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ARTIST

  • Seong Chun
    천성림


    뉴욕에서 거주하며 활동하는 재미작가 천성림은 주로 얇게 자른 종이를 뜨개질 하듯 엮어서 일정한 형태의 평면이나 입체로 만들고 그것을 벽면이나 천정에 설치하는 작업을 한다. 작가의 사유와 노동력이 오랜 시간 축적되어 완결되는 그녀의 작업에는 현대미술의 개념적 특성과 전통적인 예술가의 손맛이 공존한다.

PRESS RELEASE

Seong Chun
2007. 4. 10 (화) – 2007. 5. 10 (목)

가인갤러리 이번 전시는 뉴욕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 작가 성천(Seong Chun, 한국명: 천성림, 1966- )의 개인전 입니다. 그녀는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여섯 살 때 미국으로 이민간 이후 현재까지 그곳에 살며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재미작가입니다. 2002년 광주비엔날레 Project 2 <저기: 이산의 땅>에서 성천의 작품이 소개된 바 있지만, 한국에서의 개인전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녀의 주된 작업은 뜨개질을 연상시키듯 얇게 자른 종이- 글씨가 인쇄돼 있거나 그렇지 않은 - 를 서로 엮어 형태를 만들어 나가는 방식으로 제작됩니다. 그렇게 완성한 작품은 회화처럼 벽에 걸리거나 조각처럼 테이블 위에 놓이기도 하고 모빌처럼 천정에 매달리기도 합니다. 그녀의 작품은 이차원적인 특징을 갖는 종이가 작가의 노동집약적인 손놀림으로 얼마나 완성도 높은 삼차원적인 형태로 변환될 수 있는가를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어 한 비평가가 그녀를 두고 종이의 연금술사라고 평한 사례를 생각나게 합니다. 이와 같이 그녀의 작품들은 각각의 얇게 잘려진 종이가 하나하나 엮여 완성된다는 면에서 마치 실들이 한 올 한 올 엮여야만 비로소 완성되는 뜨개질이나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작업해야 하는 바느질을 떠올리게 하는 등 제작방법상 지극히 수공예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처럼 뜨개질 혹은 바느질 작업을 연상시키는 그녀의 작업에서 우리는 ‘여성성’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들은 ‘여성성’만을 담보로 하고 있다기 보다는 최소단위가 하나하나 엮여 작품이 완성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습니다. 작가의 종이를 엮은 작업 외에도 구슬을 엮어 기본 단위를 만들고 그것들을 확장해 가는 설치작품이나 일정한 규격의 하드보드지를 서로 엇갈려 쌓아 탑을 만든 작업, 그리고 모눈종이처럼 작은 칸들을 그리고 그 안을 색연필이나 과슈로 일일이 매워 넣는 그녀의 드로잉 작업들에서도 이러한 성향은 여실히 드러납니다.
또한 작가는 유명한 선배화가의 회화를 차용하여 이를 살짝 비트는 위트 있는 작업을 하기도 합니다. 역시 텍스트가 적힌 종이를 잘게 자른 뒤 이를 서로 엮어 만드는 그녀의 작업방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이 작품들은 외견상 몬드리안의 추상회화를 떠올리게 하지만 화면을 단순한 기본색으로만 환원한 몬드리안의 추상회화와는 달리 작가는 몬드리안의 회화에 어쩌면 추상회화에서는 이율배반적일 수도 있을 텍스트 (몬드리안의 글, 몬드리안의 작품에 대해서 기술한 이브 알랭 부아 의 글, 그리고 작가 자신의 글)가 쓰여진 종이를 여러 차례 지속적으로 엮기를 반복하여 작품을 완성합니다. 미술사에서 한때 고급예술의 대표로 인식되어 온 순수추상미술을 작품의 외적 특징으로 삼아 그것의 반대급부로 치부되어 온 공예적 방식으로 제작하는 그녀의 이러한 작업상의 태도는 순수추상미술은 곧 고급예술이라는 등식을 흐릴 뿐만 아니라 위대한 선배화가에게 경의를 표하면서도 그의 작업을 살짝 비트는 것으로서 이러한 방식에서 우리는 그녀의 진지하면서도 재치 넘치는 예술가로서의 기질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렇듯 성천의 작업은 이차원적인 특징을 갖는 종이가 작가의 노동을 통해 삼차원적 설치작품으로 변환되는, 그리고 외견상 몬드리안의 추상회화 닮아 있으면서도 그것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변형시키는 고유함과 조형적 아름다움이 뛰어납니다. 이러한 작가의 대표적 작품들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이번 전시에 언론사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 드립니다. 

