장감으로 붓칠을 하고 순간적으로 물감을 내려놓습니다. 작가는 오직 캔버스와 물감을 만나게 하는 일에만 몰두하는 것입니다.
3년 만에 열리는 이번 개인전에서 '회화의 지층'은 보다 풍부한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단순히 기존의  '회화의 지층'의 계보를 잇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가 작업해 온 그간의 여러 제작 방법을 망라하여 그야말로 다채로운 '회화의 지층'을 보여줍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단색화면과 모서리에 가로선으로 물감이 번져 나간 화면을 맞대어 완성한 두 폭의 회화 작업을 중심으로 표면에 물감을 스치는 가벼운 '면' 작업, 그가 새롭게 선보이는 기법으로 제작된 '점' 작업, 막대형의 캔버스에 물감을 적셔 넓은 캔버스의 아래 모서리에 갖다 대는 방식의 대화면 작업 등 총 20여 점이 출품됩니다.
하늘색이 더욱 푸르고 깊어진 이 가을에 열리는 청색 회화의 향연에 언론사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협조 부탁드립니다.


PUBLIC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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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회화의 지층'이라는 텍스트
글. 신혜영 I 가인갤러리 큐레이터

번짐과 색의 계조(階調, gradation)를 중심으로 가공하지 않은 캔버스에 단색 유채물감을 사용하여 극히 간결한 화면을 완성하는 이인현의 회화는 ‘회화의 지층(L’épistémè of Painting)’이라는 동일한 제목으로 십여 년 이상 지속되어 왔다. 물감이 캔버스에 스며들어 번져 나오는 양태와 서서히 옅어지거나 진해지는 색의 계조는 그 자체 ‘회화의 지층’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그가 사용하고 있는 ‘지층’이라는 어휘는 단지 그러한 외형상의 특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지식의 고고학"에서 미셸 푸코가 말한 ‘에피스테메’ 개념을 염두하여 붙여진 것임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푸코는 그 시대 모든 담론의 배경이 되는 인식의 구조가 있으며 그것이 땅의 지층처럼 시대별로 구분됨을 주장하고, 그러한 지층을 가리켜 ‘에피스테메’라 칭했다. 따라서 이인현이 그의 회화작업 전반을 ‘회화의 지층’으로 통칭하는 것은 자신의 회화가 단순한 감상의 대상으로서 하나의 예술작품이기 보다는 이 시대 모든 회화를 아우르는 기본 원리, 즉 현대회화의 ‘에피스테메’를 탐구하는 일련의 시도로서 읽혀지기를 바라는 작가의 의지 표현으로 보아도 무방할 듯 하다. 십여 년 이상 계속되어 온 그의 '회화의 지층' 연작이 회화의 물성과 이미지, 정면과 측면, 평면성과 즉물성 등 회화의 본질과 그 존재 방식에 관한 연구임을 고려할 때, 이 제목은 작가 자신의 일관된 예술태도를 피력하기에 꽤 적절한 명칭임에 틀림없다.
처음 작품을 발표한 1990년대 초반부터 2003년 최근 전시에 이르기까지 이인현의 '회화의 지층'을 둘러싼 다양하고 심도 있는 비평과 논의들이 있어 왔다. 발표초기부터 미술계 평단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그의 회화는 한편으로는 바로 이러한 점(이인현=회화의 지층) 때문에 매번 일종의 유명론적(唯名論的) 증명에 시달려 온 것도 사실이다.  그들은 뜬금없이 ‘어느 작품이 회화의 지층이냐’고 찾기도 하고, 나름대로 ‘회화의 지층을 보았다‘는 행복한 결론에 도달하기도 한다. 또는 ’언제까지 회화의 지층이 계속될 것인가‘ 자못 진지하게 궁금해 하기도 하는데, 이런 반응은 대부분 이미지의 결핍에 따른 금단증상일 경우가 많다. 이는 언제나 새로운 것을 요구하고 이전보다 더 발전된 모습을 추구하는 목적론적인 모더니즘의 단선적 역사관에 따른 것이며, 필자는 그러한 근대적 사고에 대한 거부야 말로 이인현의 회화 전반을 관통하고 있는 중심 테제라고 본다.
