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ARTIST

  • Seungtaik Jang
    장승택


    장승택은 오일과 왁스, 파라핀, 레진, 그을음과 같은 일상의 재료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물질에 대한 탐구를 이어오고 있는 작가로, 물감과 붓이라는 회화제작의 기본 도구들에서 벗어나 회화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재고하게 만든다.

PRESS RELEASE

Trans Painting
2008. 3. 13 (목) – 4. 12 (토)

2008년 가인갤러리 두 번째 전시는 오랜 시간 빛과 색, 물질에 대한 탐구를 거듭해 온 중견작가 장승택(1959- )의 개인전입니다. 2003년 이후 5년 만에 갖게 된 이번 개인전에서 작가는 한층 새롭고 다양해진 재료와 기법으로 그간의 작업 여정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만한 작업들을 선보이게 될 것입니다. “트랜스페인팅”이라 작가 스스로 칭하는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투명한(transparent)’ 유리를 표면으로 한 단위작품들(크게 단색면 회화와 드로잉)의 조합으로 원래의 형태가 ‘변형되어(transform)’ 새로운 작품으로 완성됩니다. 외견상 단색면 회화(모노크롬 페인팅)로 보이는 그의 작품은 사실상 캔버스 위에 오일로 칠해진 전통적인 회화가 아닌, 특수유리, 오일, 폴리에스테르필름, 포맥스, 알루미늄 프레임 등의 여러 재료를 사용해 여러 단계의 수작업을 거쳐서 완성되는 그만의 새로운 ‘회화’라 할 수 있습니다.

1. 작가 장승택에 대한 기존의 오해
그간 흔히 ‘미니멀 페인팅’ 혹은 ‘모노크롬 페인팅’이라 불리어 온 장승택 작업에 대한 수사어구는 사실상 적절치 않습니다. 그간 장승택은 1970년대 한국의 단색회화의 계보를 잇는 일군의 기하학 추상회화나 단색면 회화의 작가들 범주에 속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그의 작업에 관한 외관상의 성격만을 규정한 것일 뿐 작업의 핵심은 빗겨나고 있는 설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그의 회화는 전통적인 의미의 회화가 아닙니다. 9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장승택의 회화는 캔버스와 붓을 떠나 언제나 새로운 재료와 기법을 추구해왔습니다. 왁스, 파라핀, 레진 등에 안료를 섞어 단일한 색을 냈으며, 유화물감을 사용할 때도 플랙시글라스 위에 붓이 아닌 롤러나 손으로 색을 칠해왔습니다. 또한 빛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는 빛이 투과할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하여 일정 두께(공간)를 가진 자신만의 캔버스를 제작함으로써 그의 작품들은 평면회화라고 하기에는 부적절한 입체적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에게 ‘색’은 회화의 기본적인 요소로서 작가의 정서를 드러내는 중요한 부분이지만, 그의 회화를 일반적인 의미의 ‘모노크롬 페인팅’이라고 칭하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2. 물질에 대한 천착과 탐구
장승택은 그 누구보다 물질에 대한 탐구에 천착해 온 작가라 할 수 있습니다. 파리 유학 이후 1990년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에서 보여준 유일한 캔버스 작업에서마저 아크릴 물감 외에 다른 재료가 콜라주되어 있었으며, 이후 1990년대와 2000년까지 그의 작업의 재료는 무한히 발전되어 왔습니다. 1990년대 중반 무렵까지 오일과 왁스, 파라핀, 레진(합성수지), 심지어 그을음을 작품의 재료로 시도했으며, 1996년부터 플랙시글라스와 오일을 주 재료로 한 색면작업과 폴리에스테르 필름과 홀로그램페이퍼를 사용한 드로잉작업을 최근까지 병행하여 왔습니다. 그리고 이번 전시에 이르러 오랜 시간 사용해 온 플랙시글라스 재료를 떠나 투명함이 특징인 유리를 기본 재료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사용하는 유리 또한 일반 강화유리, 백유리, 색유리, 반투명 특수유리 등으로 매우 다양합니다. 드로잉을 위해 사용하는 폴리에스테르 필름 또한 두께와 투명도, 재질을 달리하는 여러 종류를 필요에 따라 사용하며, 플라스틱 미러 페이퍼, 포맥스, 알루미늄 프레임까지 작가 장승택의 회화에 있어서 재료가 차지하는 부분은 다른 회화 작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현재 3회까지 진행된 모 갤러리의 <케미컬 아트(Chemical Art)> 전시가 처음 시작하는 데 큰 기여를 했음에 절로 수긍이 가는 대목입니다.