PUBLIC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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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공간과 지각의 상대성에 관한 섬세한 고찰
글. 신혜영

“닫혀 있는 상자 속에는 언제나, 열려 있는 상자 속보다 더 많은 것들이 있다. 사실을 확인하려고 든다면, 이미지들은 죽어 버릴 것이다. 언제나 상상함이 삶보다 더 풍요로운 법이다.”
- Gaston Bachelard, The poetics of space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는 자신의 저서 『공간의 시학』(1957)에서 사람들이 시를 읽고 느끼는 저마다 다른 주관적인 느낌을 묘사하면서 예술에 대한 심미적 체험이나 상상력이 각자의 삶과 본질적으로 깊은 관련을 맺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는 자궁 안에 있을 때 형성된 무의식 속의 이미지가 상상력의 근원이 된다고 보고, 자궁과 유사한 집, 서랍, 상자, 장롱, 조개껍질 등 내밀한 공간들에 대해 탐구한다. 재미 한인작가 천성림(Seong Chun, 1966- )은 사람들이 모든 현상에 대해 저마다 상대적인 지각과 감수성을 지닌다는 사실을 공간과 장소에 관한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작품 안에서 풀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바슐라르를 떠올리게 한다(실제로 그녀는 작품에서 『공간의 시학』의 텍스트를 사용하기도 했다).
천성림의 주된 작업방식은 종이를 얇게 잘라 그것을 실처럼 사용하여 뜨개질 기법으로 평면과 입체를 만드는 것이다. 멀리서 볼 때 형태와 색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그녀의 작품은 가까이 들여다보면 한 올 한 올 엮어놓은 그 직조법에 놀라게 된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얇은 종이에 깨알같이 적혀 있는 작은 글씨들이다. 그녀는 종이에 텍스트를 인쇄해 얇게 자른 후 그것을 코바늘로 뜨개질하듯 엮어나간다. 이러한 그녀의 작업은 물론 엄청난 노동력과 섬세한 손길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녀의 작업을 여성성이 돋보이는 공예적인 작업이라고만 할 수 없는 것은 그 안에 있는 바로 이 텍스트 때문이다.
그녀가 작업의 재료로 사용하는 텍스트는 그녀가 평소에 읽은 책에서 공감이 가는 부분을 발췌하여 본인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것이거나 아예 새롭게 쓴 것들이다. 그것은 바슐라르의 『공간의 시학』에서부터 기 드보르(Guy Debord)의 『스펙터클의 사회(Society of the spectacle』, 폴 비릴리오(Paul Virilio)의 『시각기계(The Vision Machine』, 램 쿨하스(Rem Koolhaas)의 『정신착란증의 뉴욕(Derilious New York)』에 이르기까지 거의 대부분이 공간과 사회, 그리고 시각 이미지에 관한 이론서들이다. 그녀의 작품이 추상적이고 서정적이며 명상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그녀가 작품에 사용하는 텍스트의 내용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녀는 어떠한 사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책보다 행간의 의미를 최대한 많이 함축하여 그 사이를 자신의 언어로 채울 수 있는 책들을 선호한다. 또한 텍스트를 책에서 그대로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방식으로 바꾸어 적는다. 따라서 그녀의 작품 안에 담긴 글은 표면상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뜨개질로 짜인 종이의 가닥가닥마다 쓰여 있는 텍스트는 그것들이 엮여나가는 과정에서 감춰지고 드러남을 반복함으로써 한 두 단어 이상 알아보기 힘들어진다. 따라서 구절이나 문장을 유추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며 전문(全文)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사실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텍스트를 하나의 조형적 요소로 받아들이게 될 뿐 해독의 시도를 하기조차 힘들다. 