이인현의 '회화의 지층'은 전통 회화의 역사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던 미술 전반의문제들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기존 회화의 논의에서 이분법으로 구조화되어 있던 것들에 반기를 드는 ‘회화에 관한 회화’다. 그는 기존 미술사의 논의에서 양립할 수 없었던 것들을 그 경계선상에서 자신만의 역설적인 논법으로 양립 가능하게 만든다.
먼저 살펴볼 것은 그간 '회화의 지층'을 둘러싼 논의들 가운데 가장 자주 거론되었던 정면과 측면에 관한 이인현의 입장이다. 그는 정면 중심의 회화의 역사에서 가려져 있던 측면의 위치를 부각시키기고자 했다. 그의 회화에 공통된 10cm 폭의 측면은 물감이 스며드는 모습을 통해 회화의 물질적 본성과 그 생성과정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화면이다. 그의 회화에서 측면은 정면과 함께 감상되어야 할 화면의 연장이자, 물질이 만들어내는 회화의 깊이를 물리적으로 보여주는 – 전통적 회화가 삼차원 환영을 통해 회화의 깊이를 추구하는 것과 달리 - 효과적인 방편이다. 뿐만 아니라 때로는 제작 당시 측면이었던 것이 보여질 때는 정면이 되기도 하며, 심지어 면과 면 사이의 모서리가 화면의 중심이 되기도 한다. 이렇듯 그에게 회화의 화면은 정면과 측면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을 떠나 언제든 서로의 자리를 바꿀 수 있는 가역적이며 고정된 중심이 부재한 유동적인 성질의 것이다.
정면과 측면의 유동적 관계는 물성과 이미지로 이어진다. 그의 회화에서 정면과 측면이 정해진 주종의 관계가 아니듯 기존 회화에서 양립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던 물성과 일루전은 '회화의 지층'에서 동전의 양면과도 같이 분리 불가능한 것이 된다. 균질하게 칠해진 단색 화면과 물감이 번진 화면 모두는 그 자체 확연히 물성을 드러내지만, 그와 동시에 푸른 물감이 번져나간 형상과 그것이 단색면과 병치되어 보여주는 이미지는 수평선을 사이에 둔 강가 풍경이거나 바다 위에 떠있는 섬들의 모습과 같이 구체적인 일루전을 드러낸다. 점 작업의 경우에도 캔버스와 물감의 물성을 하나의 화면 안에서 잘 드러내면서도 보는 사람에 따라 내리는 빗방울이나 바다 위에 떠 있는 고깃배의 불빛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렇듯 이인현의 회화에서 일루전은 작가가 의도한 자기 표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물질의 성질 자체에서 비롯된 우연적 효과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그는 '회화의 지층' 안에서 물성과 이미지 간의 뚜렷한 경계를 흐리며 그 사이에서 절묘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캔버스와 물감이라는 모더니즘 회화의 절대적 본질을 견지한 채 바로 그 자체의 물성으로부터 모더니즘 회화가 거부한 일루전을 탄생시키는 역설적인 방법으로 말이다.
'회화의 지층'은 제작 기법과 재료 사용에서도 전통적 회화의 그것을 벗어난 고유의 역설을 담지하고 있다. 그는 캔버스에 유성물감을 사용하면서도 그것을 묽게 용해하여 짧은 시간 안에 균질하게 펴바르거나 순간적으로 내려놓아 번지게 함으로써 유화가 가지고 있는 두터운 마티에르를 피하고 수성의 느낌이 나게끔 한다. 이는 유화의 재료를 사용해 유화가 아닌 듯 보이게 하는 그만의 전략이다. 또한 그는 물감을 캔버스에 옮기는 과정에서 회화의 상징과도 같은 붓의 사용을 자제한다. 캔버스를 감싼 막대에 물감을 적셔 붓처럼 쓰거나 캔버스 천 자체를 붓대신 사용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며, 실제 붓을 사용할 때 조차 붓을 캔버스에 대지 않고 그저 물감을 옮기는 도구로써 사용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는 ‘붓질(brushstroke)’에 대한 전통적인 회화의 과도한 의미부여를 의도적으로 비틀고자 함이다. “물감을 묻히지 않은 맨 붓을 캔버스에 갖다 댄들 아무 흔적도 남길 수 없다. 그렇다면 사실상 붓은 영원히 캔버스에 닿을 수 없는 것 아닌가”라는 그의 말에는 이러한 의도가 잘 드러난다.