3. 폴리페인팅에서 트랜스페인팅으로의 변화와 확장
장승택은 오랜 기간 ‘폴리페인팅(Poly Painting)’이라는 불리는 플랙시글라스와 오일을 주재료로 한 색면회화 작업과 ‘폴리드로잉(Poly Drawing)’이라 불리는 플랙시글라스와 폴리에스테르 필름, 홀로그램페이퍼 등을 사용한 드로잉작업을 지속해 왔습니다. 폴리페인팅은 반투명한 플랙시글라스 박스를 만들어 표면 위에 색을 엷게 칠하고, 빛이 표면을 투과해 일정 두께의 공간을 지나 안쪽에 칠한 색에 닿아 나오는 ‘빛과 색의 울림’을 보여주었던 작업입니다. 한편 폴리드로잉은 얇은 폴리에스테르 필름의 부분을 원형으로 커팅하여 그것들을 여러 겹 겹침으로써 흰 바탕에 깊이가 느껴지는 구멍을 만드는 드로잉 작업입니다. 두 작업에 ‘폴리’라는 접두사가 붙은 것은 재료가 가진 ‘혼성’의 특징을 나타내기도 있지만, 여러 레이어가 중첩되서 만들어졌다는 작업의 특징을 의미합니다.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이 두 작업을 아우르면서 유리라는 재료 변화로 인해 ‘트랜스페인팅’으로 지칭되며 한층 발전된 면모를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그만의 고유한 색면회화와 드로잉이 마치 몬드리안의 색면 구성처럼 조합되어 이루어진 이 ‘트랜스페인팅’은 그가 십여 년간 연구해온 폴리페인팅과 폴리드로잉의 결정판이라 칭할 만 합니다. 여타의 다른 회화작품이 완성 후 액자(프레임)을 하는 것과 달리 장승택의 ‘트랜스페인팅’은 액자가 먼저 만들어집니다. 그는 폭 6cm의 알루미늄 프레임을 먼저 손수 만들고 그 안에 색을 칠한 유리를 얹거나 드로잉된 폴리에스테르필름들을 얹습니다. 그리고 일정 정도의 공간을 둔 후 뒷면에 해당하는 포맥스 판에 색을 칠하거나 다른 재료(미러 등)를 얹어 뒤를 막습니다. 전 과정은 한 명의 조수도 없이 공장을 가지도 않고 작가 혼자서 작업실에서 제작해냅니다. 더 투명하고 더 매끈해져 마치 기성 디자인제품처럼 보일 만큼 다듬어진 장승택의 이 ‘트랜스페인팅’은 그 이면에 숨겨진 더욱 복잡한 공정과 작가의 노동력이 담겨 있어 더욱 가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PUBLICATIONS


    Warning: Invalid argument supplied for foreach() in /home/gaain2005/wwwhome/exhibitions/current.php on line 124

TEXT

빛과 색, 물질에 대한 회화적 천착

글. 신혜영 I 가인갤러리 큐레이터

" 반 고흐의 빛이 한여름 정오의 빛이라면 나의 빛은 대지와 맞닿은 새벽녘의 하늘빛이며, 일식 때의 태양 언저리 빛이며, 성숙하지 않은 소녀의 길지 않은 가운데 손톱의 투명한 빛이다.
빛과 색채는 회화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이지만 나의 작업에 있어서 그것들은 반투명한 매체와 함께 절대적 요소가 된다. 증식된 투명한 색채와 빛의 순환에 의한 물성의 구체화를 통한 정신의 드러냄이 내 작업에 진정한 의미라 하겠다. " - 장승택