혹여 해독하려 한다 해도 얼핏얼핏 보이는 각 단어들을 조합하여 저마다의 짐작과 느낌으로 그 작품의 텍스트를 받아들일 뿐 원래의 내용을 파악할 수 없으며, 따라서 작품을 제작할 당시 그녀의 생각이 그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그녀는 이러한 모호함(ambiguity)을 의도한다. 그녀는 지금 여기 놓여진 바로 이 작품을 통해 작품을 바라보는 자와 작품을 제작한 자의 대화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그것이야말로 예술작품 감상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특정한 텍스트가 사람들에게 읽혀지기보다는 그 텍스트를 재료로 사용한 자신의 작품 자체가 사람들에게 각기 다르게 다가가기를 원하는 까닭이다. 이러한 점에서 천성림에게 텍스트는 서로 다른 공간 사이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작품에 사용되는 텍스트를 기술한 자의 공간과 작품을 제작한 자신의 공간, 그리고 그것을 감상하는 자들의 공간을 연결하는 것이 바로 그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천성림의 모든 작업은 그녀를 둘러싼 ‘공간’으로부터 시작된다. 한국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 LA로 이민 간 후 그곳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다시 뉴욕으로 이주한 그녀는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 과거에 자신이 속해 있던 공간과 현재 자신이 속해 있는 공간에 대해 고민하고, 그러한 고민을 작품에 충실히 반영해 오고 있다. 처음 지금의 뜨개질 작업(crocheted work)을 시작한 계기 역시 그녀의 공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1990년대 초반 뉴욕에 온 그녀는 상대적으로 넓은 작업공간이 확보되었던 미 서부 지역에서와 달리 협소한 공간에서 작업을 할 수 밖에 없는 뉴욕의 현실에서 책상에 앉아 많은 책을 읽고 메모하는 일이야말로 자신의 상상력을 확장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길이었다. 그러던 중 낱장의 종이들을 뜯어내고 남은 노트의 끝부분을 반복해서 접어나가다가 지금의 작업을 생각해냈다. 어린 시절 미국에 다니러 온 이모가 가르쳐 주었던 뜨개질이 떠올랐고 실 대신 종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껏 읽어 온 수많은 텍스트들이 거기에 자연스럽게 삽입되었다. 그 결과 오랜 기간 축적된 그녀의 사유와 상상력은 텍스트와 함께 작품 안으로 녹아들 수 있었다. 이렇듯 텍스트는 그녀의 작업에서 조형적 요소이기 이전에 그녀가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추동 하는 사유의 흔적이며 수많은 공간을 이어주는 매개체인 것이다.
텍스트를 이용한 천성림의 종이 뜨개질 작업 가운데 몬드리안의 추상회화를 모티프로 한 연작들은 뛰어난 조형성과 함께 공간에 대한 고찰을 보다 직접적으로 미술사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자세히 언급할 가치가 있다. 그 근저에 많은 이론적 배경을 가지고도 가장 기본적인 색과 단순한 형태로써 근원적인 아름다움을 이끌어낸 몬드리안은 회화를 전공한 그녀에게 가장 존경하는 화가 중 한 사람이자 자신의 작업과 여러 지점에서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녀는 빨강, 파랑, 노랑이라는 기본색과 수직, 수평을 이루는 검은 선이라는 몬드리안의 원초적인 모티프를 가지고 그 비례와 구성을 변형시키고, 재료와 제작방식을 전혀 다른 것으로 대체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천성림의 작품이 몬드리안을 차용하면서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고유하게 변형시키는 지점은 몬드리안 회화 안에 몬드리안 회화에 관한 텍스트를 삽입한다는 점이다.