또한 '회화의 지층'은 캔버스의 전형화된 형식을 전복시킨다. 이인현은 전통적 의미의 2차원 평면이 아닌 일정한 폭을 지닌 ‘3차원 평면’의 장방형 캔버스 형태를 중심으로 그 높이와 너비를 변형하고 심지어 막대형 캔버스나 정육면체 캔버스를 시도하며, 그것들을 임의적으로 조합하기도 한다. 이렇게 두 폭, 세 폭,… 대여섯 폭으로 된 그의 회화는 ‘한 폭의 그림’이란 상투어를 보란 듯이 비웃는다. 뿐만 아니라 그의 완성된 작품은 부분적 해체와 재조합, 반복과 재생을 거친다. 이전 작품의 캔버스 천을 뜯어 낸 틀 위에 새 캔버스를 씌워 새로이 작업을 하고, 이렇게 제작된 작품을 이전 작품과 결합하여 또 다른 작품을 완성하기도 한다. 따라서 그에게 신작과 구작의 구분은 중요치 않으며 모든 작품은 개별작품으로서 가치와 의미를 지니기 보다는 '회화의 지층'이라는 작가의 전 예술행로에서 하나의 과정으로 자리할 뿐이다.
'회화의 지층'에서의 이 모든 시도는 예술작품에 대한 물신화와 예술가의 권위(authority)에 저항하는 작가의 의지에서 기인한다. 그는 예술작품을 신성시하거나 예술가를 신격화하는 예술의 근대적 신화에 반대한다. 사실상 그의 작업 행위는 단순한 노동의 반복 과정이다. 나름의 계산을 거쳐 제작에 들어간 이후 그는 일체의 상념과 욕심을 거둔 채 숨을 죽이고 동일한 시간과 긴장감으로 붓칠을 하고 순간적으로 물감을 내려놓아야 한다. 오직 캔버스와 물감을 만나게 하는 일에만 몰두하는 것이다. 그에게 회화의 화면은 작가의 노동을 통해 캔버스와 물감이라는 두 물질이 조우하는 장소일 뿐, 작가가 전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완성된 그의 회화에는 작가의 붓자국도 지문도 사인도 없다. 오직 물질과 그것이 만들어 낸 자발적인 일루전이 존재할 뿐이다. 이처럼 '회화의 지층'에서 작가의 역할은 최소화되며 작가는 작품에서 최대한 멀어진다.