붓과 캔버스를 떠난 회화를 회화라고 부를 수 있을까? 장승택의 회화는 붓과 캔버스를 떠난 지 오래다. 회화의 순수성을 주장하는 서구 ‘모더니즘’의 논리대로라면 그의 회화는 회화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빛과 색의 물질적 현현(顯現)이 회화의 가장 중요한 본성이라고 한다면 그의 회화는 분명 회화이다. 붓을 떠나 회화의 틀 안에서 다양한 재료로 실험을 거듭해 오는 동안 장승택은 빛과 색이 물질을 통해 보편적 세계를 드러내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여 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때로 유성물감이나 안료를 섞은 반투명한 파라핀이나 합성수지(레진)였고, 한동안은 물감이 엷게 발린 패널들로 이루어진 플랙시글라스 박스이기도 했으며, 이번 전시에서는 그간의 플라스틱 시대를 일단락 짓고 유리의 시대를 맞이하여 새로운 시도를 감행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의 작업 전반에서 일관되게 유지되어 온 것은 표면 위에 얹어진 안료로서의 색이 아닌 빛과의 소통에 의해 유동적으로 반응하는 색에 대한 천착이며, 빛과 색을 머금어 세계와의 만남을 구체화하는 질료(質料)로서의 물질에 대한 탐구이다. 
장승택의 1990년 첫 개인전은 오늘날 그의 고유한 회화를 암시하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프랑스 평론가 장 루이 훼리에(Jean-Louis Ferrier)가 “물질에 있어서의 정신”이라는 제목으로 서문을 쓴 이 전시에서 장승택은 색과 형상을 최대한 절제하면서 거칠고 대담하게 자신의 내면 에너지를 표출한 추상회화를 선보였다. 이 시기 그림들은 그의 작품 중 유일하게 캔버스에 붓으로 그려진 것이지만, 물감의 흘림과 번짐, 얼룩 등이 주조를 이루고 금속 오브제가 콜라주 되어 있는 등 향후 물성에 대한 탐구로 일관된 그의 작업의 전개를 예견하는 측면이 매우 강하다.
첫 개인전 이후 5년 여간 장승택의 물질에 대한 탐구는 절정에 달한다. 캔버스 표면 위의 물감이 가지는 물성으로 만족하지 못한 그는 오일, 왁스, 파라핀, 합성수지, 소금, 그을음 등 회화작가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재료들을 작업으로 가져와 다양한 물성에 대한 실험을 행하게 된다. 이는 마치 1960년대 말, 흙, 석면, 흑연, 얼음, 타르, 고무 등의 반미학적인 재료를 통해 아방가르드의 새로운 유형을 보여주었던 이탈리아의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아르테 포베라가 재료의 물성 자체를 드러내기 위한 설치 위주의 작업을 했다면, 장승택은 일정 정도 빛이 투과할 수 있는 재료들을 사용하여 회화의 사각 틀 안에서 빛과 반응하는 색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두었다. 당시 그는 일정한 두께의 프레임 안에 파라핀이나 왁스를 붓고 유성물감을 섞어 응고시키거나 합성수지에 안료를 넣어 굳힌 매끈한 색면을 보여주었고, 유리와 유리 사이에 소금을 켜켜이 쌓거나 유리 안쪽 면에 양초로 그을음을 입혀 흰색 또는 검은색의 비균질한 화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 당시 작품들은 외견상 단색화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미술사에서의 ‘모노크롬 회화’와는 태생부터 완전히 다르며, 사실상 회화라기 보다는 물성이 두드러진 입체적 오브제에 가깝다. 또한 산업적인 재료와 규격화된 형식을 가지고 있지만 끓이기, 녹이기, 흘려붓기, 굳히기, 태우기, 그을리기 등 작가의 적극적인 개입과 노동의 과정에 의존한 까닭에 ‘미니멀리즘’과도 근본적으로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90년대 초반의 본격적인 물성 탐구의 시기를 거쳐 장승택은 플랙시글라스라는 반투명하고 매끈한 대지 위에 안착하게 된다. 이전에 그가 한 동안 매진했던 합성수지 작업은 빛을 투과하면서도 안료와 균질 하게 섞이고 표면이 매끈한 재료의 특성상 어느 정도 그의 욕구를 만족시켰으나, 평면 위에 물감을 바르는 회화의 기본 공정과는 크게 달라 회화의 모체(母體)로부터 출발한 그가 오래 머물 곳이 되지는 못하였다. 