모더니즘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몬드리안의 회화에는 단순한 색과 형태로 회화적 요소를 환원한 만큼 그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많은 설명과 주석이 따라붙는다. 그러나 그것들은 절대 그림 안으로 들어 올 수 없으며 언제나 그림 뒤에 따라다닐 뿐이다. 이러한 추상회화의 역설은 천성림에게 몬드리안을 차용하는 이유가 되고 그녀의 작품의 핵심적인 부분이 된다. 그녀는 몬드리안이 직접 쓴 글과 미술사학자 이브 알랭 부아(Yve Alain Bois)가 몬드리안에 관해 기술한 『모델로서의 회화(Painting as Model)』 중 자신에게 의미있는 부분을 발췌하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은 텍스트를 프린트 한 종이와 색지를 뜨개질 기법으로 엮어 몬드리안의 회화를 변형시킨다. 이렇게 제작된 그녀의 새로운 추상회화(사실상 회화가 아닌)에는 - 얼키설키 짜여 그 의미를 해독할 수 없지만 - 몬드리안에게서는 불가능했던 글과 그림의 공존이 가능해진다. 그녀는 회화적 이미지를 구성함에 있어서 텍스트를 삽입함으로써 몬드리안의 순수한 조형성을 흐리는 동시에 몬드리안 본인의 서술뿐 아니라 그에 대한 이론가의 해석과 그 둘에 대한 작가 본인의 생각을 첨가함으로써 텍스트의 내용에서 또한 순도를 흐린다. 이러한 시도는 몬드리안, 이브 알랭 부아, 작가 자신, 나아가 개별 감상자들 사이를 잇는 것으로서 각기 다른 그들의 공간을 연결해주고 있다.
몬드리안 시리즈뿐 아니라 사실상 천성림의 작품 전반은 회화를 기반으로 한다. 이차원의 종이를 삼차원으로 전환하는 제작방식 자체가 일종의 회화의 변형이며, 그녀의 작업에서 색의 사용은 매우 핵심적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빌딩을 암시하는 직사각형의 종이 상자 위에 초록색 계열의 각기 다른 색지로 뜨개질하여 덧씌운 수 십 개의 단위원소들을 하나의 테이블에 설치한 의 경우 그것은 그 자체로 초원이 드리워진 한 폭의 대형회화를 연상케 한다. 또한 과슈와 색연필을 사용해 제작한 작가의 드로잉들은 그녀의 뛰어난 회화적 감수성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부분이다. 연필로 그은 그리드 사이에 여러 가지 색을 채워 넣어 형태를 완성하는 그녀의 드로잉들은 일정한 규칙이 반복되는 뜨개질 작업과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색과 형태, 그리고 그리기 본연의 행위가 매우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렇듯 천성림의 작업은 현대미술의 여러 가지 요소들을 한데 아우르고 있다. 텍스트와 이미지, 개념성과 노동력, 이차원(평면)과 삼차원(입체), 그리기와 만들기 등 동시에 공존하기 힘든 요소들이 작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그녀만의 고유한 특징을 담지하고 있는 것이다. 종이라는 일상의 재료는 명상에 가까운 반복적인 노동을 통해 일정한 부피를 가진 예술작품이 되고, 그것은 기법상 공예적이지만 내용상 풍부한 지시물(reference)을 가지고 있는바 개념적이다. 그녀의 작품에 확정된 것이나 절대적인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보는 사람의 관점과 기준에 따라 전혀 다른 것이 될 수 있으며, 이러한 상대성과 모호함이야말로 그녀의 작품에서 변하지 않는 핵심일 것이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이라는 제목의 설치작품은 이러한 그녀의 작품세계를 대변한다. 제목에 쓰인 ‘site’와 ‘perception’이라는 단어의 알파벳 14글자를 각각 다른 색의 종이로 뜨개질하여 입체 형태로 만들고 그것들을 모아 천정에 설치한 이 작품은 그녀가 생각하는 한복의 색동저고리 색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그것은 실제 한복의 색과 일치하지 않으며, 한복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한복의 색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동일한 작품을 보고도 그들이 속한 환경이나 개인의 지각에 따라 전혀 다른 것으로 보일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렇듯 천성림의 작업은 바슐라르의 말처럼 “닫혀 있는 상자 속에는 언제나 열려 있는 상자 속에서 보다 더 많은 것들이 들어있음”을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고 하겠다. 이 글 또한 그 상자 속 내용물을 짐작하는 한 가지 시각일 뿐, 그녀의 작품을 대하는 사람들 저마다 다른 기대와 생각으로 그 상자를 풀어보아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