작가주의에 반대하는 이인현의 이러한 예술에의 태도는 롤랑 바르트의 '저자의 죽음'을 연상케 한다. 텍스트의 유일한 의미의 기원으로서의 저자를 상정하고 그러한 저자의 의도를 해독하는 것을 독서의 과정으로 여기는 기존의 문학작품에 대한 논의를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바르트는 의미 발생의 근원으로서 저자의 절대적인 권위를 거부하고 모든 텍스트의 의미는 중의적이며 불확정적이라고 말한다. 중세 이후 인본주의와 더불어 생겨난 근대적 개념인 ‘저자(auteur)’는 항상 작품에 선행하며 작품을 부양하는 작품의 근원적인 존재다. 그러나 바르트는 이러한 저자의 개념을 전복해야 할 하나의 신화로 보고, 텍스트와 동시에 태어나고 언술행위 안에서만 자신을 소모하는 ‘필사자(scripteur)’의 개념으로 대체할 것을 제안한다. 바르트가 말하는 현대적 의미의 필사자야 말로 언어라는 기원 외에는 다른 어떤 기원도 가지지 않은 채 선행하는 글쓰기를 모방하고 “바닥이 없는 거대한 사전으로부터 멈출 줄 모르는 글쓰기를 길어올리는” 진정한 의미의 작가인 것이다. 이럴 때만이 무한한 의미생산이 가능한 열린 공간으로서의 텍스트가 가능하며 텍스트의 의미의 통제권이 독자에게 옮겨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인현의 회화는 이러한 ‘저자의 죽음’이 비단 문학에서만 성립되는 것이 아님을 몸소 보여준다. 화가는 자신의 회화에서 유일한 의미를 산출하는 자기표현의 주체가 아닌, 회화와 동시에 태어나고 회화의 제작행위 안에서만 자신을 소모하는 자로서 계속하여 “이전의 몸짓을 모방할” 뿐이다. 독창성(originality)이란 예술의 근대적 신화가 만들어 낸 허상일 뿐 완전히 새로운 것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화가는 작품에 최종적인 의미 부여를 지연하면서 계속하여 그리기의 공간을 답사하는 자인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인현은 '회화의 지층' 떠다니는 수없이 많은 기표(물성) 가운데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기의(이미지)를 방조하면서 회화 자체를 탐구하는 바르트가 말하는 바 진정한 의미의 작가 - 현대적 필사가 - 인 셈이다. 작업의 결과물로서 완결된 하나의 예술작품보다는 일련의 생성과정으로서의 예술행위를 보다 중요시 하며, 유사한 것들의 반복과 차이 속에서 그 의미를 더 풍부히 하는데 주력하는모습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것이 '회화의 지층'에서 이미지의 변화가 중요치 않으며 그의 '회화의 지층' 연작이 계속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삼년 만에 열린 이번 개인전에서 '회화의 지층'은 보다 다양하고 풍요로운 양상을 띤다. 단일한 종류의 연작을 선보인 지난 몇몇 전시들과 달리 이번 전시에서 그는 그간의 여러 제작 방법을 망라하여 그야말로 다채로운 ‘회화의 지층’을 보여 준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면과 면이 만나는 모서리에 가로선으로 물감이 번져 나가는 화면이다. 캔버스로 감싼 각목을 물감에 적셔 넓은 캔버스의 모서리에 갖다대는 방식으로 제작된 이러한 화면은 각목을 대는 각도와 시간에 따라 선의 형태와 길이가 달라지면서 섬이 되기도 수평선이 되기도 한다. 또한 이러한 일루전의 화면이 균일한 단색화면과 결합하여 두 폭이 맞닿아 이루어진 작품군은 그의 회화의 특징인 물성과 일루전의 줄타기를 매우 잘 드러내면서 전시의 한 주류를 차지한다. 이밖에 '회화의 지층'을 대표하는 기존의 면 작업과 이전에 비해 그 제작방식을 조금 달리한 – 이전에는 붓끝이 캔버스에 살짝 닿아 점의 가장자리가 더 진했다면, 이번에는 붓끝을 대지 않고 물감을 캔버스에 내려놓기를 반복하여 점의 중앙이 더 진한 색의 계조를 띠는 - ‘점’ 작업, 그리고 회화의 표면에 물감을 스치우는 가벼운 면 작업 등이 여러 점 선보인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특히 이러한 다양한 양상의 작품들이 어떻게 한 공간 안에서 잘 어우러질 것인가에 주력했다. 이는 그의 작업이 하나의 작품으로 독립적인 완결성을 가질 수 없고 다른 작품들과의 관계항 속에서, 또는 과거의 작품들로부터 앞으로의 작품들에까지 연결되는 연장선상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것임을 고려할 때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런지 모르겠다. 이렇듯 반복과 차이 속에서 지속되어 온 의미의 다양한 층을 지닌 텍스트로서 '회화의 지층'은 이인현이라는 작가의 손을 떠나 관객에게 인도되며, 바닥이 없는 거대한 사전에서 계속하여 길어올릴 그 텍스트는 앞으로도 보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해석을 가능케 할 것이다. 프러시안 블루의 유채물감과 가공하지 않은 생 캔버스라는 ‘상수’를 가지고 수없이 많은 ‘변수’를 만들어 내는 이인현의 회화에 대한 탐구가 '회화의 지층'이라는 이름으로 계속하여 더 많은 변주를 풀어내기를 기대해도 좋을 이유다.