이 때부터 그는 캔버스 대신 플랙시글라스 표면 위에, 붓 대신 롤러나 손으로 유성물감을 바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플랙시글라스를 일정한 두께의 박스 형태로 만들어 빛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부여했다는 점이 특기할만한 사실이다. 색이 엷게 칠해진 표면을 투과한 빛이 일정 공간을 거쳐 안쪽 면의 다른 색을 만나 반사되어 나옴으로써 일반적인 캔버스의 단색회화와는 전혀 다른 빛과 색, 물질이 하나 된 ‘중층의 회화’가 탄생한 것이다. ‘폴리페인팅(Poly-Painting)’이라 이름 붙은 이 회화는 장승택 회화의 대명사로 여겨지며 1990년대 후반부터 최근까지 십 여 년간 점차 다른 모습으로 발전되어 왔다. 동일한 색일지라도 안쪽 면의 색이 달라짐에 따라 전체적으로 미세한 색조의 차이를 보이도록 했고, 물감이 칠해진 표면을 손 날을 세워 부분적으로 밀어냄으로써 행위의 흔적을 남겼다. 또한 하나의 표면 위에 여러 차례 다른 색면을 올려 채도가 낮아진 단색면을 보여주었고, 가장 최근에는 한 화면 위에 같은 계열의 색을 그라데이션하거나 대비를 이루는 다른 색들을 나란히 칠하여 일종의 다색면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장승택의 폴리페인팅은 반투명한 재질을 가진 플랙시글라스의 특성상 색과 반응하는 빛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평면 위에 물감을 칠하는 회화의 기본적인 행위를 만족시키는 바 오랜 기간 그의 고유한 회화를 대변해왔다.
이번 전시에 새롭게 시도된 장승택의 ‘트랜스페인팅(Trans-Painting)’은 폴리페인팅이 재료와 기법의 변화를 겪고 비슷한 시기에 시작된 작업의 또 다른 축인 ‘폴리드로잉(Poly-Drawing)’과 결합하여 탄생한 연작이다. 폴리드로잉은 강물 위에 작은 돌맹이가 빠져 파장을 일으키듯 흰 바탕에 깊이가 느껴지는 구멍이 아롱지는 형상을 가진 것으로, 색에 치중한 폴리페인팅과는 분명 차별화되는 것이었다. 원형의 크기가 조금씩 달라지도록 커팅한 여러 겹의 반투명 폴리에스테르 필름이 겹쳐져 형상을 만들어내는 폴리드로잉은 색(色)이 아닌 커팅된 선(線)이 이미지를 만들어낸 까닭에 ‘페인팅’이 아닌 ‘드로잉’의 명칭을 부여 받았다. 존재의 심연을 드러내는 듯한 이 드로잉은 종전의 균질한 색면회화와는 대조를 이루면서도, 그간 한결같이 추구해 온 화면의 깊이와 빛의 효과를 극명하게 드러내주었다. 그러나 이 폴리드로잉은 1996년 처음 발표된 이래 간헐적으로 보여져 왔을 뿐 폴리페인팅에 비해 상대적으로 충분히 연구, 발표되지 못했다. 이번 개인전에서 그는 한동안 중단했던 폴리드로잉을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본격적으로 발전시키고, 십 년 가까이 고수해왔던 플랙시글라스를 떠나 유리를 주재료로 여러 가지 시도를 감행해 폴리드로잉과 폴리페인팅의 본격적인 결합을 꾀하였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두 종류의 작업을 조합하여 화려한 변주곡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이다. 몬드리안이 <콤포지션>의 화면을 구성하듯 장승택은 트랜스페인팅에서 드로잉의 흰 면과 페인팅의 색 면을 자유자재로 옮겨 붙여 하나의 작품으로 구성하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이면화의 형식을 넘어 비율과 크기가 다른 화면들로 구성한 여러 형태의 삼면화 혹은 사면화에 이른다. 따라서 트랜스페인팅이라는 명칭은 그의 작품이 재료 면에서 ‘투명해지고(transparent)’ 방법 상에서 단위작품들을 조합하여 원래의 회화 형태를 ‘변형하였(translate)’음을 함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사실상 트랜스페인팅은 그간 붓과 캔버스를 떠나 온 장승택 작업의 총체적 집약본이자 새로운 전환점이다. 지금까지 축적해 온 모든 기술과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자신이 추구하는 회화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새로운 물질에 대한 탐구가 작품의 성격에 큰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색조는 원색 위주로 더 밝고 감각적으로 변하였고, 재료는 더 다양해지고 제작공정은 더 정교해져 전체적으로 미끈하고 가벼워진 느낌이다. 반투명한 플랙시글라스와는 달리 빛을 완전히 투과하는 유리를 사용함으로써 색이 보다 명쾌해 보이도록 했으며, 주로 유리 안쪽 면에 색을 칠하고 바깥 표면은 매끈한 유리 재질을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회화라는 느낌보다는 색유리 패널 같은 기성의 느낌이 강하다. 또한 색과 투명도가 상이한 여러 종류의 유리를 사용하고 유리 안쪽 면에 컬러 시트지나 거울과 같은 다른 재료를 얹어 다양한 효과와 미묘한 차이를 시도하고 있다. 한편 드로잉의 경우 앞면 유리의 종류나 폴리에스테르 필름의 재질과 안쪽 판넬에 칠해진 색에 따라 구멍의 색과 전체적인 색조가 달라지도록 하고, 커팅으로 만들어낸 선들 외에 칼날의 자국만 남긴 선들을 함께 병치하여 이미지의 변주를 꾀하고 있다. 폭 6cm의 알루미늄 프레임을 먼저 만들어 놓고, 그 위에 색을 칠한 유리를 얹거나(페인팅) 유리 위에 여러 겹의 폴리에스테르 필름을 얹은 후(드로잉) 일정 공간을 띠우고, 색을 칠한 포맥스 패널로 뒷면을 막아 마무리하는 작업공정은 이전 작품에서 발전되어 나왔지만 보다 복잡하고 정교해졌다.
재료의 특성과 제작과정의 정교함에 힘입어 장승택의 트랜스페인팅은 이전보다 더욱 ‘미니멀’ 한 외관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언제나 모든 작업의 전 공정을 혼자서 직접 해내는 그에게 트랜스페인팅의 다양해진 재료와 정교해진 제작과정은 신체적 행위와 노동력의 개입을 극대화하도록 하였고, 그로 인해 그것은 외견과는 달리 사실상 ‘미니멀 아트’에서 더욱 멀어지게 된 셈이다. 사실상 장승택 작업의 가장 큰 매력은 이처럼 제작과정과 작품의 외견이 상치(相馳)한다는 점에 있다. 산업용 원자재처럼 보이는 이전의 합성수지나 파라핀 패널이 그가 손수 밤낮으로 끓여 붓고 굳혀서 만든 것이었듯이, 공장에서 만들어 낸 기성 인테리어 소품처럼 보이는 이 매끈한 색면회화는 그가 직접 알루미늄을 잘라 프레임을 만들고 유리에 색을 칠하고 포맥스 뒷면에 나무를 잘라 지지대를 만드는 것까지 누구의 도움도 없이 수작업으로 해낸 것이다. 그 누가 그토록 ‘미니멀’한 외관 뒤에 이토록 ‘맥시멀’한 과정이 숨어 있는 줄 짐작이나 하겠는가.
따라서 장승택의 작품을 ‘모노크롬 회화’나 ‘미니멀 아트’로 지칭하는 그간의 일반적인 평가는 명백한 오류다. 그의 회화는 붓과 캔버스를 기본 요소로 상정하는 ‘모노크롬 회화’의 미술사적 함의를 완벽히 거스를 뿐 아니라 외견상 단색의 평면회화로 보이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단색도 아니며 평면도 아니다. 또한 산업적인 재료를 사용한 정제된 외관 뒤에는 엄청나게 까다로운 수작업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술사 안의 모순되고 상충하는 여러 사조와 개념을 가로지르고 넘어서면서 끊임없이 회화의 본성을 쫓는 그이기에 ‘다(多)’ 혹은 ‘복합(複合)’을 뜻하는 ‘poly’나 ‘가로지른다’ 혹은 ‘넘어선다’는 뜻의 ‘trans’와 같은 그의 회화의 부제들이야말로 그의 회화에 관한 매우 적절한 수식어가 될 것이다. 그의 회화는 시간을 두고 오래 감상할수록 그 진가가 느껴진다. 그것은 하루 종일 빛이 들고 남에 화답하며 처음에는 그저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색면이었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들리고 만져진다. 이는 음악과 영화를 사랑하고 신선한 샐러드 위에 뿌려진 들기름 냄새를 즐기는 그의 예민한 감수성이 이면에 내재되어 있다가 조금씩 베어 나오기 때문이며, 오랜 시간 그가 빛과 색, 물질과 나누어 온 깊은 교감이 묻어 나기 때문일 것이다. 캔버스와 붓을 떠나 십오 년 넘게 이어진 그의 긴 ‘화행(畵行)’은 회화라는 끝이 보이지 않는 드넓은 땅을 불평 없이 쉬지 않고 걸어온 것이었고, 그 길은 앞으로도 그렇게 계속될 것이다.