The Text of L’épistémè of Painting
Text. Hyeyoung Shin I Curator of Gaain Gallery
Translation. Jawoon Kim

Lee Inhyeon’s extremely simple picture planes are created by his use of monochrome oil pigments on raw canvases while focusing on the spreading effect of pigment and the gradation of colors. Such work of Lee Inhyeon has been continued for more than a decade under the same title of ‘L’épistémè of Painting’. The way pigment permeates and ooze out canvas and the color gradation ranging from the lightest to the darkest themselves make one to picture ‘L’épistémè of Painting’ in his or her mind. Yet, it can be safely said that the more important reason that the artist entitles the entire work of his ‘L’épistémè of Painting’ lies in his aspiration that his paintings are not merely artworks to be viewed but a series of attempts to inquire into a fundamental principle that can encompass all the paintings of the present time, that is, the ‘épistémè’ (a concept of Michel Foucault) of contemporary painting. Considering that his L’épistémè of Painting Series that has been continued for a long time is his inquiry into the nature and ontological mode of painting, the title is quite apt to manifest the coherent artistic attitude of Lee Inhyeon.
L’épistémè of Painting of Lee Inhyeon is ‘a painting about painting’ in the fact that it questions the general artistic conventions, which have been accepted without reflective processes in the history of painting, and challenges the dichotomic structure of the existing discussions of painting. He makes what have not been comparable in the established art history comparable by use of his own paradoxical logic within the boundaries between them.
What has been most often said in the discussions of Lee Inhyeon’s L’épistémè of Painting is that he brought to the fore the lateral aspects of painting which have been shielded by the frontal perspective employed in the history of painting. The side of 10 centimeters wide, which is common to every work of his, is another picture plane on which the spreading process of pigments reveals the materialistic nature of painting and its becoming. In his work, the flank side of the canvas is the extended picture plane to be viewed together with the front and is used as an effective means to physically embody the depth of painting that material creates unlike conventional painting that pursues the element of depth through three-dimensional illusion. In addition, sometimes, what was to be the side during the production turns into the front, and further the edge becomes the center of the picture plane. As such, for Lee Inhyeon the picture plane is both something reversible where the front and the side can replace each other while refusing the rigid idea of dichotomy and something fluid without a fixed center.
Strong physical properties are revealed by both the evenly painted monochrome plane and the plane where pigment spread into warps of canvas, but at the same time the image created by the shapes produced by spreading blue pigment and their juxtaposition to monochrome plane makes a certain concrete illusion such as a riverside view whose middle is crossed by the horizon or islands floating in the sea. Thus, the illusion in L’épistémè of Painting is not created by the intent of the artist but accidentally generated by the properties of materials themselves. It may be thus said that the artist is walking on the rope that is fluctuating between physical properties and images while erasing the clearly drawn boundary between them. And it is through his own paradoxical method that both maintains the absolute attributes of modernistic painting such as canvas and pigment and creates out of physical properties of such attributes the illusions that modernistic painting refuses.