A Painterly Inquiry about Light, Color, and Material
Text. Hyeyoung Shin I Curator of Gaain Gallery
Translation. Jawoon Kim

" If the light of Van Gogh is the light at noon in midsummer, My light is the light in the sky at dawn touching land, The light at the rim of the sun during a solar eclipse, And the transparent light on the short-clipped nail of the middle finger of an immature girl. 

Light and color are the elementary components of painting, But in my work, they are the absolute elements together with translucent mediums. Revealing the mind through the concretization of objecthood, which results from the multiplication of transparent color and the circulation of light is what my work truly intends to do. " - Seung-taik Jang


Can we call it a painting a painting made without a brush and canvas? It has been long since the painting of Seung-taik Jang has abandoned the brush and canvas. If one adheres to the logic of ‘Modernism’ of the West that advocates the purity of painting, his painting is not a painting. Yet, if one considers the materialistic manifestation of light and color as the focal nature of painting, his painting is no doubt a painting. For he has made every effort to disclose the universal truth of the world by letting light and color pass through material as he has continuously experimented with diverse materials within the frame of painting while abandoning the brush. Among the materials he has used are translucent paraffin or synthetic resins mixed with oil paint or pigments and plexiglass boxes in which light penetrates through panels painted lightly with different colors while engendering a single color, and in this exhibition glass is newly employed leaving the plastic materials of the previous years behind. What have been coherent in his entire work up to now is, however, not the colors as pigments placed on painting surfaces but the colors that flexibly respond to light as they communicates with it and also his inquiry into material that concretizes the encounter with the world by holding light and color. 
The first solo exhibition of Jang in 1990 already forecast the peculiar quality of his painting of today. In the exhibition for which Jean-Louis Ferrier wrote an article entitled ‘L’Esprit de la matière,’ Jang showed his abstract paintings in which the energy of his own inner mind is exposed violently and boldly while colors and forms are restrained to the minimum. The paintings of this period are the only ones that utilized canvas and the brush among his oeuvre, but they use the dripping, spreading and staining of pigments as their main methods and contain collages by use of metal objects while strongly foreseeing the later development of his work through which he has continued to inquire into the nature of objecthood.     
For about five years after his first solo exhibition Jang’s artistic exploration of material was at its peak. Having not satisfied with the objecthood of pigments on the surface of canvas, he made many experiments on the obejcthoods of diverse materials by employing such materials that a painter would be unable even to imagine using as oil, wax, paraffin, synthetic resins, salt and soot. This reminds one of Arte Povera in Italy that established a new avant-garde mode while using such anti-aesthetic materials as earth, asbestos, black lead, ice, tar and rubber at the end of the 1960s. When Arte Povera concentrated, however, mainly on installation works in order to expose the objecthood of material itself, Jang utilized certain materials through which light could penetrate to some extent within the rectangular frame of painting in order to focus on the generation of color as the materials interacted with light. At the time, he produced smooth color planes for which he poured paraffin or wax into frames of regular thicknesses, mixed it with oil paint and let it coagulate or he put pigments into synthetic resins and let them solidify, and made irregular color planes of white or black color by piling up salt in several layers between glass plates or by fuming the inside surfaces of glass plates. The works made during this period looked like monochrome paintings in their appearances, but they were far from Monochrome Painting as registered in the history of art in their origin, and they were in fact more akin to three-dimensional objects with strong objecthood rather than painting. Also, they were fundamentally different from the works of Minimalism since they depended on the artist’s active intervention and labor of boiling, melting, dripping, solidifying, burning and fuming although they used industrial materials and regular forms.   
After the period of his full-pledged inquiry into objecthood in the early 1990s, he arrived at the translucent and smooth land of plexiglass. The work with synthetic resins on which he pushed himself for a while met his artistic need to some extent because synthetic resins allowed light to penetrate through and were homogeneously mixed with pigments and provided smooth and glossy surface texture. But its production process, which was greatly different from that of painting to apply pigments onto flat surfaces, prevented the artist whose artistic parent was painting from continuing the work. From that time he started to apply oil paint onto the plexiglass surfaces instead of canvas with a roller or his hand instead of a brush. What should be noticed above all is that he constructed a space where light could stay on by making a box of regular thickness of plexiglass. Light penetrates though the surface painted lightly with a color, passes through certain space to meet a different color of the inside surface and is reflected out. And there produced ‘multilayered painting’ where light, color and material become one while differentiating itself from a monochrome painting that uses canvas. This painting, which is called ‘Poly-Painting,’ is regarded as the pronoun for Jang’s painting and has gone through gradual transformation for about a decade from the late 1990s to the present: a same color generated subtle difference in the overall tonality as the color of the inside changed; some traces of action were made by the partial pressing out of paint on the surface with the side of his hand; monochrome planes of low chromas were made by placing different color planes over a surface repeatedly; and his latest attempt produced polychromic planes where colors of similar hue were gradated on a surface or totally different colors were overlapped to engender contrast.
Another artistic axis of Jang’s work, which began during the same period when his ‘Poly-Painting’ was made, is ‘Poly-Drawing’. While showing holes studded on a white ground like ripples made by tiny stones thrown onto calm water, this series is clearly different from his previous work which concentrated only on color. Several layers of translucent polyester film sheets with circles of slightly different sizes are laid one on top of another and a sheet of hologram paper is pressed onto the inside panel while leaving a space between them. And these poly-drawings are given the name of ‘drawing’ not of ‘painting’ because not colors but cut lines are the agents by which images are created. These holes, which are produced by circular lines and resemble the black holes in the universe, lucidly illustrate the depth in the picture plane and the effect of light that he has consistently seek after while contributing to the contrast between the previous, homogeneous color planes and the poly-drawings’. Yet, his poly-drawings have been shown only intermittently since their first exhibition in 1996 and they have been neither studied nor exhibited enough in comparison with his poly-paintings.  
Jang’s ‘Trans-Painting,’ which is his new series to be shown for the first time in this exhibition, is the outcome of his in-depth study on his previous works of poly-drawings and poly-paintings where the transformations of the two different forms are combined. It is true that there have been other attempts of combining the two: he made diptychs of poly-drawings and poly-paintings of the same sizes; he experimented the poly-drawing within ploy-painting by repeating the process of attaching circles made of self-adhesive paper and applying paint onto it and removing it. But at this time he pushes the combination to the full. In this exhibition, he developed his poly-painting whose production he had stopped for a while by expanding the range of materials for it and ventured various attempts while employing glass as his main material and abandoning plexiglass of his poly-painting to which he held past almost for a decade. What is more important is that he composed dazzling variations by integrating the two forms. Jang made a free combination of the white plane of his poly-drawing and the color plane of his poly-painting in his trans-painting series as Mondrian did for his ‘Composition’ Series. Jang produced triptychs and quadriptychs in diverse forms consisted of planes different in proportion and size while going beyond the form of a diptych. The name of ‘trans-painting’ suggestively reveals that his material is transparent and his method is to translate the original structure of painting by putting together his unit works.