In L’épistémè of Painting the production methods and materials also escape from the convention of painting. He uses oil pigments on canvas, but he dilutes the pigments so that he can apply it evenly or let it spread when he drop it onto the canvas. In that way, he avoids the effect of thick matiere of oil painting and produces a watery impression. This is his own strategy to make a work that does not look like an oil painting despite his use of oil painting materials. In carrying pigment onto canvas, moreover, he contains himself from using a brush which is one of the fundamental instruments of painting. He very often uses a stick wrapped with canvas or canvas by itself as a brush. And when he uses a brush, he does it as a means to carry pigment to canvas without its touching the surface of canvas. This is to intentionally counteract the excessive meaning bestowed on brushstroke in conventional painting. He once said, “A brush cannot leave any trace on canvas without pigment. Then, isn’t it that a brush can never touch canvas?”.
L’épistémè of Painting subverts also the typicality of the form of a canvas. Lee Inhyeon does not use the two-dimensional flat surface of conventional painting. Instead, his basic form of a canvas is a ‘three-dimensional flat’ rectangular canvas with a certain width, and he varies its height and width, and even uses canvases in form of a stick or a cube. And sometimes he arbitrarily utilizes these diverse forms. His paintings of several panels loudly laugh at the hackneyed term ‘picturesque’. Further, his finished work goes through the processes of sectional dismantlement, reassembling, and reproduction. He tears canvas off from the previous work and covers the frame with new canvas to work on it, and this work gets to be combined with another previously finished work while completing yet another new work. Accordingly, the division of a new piece and an old piece has no importance to him, and every work denies individual significance and is just a part of his entire artistic path of ‘L’épistémè of Painting.’
All these attempts of Lee Inhyeon originate from his intention to repudiate the fetishism toward an artwork and the authority conferred upon the idea of an artist. He opposes to the modern mythology that deifies an artwork or an artist. In fact, his art-making consists of the repetition of simple labor. When he finished certain creative calculation, he eliminates all the thoughts and desires from his mind, and does brushwork and drops pigment with equal amounts of time and tension while holding his breath. He devotes himself only to make canvas and pigment meet each other. For he believes that a picture plane is just a place where canvas and pigment encounters each other through the labor of an artist, not a realm that an artist can fully control. One can find neither the brushstoke made by him nor his fingerprint nor his signature in Lee Inhyeon’s finished work. There exist only material and the spontaneous illusion produced by it. As such, in L’épistémè of Painting the role of the artist is minimized and the artist is separated from the work to the maximum distance.
While reminding ‘The Death of the Author’ by Roland Barthes, such an artistic attitude of Lee Inhyeon personally manifests that ‘the death of the author’ is not to be embodied just in the field of literature. A painter is not a subjective entity who produces the one and only meaning in his or her own painting but a being that gets born at the same time with his or her painting and consumes himself or herself only for his or her art-making, and by doing that he or she just “imitates his or her previous gesture”. The concept of originality is a fictional thing that the modern artistic mythology has manufactured, and the wholly new cannot exist. And a painter is one who endlessly explores his or her creative space while keep postponing the endowment of the final meaning to his or her work. In this respect, Lee Inhyeon is one of the true artists in the sense that Barthes says, that is, one who inquires into painting itself while leaving the consistently sliding signified (image) to take its own course in the midst of the numerous signifiers (objecthood) that are floating around in L’épistémè of Painting. This is why the external changes do not matter and why his L’épistémè of Painting Series had to be continued.
In this solo exhibition of Lee Inhyeon, which is held in three years, L’épistémè of Painting puts on more various faces. Unlike several previous shows where a single artistic kind was presented, this exhibition reveals literally diverse ‘L’épistémè of Painting’ while including all the methods that he has experimented. In this exhibition, he focused on the harmonious display of his works of such diverse modes. This seems very natural in the respect that his work cannot be independently concluded but completes itself within the relationship with other works of his or in the continuum that ranges from the previous works to the future works. As a text that holds many layers of meaning, L’épistémè of Painting is transferred from the hands of Lee Inhyeon to viewers, and a variety of new meanings are possibly excavated as the text draws out potential meanings from a bottomless well. This is why one can anticipate that Lee Inhyeon’s inquiry into painting, which has produced a host of variables from fixed numbers of Prussian blue pigment and unprepared raw canvas, would continue to play much more variations in the name of L’épistémè of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