In fact, Jang’s trans-paining condenses all the artistic attempts that he has made for more than 15 years while abandoning a brush and canvas and represents a turning point in his artistic development. For he intends to show in a most effective way the kind of painting that he pursues on the basis of all the skills and all the trials and errors cumulated until now and simultaneously for his inquiry into new materials is greatly affecting the nature of his work. In overall, it seems that his work has become  streamlined and light as its color scheme is brighter while primary colors are chiefly used, a wider range of materials are employed and its production process is more elaborated. The use of glass that let light fully penetrate through unlike translucent plexiglass imbues the painted color with more vividness. The sense of ready-madeness, which can be felt in colored glass panels, rather than that of painting is stronger as color is applied only on the inside plane of the glass and its outside maintains intactly the smooth and glossy texture of glass. Various effect and subtle differences are attempted by using different kinds of glass in terms of color and transparency and by placing self-adhesive color paper or a mirror over the inside plane of the glass panel. In the case of drawings, the color of the hole and the overall color scheme are varied in accordance with the kinds of the glass used, the textures of polyester film sheets and the colors applied to the inside plane of the panel. Also, the juxtaposition of the lines made by cutting and those of the traces of a knife generates change in its images. The overall production process is developed from that of the previous work, but it is more complicated and elaborated: The aluminum frame of 6 centimeters wide is made first, then a panel of glass applied with color paint is placed over the frame (in painting) or several layers of polyester film sheets are placed over the glass (in drawing), next, some space is put between them and finally foamax applied with a different color is used to close up the back side.  
At a glance, Jang’s trans-painting seemingly has an appearance more minimalistic than ever. But he always performs the entire process by himself, and thus the diversification of material and the elaboration of the process aggrandize the bodily action and labor intensity of the artist. Accordingly, his painting, in fact, distances itself from Minimal Art more than ever despite its appearance. The most appealing aspect of the work of Jang is that the production process of his work and the appearance of it contract each other. As the synthetic resin or paraffin panels that appear to be industrial raw materials used in the previous works were made by him by boiling, pouring and let solidifying around the clock, these smooth color-field paintings, which look like small ready-made articles for house decoration manufactured in a factory, are made by his own hands without any help from others from constructing a frame by cutting aluminum, to applying color and to making a support for the back with wooden sticks. Who could guess that this ‘minimal’ appearance is hiding that ‘maximal’ process behind it?   
The general interpretation of Jang’s work as Monochrome Painting or Minimal Art is, therefore, definitely a fallacy. His painting utterly defies the art-historical definition of Monochrome Painting that assumes a brush and canvas as the essential elements of painting, and further although its appearance corresponds to two-dimensional, monochromatic painting, it is neither monochromatic nor two-dimensional in the strictest sense. In addition, the refined appearance caused by the use of industrial materials.is premised on dreadfully intricate handwork. Since he is consistently seeking after the inherent nature of painting while crossing and going beyond the different artistic tendencies and concepts that contradict and conflict with one another within the structure of art history, the terms used to refer to his painting such as ‘poly,’ which means ‘many’ or ‘complex,’ and ‘trans,’ which mean ‘across’ or ‘beyond’ seem to be precisely befitting terms to modify his work. His long ‘journey of painting’ that has continued over a decade and a half without using canvas or a brush has been a silent walk towards the invisible end of the vast land of painting and he will keep walking on that land.